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금 국민들 중에는 이 통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도 계시는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로저스홀딩스 회장)의 인터뷰(1월2일)를 언급하며, “이분이 ‘만약에 남북 통합이 시작되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이 한반도에 쏟겠다.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했다). 만약에 통일이 되면 우리 경제는 굉장히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저는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막연히 띄워본 발언 아니다”통일에 대해 ‘해야 한다’는 여론이 줄고 ‘굳이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확산하는 시기에, 박 대통령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을까. 국가미래연구원(박 대통령 싱크탱크)의 발기인인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집권 1년차 외교의 성과에 대한 자신감으로 풀이했다. 지난해 1월 ‘당선인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던 한 교수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미·중·러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주변국의 ‘동의’를 구하고 한반도 통일이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일종의 정지 작업을 어느 정도 마쳤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장성택 사후 북한 상황을 불안하게 인식하는 관점에선, 당장 통일을 하자기보다는 기반은 미리 닦아놔야 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막연히 한번 띄워본 발언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새해 벽두부터 보수 진영에서 잇따르고 있는 통일 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의 신년 기획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다. 이 신문은 1월1일치 1면에 실린 사고를 통해 “남북 7500만 ‘통일의 꿈’을 찾아나섭니다”라며 △국제회의 개최 △탈북 청년 교육시설 개설 △기획 시리즈 연중 게재 등을 예고했다.
이런 흐름이 효과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는 “통일이 필요 없다고 하는 일부 보수세력에 대해 통일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 효과, 선전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통일을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박순성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현 정부는 장기적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지난 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경험해봤듯이 ‘통일’을 앞세우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이 앞장서서 통일을 강조할수록 남한 중심의 한반도 질서 구축을 연상시키게 되고, 이로 인해 위축된 북한은 대화·교류의 장에 나오기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남한 중심의 한반도 질서 형성을 유리하게 보지 않는 중국도, 한국이 직접 통일을 언급하면 소극적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통일은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달라 보인다. 최근 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언급을 보면 오히려 ‘흡수통일’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12월21일 자신의 공관에서 열린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며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 한 점도 거리낌 없이 다 같이 죽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 중심의 흡수통일 방안이다. 나중에 남 원장은 “북한 체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됐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을 바칠 각오로 예의주시하라는 의도였지, 2015년 (북한) 붕괴를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일련의 흐름 속에서는 여전히 의혹을 떨치기 힘들다.
남한이 통일 앞세울수록 북한은 위축지난 1월7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가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변화를 좀더 빨리 이끌어내자는 정책적 방향”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흡수통일의 사전 단계로서 ‘급변사태’를 유도하려는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당국자는 ‘외교장관 회담에서 급변사태 문제도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한다, 안 한다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그런 것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까지 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한-미 간 ‘북한 정세 평가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윤 장관은 이미 지난해 8월 “북한이 앞으로도 한층 변화된 모습과 자세를 보이도록 강력히 유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박순성 교수는 “남한 정부는 북한 체제가 흔들리기를 바라고, 북한은 남한의 그런 생각을 읽고 체제를 단속하고 있다. 남과 북이 각자의 명분만 쌓아가면서,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체제 안정을 강화하고, 남한은 한-미-일 공조, 특히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급변사태는 현 체제의 불안, 나아가 붕괴를 전제로 한 설명틀이다. 최근 익명의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북한 이상설’ 보도가 잦은 것은 급변사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1월8일 는 ‘북한 사정에 밝은 정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가 심근경색에 알코올중독으로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27일 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국경 경비를 최고 수준으로 강화했으며 탈북자 체포가 중국 공안과의 협조 아래 삼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는 12월19일 ‘정부 소식통’을 통해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측근 등 70여 명이 숙청을 우려해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전했다.
아예 언론이 나서서 급변사태 가능성을 주요하게 다루기도 한다. 인터넷판은 1월9일 오후 ‘갑오년 북 김정은의 운세는? “타살되거나 객사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제작 동영상에 나온 역술인들의 점괘를 요약한 것으로, 대부분 김정은 비서의 새해 운세와 성명 운세가 불안하다는 내용이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남쪽에 대한 도발로 이어질 거란 우려와도 일맥상통한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해 12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내년 1월 하순에서 3월 초순 사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내부의 불안 요소와 군부의 과도한 충성 경쟁으로 인한 오판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다음날 국회에 나와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앞으로 전개될 여러 가지 북한 내부 동향을 보고 있다. 북한의 동계훈련이 2월 말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대북 태세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쪽도 2월 말~3월 초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다.
급변사태 수혜자는 따로 있다이런 인식은 “통일이 도둑처럼 한밤중에 올 수 있다”(2011년)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결과로서의 통일만 말할 뿐,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없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최근 보수 진영의 통일 논의는 모두 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언급하지 않고, 통일 이후 경제적 효과가 어떻고 법은 어떻게 되는지 등만 얘기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화해와 협력에 이르는 과정이다. 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 없이, 통일이 오면 이러저러한 게 좋다고만 하면 북한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북한은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1월9일 박 대통령이 언급한 설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정부가 제안한 실무접촉을 거부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통일부에 보낸 통지문에서 “새해 벽두부터 언론들과 전문가들, 당국자들까지 나서서 무엄한 언동을 하였”다고 비판했다. 급변사태에 관련된 언급 일체를 ‘무엄하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을 통하여… 우리 내부 문제까지 왈가왈부”란 대목은, 장성택 전 부장의 처형 얘기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근 장성택 처형 등으로 (북한이)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됐다” “장성택 처형을 보면서 세계인들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지문은 “종래의 대결적 자세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결론지었다. 김정은 비서가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고, 박 대통령이 ‘그 자체는 환영한다’고 했는데도, 끝내 대화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급변사태를 기대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명진 목사는 “북한이 금방 무너질 거라는 건 비현실적인 기대다. 그건 요행을 바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과연 기다리는 게 뭔지 알고서 기다리는 걸까?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급변사태’ 개념의 모호성을 지적한다. “장성택 처형을 급변사태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장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다. 김정은 비서가 암살되는 걸 급변사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됐을 때, 우리나라에 무슨 급변사태가 일어났나?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한국에서는 급변사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급변사태는 이미 수차례 벌어진 건가? 이명박 정부 땐 미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급변사태로 가정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 맥락에서 한-일 간 군사협력의 필요성이 거론됐다. 어떤 의미에선 미국이 급변사태를 이용한 셈이다.” 급변사태론의 수혜자가 따로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이 말한 ‘좋은 계절’은 언제?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급변사태론’이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서 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급변사태를 말하는 쪽에서 바라는 것은 북한의 무정부 상태 정도일 수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의 당과 공안 등 권력기관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했음에도 의미 있는 민주화 시위를 찾기 힘든 것은 공안기관의 힘이다. 주민에 대한 통제력이 그만큼 강고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공안기관이 중국보다 세면 셌지, 약하지 않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현실성 있는 제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조처로 북한 비핵화, 대북 인도적 지원, 국제사회 공조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인명진 목사는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도 비핵화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언급이 전혀 없었다.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이유를 해소시켜줘야 하는데, 그런 방안도 없었다. 비핵화를 조건으로 이것저것 해주겠다는 건 지난 20년 동안 해봤는데 안 된 것이다. 또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선언은 굉장히 좋다. 그게 시작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였던 지난 1년 동안 이명박 정부 때보다 오히려 인도적 지원이 축소됐다. 전 정부 때는 허용됐던 밀가루도 보낼 수 없도록 하고, 누구나 신청하면 가능했던 모니터링도 실무자 4명만 갈 수 있도록 제한시켰다. 실무접촉도 못하게 한다.”
북한 당국은 1월9일 통지문에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 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최근에는 지난해 9월6일 김정은 비서가 ‘좋은 계절’이란 표현을 썼다.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 데니스 로드먼에게 김 비서가 “좋은 계절에 벗으로 또다시 방문한 데 대하여 열렬히 환영한다. 아무 때든 찾아와 휴식도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매체의 여러 기사에서는 ‘좋은 계절’이 “백화만발한” 4월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15일)의 시기이기도 하다. 2008년 6월20일 보도를 보면, 전쟁 중이던 1951년 김 주석이 자신의 생일을 앞두고 누군가 닭을 잡아 생일상을 준비하려 하자, “봄철은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산에 들에 꽃이 피고, 농민들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닭들은 병아리를 까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닭이 병아리를 품을 수 있도록 죽이지 말라는 얘기였다는 것이다. 결국 4월이건 9월이건, 북한은 벗으로 방문할 수 있고, 약동하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시기를 ‘좋은 계절’이라고 본 것은 아니었을까.
“통일은 대박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다”정성장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통일은 대박일 수도 있지만, 재앙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측면을 다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쪽만 강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남북 간 제도와 의식의 차이를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단번에 북한 체제를 통합하려 는 게 북한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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