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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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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당게임’ 시작되나

중랑구·양천구 기초선거 현장에서 본 ‘무공천’ 혼돈의 현장 ‘
기호 1번’ 확정하고 중무장한 여당, 무소속돼 딱총 하나 든 야당
등록 2014-04-08 17:44 수정 2020-05-03 04:27
6·4 지방선거에서 ‘부당게임’이 벌어지려 한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파기하고, ‘기호 1번 공천’을 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지도부는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현장의 새정치연합 후보들은 “약속을 지킨 쪽이 불이익을 당할 판”이라며 혼란스러워한다. 한 축구 전문가는 “축구로 치면 한쪽이 골키퍼 없이 경기를 치르는 부당한 게임”이라고 평가했다. 정치팀이 서울의 기초선거 현장을 찾아 야권의 혼돈과 새누리당의 분위기를 들여다봤다. _편집자<i> 4월1일 중랑구 </i>

두 현수막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새누리당 후보는 이름보다 기호 1번이란 숫자를 더 크게 내세웠다. 새정치연합 후보는 기호 2번 못지않게 자신의 이름을 굵고, 크고, 짙게 새겨놓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는 문재인 의원과 찍은 사진을 현수막에 넣기도 했다. ‘날 기억해주세요’란 절절한 호소처럼 보였다.

-기호 2번을 강조하지 못하는군요.

“일단 제1야당 후보임을 각인시켜야 하니 기호 2번을 써놓긴 했는데, 당이 무공천하면 무소속 후보가 돼 어차피 번호가 바뀌지 않나. 2번을 너무 강조하면 유권자가 헷갈리니…. 이름을 알려야죠. 얼마나 불쌍한 노릇인가? 참 비극적이다.”

기초는 5번, 광역은 2번… 오병이어의 기적?

4월1일 서울 중랑구에서 만난 새정치연합 쪽 중랑구청장 예비후보의 한숨을 따라 격앙된 불만이 튀어나왔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대표직 사퇴를 내걸고 새누리당도 무공천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해야 한다. 여당이 끝내 공천하겠다면 우리도 공천해야 한다. 두 공동대표가 무공천 약속을 지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지는 모른다. 그런데 기초선거를 져서 지방자치는 죽여놓고, 큰 정치를 살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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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는 새정치연합의 무공천 방침 이후 야권의 혼돈과 불안이 뒤섞인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은 새정치연합 구청장 예비후보가 5명이나 난립해 있다. ‘안철수 쪽 후보’라고 자임한다는 또 다른 인사까지 출마하면 후보가 6명이 된다. 이들은 당의 결정대로 기호 2번을 포기한 채 향후 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서야 한다. 반면 3명이 중랑구청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새누리당은 공천을 통해 1명을 추린다.

‘기호 1번 새누리당 1명’과 ‘여러 명의 무소속 야권 후보’의 대결. 또 다른 새정치연합 중랑구청장 예비후보 쪽은 이 상황을 ‘무장해제론’으로 설명했다.

“새누리당 캠프는 ‘이번 선거=이겼다’를 전제로 하고 있더라. 저쪽은 기호 1번으로 중무장했고, 우리는 무소속으로 무장해제당해 딱총 하나 든 것과 같다. 김한길·안철수 대표가 (무공천 약속 이행을 명분으로) 광역단체장 선거를 살리겠다면서, 기초선거 후보자들을 총알받이로 전사시키고 있다. 실핏줄(기초선거)이 죽으면 결국 몸 전체가 궤멸된다.”

중랑구는 새누리당 소속 현직 구청장이 ‘3선 장기 집권’을 한 곳이다. 그래서 야권 구청장으로의 교체 심리가 있는데, 무공천 때문에 그 민심을 모아내기가 버겁다는 게 새정치연합 후보들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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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 노원구에 떠돈 풍문은 무공천 혼돈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새정치연합 소속 김성환 구청장과 이름이 같은 옛 한나라당 소속 김성환 전 구의원이 무소속 구청장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여권이 ‘동명이인’ 김성환 전 구의원의 출마를 부추겨, 당의 무공천 방침 때문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김성환 구청장의 표를 잠식하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원구의 야권 인사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의원직을 잃은 김성환 전 구의원이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피선거권 박탈 상태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구의원은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한쪽만 무공천을 하는 불공정한 게임 때문에, 야권에선 ‘오병이어 기적’(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인 기적)이란 농담성 아이디어도 거론됐다고 한다. 서울시 기초선거 출마자들끼리 당을 만들어 통합진보당(3번)·정의당(4번)에 이어 기호 5번을 받아, ‘기초선거는 5번, (공천을 하는) 광역선거는 2번’을 찍어달라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해보자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쪽 인사는 “오죽 답답하면 이런 얘기까지 했겠느냐”고 말했다.

“기호만 보고 찍는다는 건 유권자 무시하는 것”

이런 답답한 노릇을 타개하고자, 지역에선 “일단 후보 난립은 막자”며 자체적인 단일화를 모색하고 있다. 중랑구에서도 여론조사를 통해 새정치연합 구청장 후보 1명을 추리기로 했지만, 이에 불복한 후보가 출마를 강행해도 강제할 수단은 없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지역 시민사회가 주도해, 시민배심원단의 투표로 단일후보를 뽑는 국민공천 방식도 필요하다”고 했다.

당에선 무공천으로 인한 기초선거 궤멸 우려는 과장됐다고 다독인다. 핵심 당직자는 “예전에 전북 익산 기초선거에서 당 공천을 스스로 거부하고 기호 14번 무소속으로 나간 후보가 1등을 한 적이 있다. 기호만 보고 찍는다는 것은 유권자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약속을 지킨 야권 무소속 후보를 찾아 찍는 유권자의 이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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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지도부의 위로와 현장 분위기의 괴리는 커 보였다. 중랑구의 한 후보는 ‘울화통’이란 표현을 썼다. “동네를 돌며 야권 지지자를 만나면 울화통이 터진대요. 이렇게 선거를 치러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고.”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서울중랑구선거플래카드
20140402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서울중랑구선거플래카드 20140402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당의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으로 기호 2번을 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서울 중랑구의 새정치민주연합 쪽 구청장 예비후보는 기호보다 자신의 이름을 크게 현수막에 새겨놓았다(왼쪽). 반면 서울 양천구의 새누리당 쪽 구청장 예비후보는 기호 1번을 크게 강조했다. 탁기형

당의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으로 기호 2번을 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서울 중랑구의 새정치민주연합 쪽 구청장 예비후보는 기호보다 자신의 이름을 크게 현수막에 새겨놓았다(왼쪽). 반면 서울 양천구의 새누리당 쪽 구청장 예비후보는 기호 1번을 크게 강조했다. 탁기형

<i> 4월2일 양천구 신정동</i>

4월2일 찾아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오경훈 새누리당 양천구청장 예비후보 선거사무소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사무실 안쪽에서 몇몇이 회의를 하고 있을 뿐, 1차 전투인 당내 경선을 사흘 앞둔 선거사무소치고는 무척 한산한 편이었다. 오 후보는 “4월5일에 치러지는 경선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전화 돌리기를 위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 선거운동은 후보 혼자만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현재 서울 지역 25개 구청장 공천을 위한 경선을 각 구별로 착착 진행하고 있다. 양천구의 경우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는 오 후보를 포함해 모두 6명으로, 4월5일 치르는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를 통해 1명이 새누리당 양천구청장 후보로 뽑히게 된다. 선거인단은 당원 1816명, 일반인 1816명으로 총 3632명으로 꾸려졌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구청장 후보를 공천할 때 당내 공천심사위원회의 내부 논의를 거쳐 1명을 낙점하는 방식으로 해왔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지난 2월 도입한 ‘상향식 공천’ 규칙에 의해 이번 6·4 지방선거부터 경선을 통한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라는 대선 공약을 파기하고 내린 ‘극약 처방’이다.

민심보다 당심 커질 경선 방식

이러한 상향식 공천 방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당원 50% 대 일반인 50%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현장 투표를 하는 방식의 경선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인단대회를 사흘 앞둔 이날 오경훈 후보는 “4월5일이 한식인데다 봄날이라 당일에 못 오는 사람이 생길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충성도가 강한) 당원 선거인단 투표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심보다는 당심의 영향력이 훨씬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오 후보 쪽은 경선만 잘 치른다면 본선은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오 후보의 선거 실무를 총괄하는 류관희 (주)나라사랑태극사랑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쪽과의 양자 구도 여론조사에서도 오 후보가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단일화하지 않고 난립할 경우에 대해 묻자 “그렇게 되면 치르나 마나 한 선거가 된다”는 대답이 나왔다.

사실 양천구는 지역으로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오경훈 후보는 “목동 주변인 양천갑 쪽은 새누리당이 기본적으로 센 지역이다. 그러나 양천을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다. 양천구 전체를 놓고 보면 어느 쪽이 우세인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천구는 선거 때마다 여야가 엎치락뒤치락해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으나, 2012년 총선에서는 양천갑·을 모두 새누리당이 차지했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대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15만4539표(51.9%)를 얻어 14만1933표(47.7%)를 얻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다.

이렇게 여야의 다툼이 치열한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선거 결과를 낙관할 수 있는 이유는 ‘후보의 경쟁력’도 있겠지만, 새정치연합의 ‘무공천 방침’도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쪽의 후보가 난립할 경우 표가 분산돼 “해보나 마나 한” 선거가 될 것이고, 새정치연합 쪽 후보들이 자체적인 단일화를 이루더라도 단일화된 후보는 무소속이 돼 ‘기호 2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서울시 공천관리위원장인 김종훈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는 (새누리당이 패배한) 지난 선거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기호가 있고 없고’에서 차이가 난다. 새정치연합 쪽이 공천을 하지 않으면 기호 2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향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현장에서 주민들한테 듣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구청장 야여 21:4가 4:21 될 수도”

새누리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지역 25개 구청장 가운데 야당에 21석을 내주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분위기가 다르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성태 의원은 “새누리당이 60%를 차지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정치컨설팅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야권 성향 후보들이 1명 이상 존재할 경우 여당 후보들에게 고정적으로 40% 이상의 지지율이 보장되고, 이렇게 되면 60~70%를 새누리당이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심하게 얘기하면 21:4가 4:21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정치연합 쪽은 자체적인 단일화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천구의 경우 새정치연합 예비후보 6명 가운데 허광태·김수영·하석태·김강곤 후보가 4월4일 단일화를 하겠다는 서약식을 했다. 그러나 2명의 후보는 여전히 본선 출마 의지를 강하게 밝히고 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hr>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기초선거)란?

기초자치단체장 17개 광역자치단체장(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을 제외한 나머지 시·군·구 단위의 단체장을 뜻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 하남시장과 서울시 성북구청장은 기초자치단체장이다.

기초의원 기초자치단체를 관할하는 의원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하남시 시의원, 서울시 성북구 구의원이 기초의원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정당이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을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면, 해당 정당 소속 후보들은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기초선거에 출마해야 한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은 특정된 기호를 갖지 못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기호 1번을 새누리당 후보가 갖게 되며, 정당공천 폐지 방침을 밝힌 새정치민주연합의 기호 2번은 사라진다. 기호 3번은 통합진보당, 기호 4번은 정의당 후보가 갖는다. 녹색당·노동당 등 다른 정당의 후보자가 나올 경우 4번부터 차례대로 기호를 받는다. 무소속 후보들은 정당 후보들이 다 결정된 뒤 이후 번호를 갖게 되며 다른 무소속 후보들과의 추첨을 통해 기호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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