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보기 좋은 야권연대, 떨떠름한 뒷맛

7월24일 수도권 3곳 전격적인 합의, 새정치는 ‘나눠먹기’식

조장하고 정의당은 ‘알박기’로 압박해 이룬 결과
등록 2014-07-29 16:46 수정 2020-05-03 04:27

7·30 재보선 투표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7월24일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은 수도권 3곳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뤘다. 서울 동작을에서 기동민 새정치연합 후보가 노회찬 정의당 후보에게 전격적인 양보를 하면서 정의당이 그에 대한 화답으로 수원 영통·팔달을 새정치연합에 양보하는 도미노 단일화가 이뤄졌다. 언뜻 보기엔 훈훈하지만 뒷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이번 단일화를 과연 정상적인 ‘선거 연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승자 1인 독식’ 구조인 소선구제

지난 7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엄마부대 봉사단’ 주옥순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지난 7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엄마부대 봉사단’ 주옥순 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선거 연합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모든 야권 연대에 ‘야합’ ‘나눠먹기식 정치’라는 딱지를 붙여왔다. 그러나 선거 연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민주주의를 일궈낸 유럽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정치 행위다. 실제로 1946년부터 2002년까지 23개 유럽 국가에서 총선을 앞두고 정당 연합 또는 통합이 364차례 이뤄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은 선거 연합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해 선거 연합을 자유롭게 하는, 심지어 촉진하는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한상익, ‘한국 선거연합의 특징과 개선 과제’).

한국도 민주화 이후 DJP 연합 등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식의 선거 연대가 이뤄져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소수 정당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이러한 ‘승자 1인 독식’ 구조 아래 소수 정당은 선거 연합의 힘을 빌려야 원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회찬 후보가 기동민 후보의 사퇴를 받아들이며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 소선거구 단순 다수대표제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 파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광고

그럼에도 이번 단일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뭘까. 우선 정상적인 선거 연합을 위한 절차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선거 연합은 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 핵심인 ‘대화와 타협’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선거 전부터 두 당이 선거 연대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가치와 정책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그런 뒤에 유권자에게 이를 설득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했다. 그러나 이번 단일화에서는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의 공통분모는 오로지 ‘새누리당의 집권을 막자’는 이해관계뿐이었다. 김한길 새정치연합 대표는 아예 처음부터 “단일화를 위한 당 대 당 논의는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정당 간에 이념이나 공약이 비슷할 경우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단일화는 이런 논의 없이 ‘무조건 이기자, 너희가 한자리 가져라’ 하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도 “막판까지 몰려서 겨우 이룬 단일화였다. 유권자를 좀더 배려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이후 정당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그렇다면 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한사코 ‘당 대 당 논의’를 거부한 걸까. 먼저 수권 정당을 목표로 하는 제1야당으로서 선거 연대를 지속할 경우 야권의 한 구성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또 2012년 총선 야권 연대 이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받게 되면서 새누리당으로부터 ‘종북 숙주’ 역할을 했다는 비난까지 받은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만흠 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야권 연대를 반복할 경우 유권자들이 새정치연합을 독자적인 수권정당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야권의 ‘n분의 1’로밖에 보지 않고, 결국 대중정당으로서 실패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정의당이 통합진보당과 노선 차이는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내부적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선택은 오히려 ‘자리 나눠먹기식 단일화’라는 비판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박원석 정의당 대변인은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새누리당의 프레임으로 정치를 본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눠먹기’를 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당당하게 (당 대 당) 논의를 했어야 한다. 야권이 세월호 문제를 준엄하게 심판하겠다는 다짐 아래 야권 연대를 지지해달라고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새정치연합에 단일화를 압박한 정의당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만흠 원장은 “진보정당이 독자적인 성장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선거가 닥치자 지역구에 ‘알박기’를 해서 압박했다. 자리 하나 뺏어먹으려 할 게 아니라 연대의 조건으로 선거법 개정을 위해 노력한다든지 등의 정책 제안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고

이러한 과정을 겪은 단일화가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절차적 과정 없는 단일화는 유권자가 ‘단일화 이후’를 기대할 수 없도록 한다. 두 정당이 단일화를 이뤘는데 그 뒤 이들은 정당으로서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일화 이전에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결과다. 김 원장은 “연대를 했다면 선거 이후에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것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단일화 이후’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야권의 무능’이다. 새정치연합은 공천 과정에서부터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내려꽂기’식 전략공천으로 유권자에게 실망을 안겼다. 또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국민의 엄중한 개혁 요구를 제대로 받아안지 못한 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면서까지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도 여당의 반대라는 벽을 뚫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유권자에게 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지가 많이 올라와 있을 때 야권 연대가 탄력을 받고 대중적 호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새누리당 정권 심판 이전에 국민이 야당에 실망한 게 너무 크다. 야권 연대의 환경은 최악이다”라고 말했다.

“새정치에 흡수될 가능성 100% 없다”

어찌됐든 단일화는 이뤘다. 이후에 야권의 구도는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는 정의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하는 방식의 야권 재편을 전망하는 의견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야권 재편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천호선 대표만 해도 원래 친노 출신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새정치연합으로의 흡수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분위기다. 정의당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은 100% 없다. 노회찬 후보가 당선되면 정의당은 독자적인 정당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오히려 진보가 어떻게 다시금 제3의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대변인은 “야권 재편은 2017년 이후에 이뤄질 것이다. 그때도 야권이 연대할 텐데 대선에서 이기든 지든 어떤 방식으로든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