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한 시국미사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선거 개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해결과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두 번째 시국성명이 발표됐다. 그 이튿날 서울나들목교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가 열렸는데, 이때 설교자는 하나님도 독재를 했으니 우리도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기일인 10월26일 직전, 하루 차이를 두고 벌어진 이 두 가지 교회 풍경은 낯설거나 이례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한국 가톨릭은 지난 7월25일 부산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시작으로 전국 13개 모든 교구에서 정의평화위원회의 시국미사와 성명 발표가 계속되고 있다. 한동안 외롭게 민주주의를 소리 높여 외쳐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한국주교회의에서 인준받지 못한 비공식 사제단인 데 비해, 정의평화위원회는 주교회의 산하 단체라는 점에서 그 활동은 한국 가톨릭의 공식적 태도를 반영한다.
가톨릭사 초유의 전 교구 시국미사이렇게 모든 교구가 시국미사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초유의 일이다. 이것은 교구에 속하지 않은, 수도원 소속 수도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크게 약화됐던 평신도 조직들의 비판적 활동도 빠르게 재조직 혹은 재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정부의 최근 행보에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성명의 요지는 한국 가톨릭의 지배적인 견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개신교회는 어떤가. 한마디로 한국 가톨릭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킬 때 열렬한 결집력을 보였던 것에 비교할 때 지난 대선에서 교회의 박근혜 지지 움직임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종단별 종교 지도자 초청만찬회를 열었는데, 제일 먼저 개신교 지도자들이 초청됐다. 교세로 볼 때 불교가 개신교보다 훨씬 크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불교도가 훨씬 높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의당 첫 번째 만찬 대상은 불교 지도자여야 당연했을 법한데, 의외로 개신교가 먼저 초청된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부 요직 인선에서 드러났다. 지난 2월 발표된 정부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 인선에서 총 30명 중 종교인이 17명(57%)이고, 이 중 개신교와 불교와 가톨릭의 비율이 ‘12:3:2’이다. 2005년 인구센서스에서 한국의 종교인구가 54% 정도이니 정부 요직 인선에서 57%는 대체로 균형 잡힌 수치지만, 인구 대비 개신교와 불교와 가톨릭 신자 비율이 ‘18:23:11’인 것을 감안하면, 개신교 인사가 12명인 것은 과도하게 개신교에 집중돼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사회적 자원을 과점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의 박근혜 지지는 타 종교나 비종교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도 개신교 지도자들의 박근혜 정부 친화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 세력은 최근 두드러지게 반공주의적 편향을 나타낸다. 물론 반공주의는 1945년 이후 줄곧 한국 개신교 형성의 핵심적 요소였다. 하지만 반공주의적 요소가 ‘증오의 정치’로 표출된 것은 1945~60년, 그리고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이후다. 증오의 정치란 ‘적’으로 낙인찍힌 대상에게 증오를 한껏 표출함으로써 내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전략을 말한다. 여기에는 ‘적의 위협’이라는 위기의식이 전제된다. 즉 ‘적’으로 포위돼 있다는 공포감이 조장되고, 심지어 그 ‘적’이 내부로 침투해 속속 ‘우리’를 파멸시키고 있다는 위기 담론 위에서 증오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의 만남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결성은 증오의 정치로서의 개신교 반공주의의 부활을 상징하는데, 최근 박근혜 정부가 취하는 종북 담론을 활용한 공포 마케팅은 한기총류의 위기 담론과 강한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 개신교 내에서 반공주의적 증오의 정치 담론이 두드러지게 강화되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한국 개신교 세력은 비록 총선과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지지 세력으로 잘 결속되지는 않았지만, 반공주의적 공포 마케팅이 정국을 휘몰아치는 집권 이후의 행보는 개신교 주류 세력의 극우 반공주의적 행보를 현저히 강화시켰고, 그것은 개신교의 친박근혜 지지 현상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지지가 체제의 생존을 위해서는 독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포한다는 점이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는 최근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인다. ‘한 교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고 있고, ‘다른 교회’는 권위주의를 추구한다. 물론 두 교회 내부에는 다른 목소리도 존재한다. 가톨릭의 시국미사 대열에 동참하지 않은 60%를 넘는 사제나 수도자가 있고, 그들 중에는 권위주의를 지지하는 이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또 평신도 집단을 살펴보면 그런 현상은 훨씬 더하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1천 명이 넘는 개신교 성직자가 있고, 비록 성명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인식을 공유하는 이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또 평신도로 오면 아마도 성직자 비율보다 더 높은 비율로 현 시국을 문제로 여기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계의 두 유형의 종교는 그 내부의 무수한 수의 교회와 종단, 그리고 수많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교회’라고 말할 만큼 각기 단일화된 양상으로 외부에 포착된다. 다른 행보는 거의 미미하게 보일 뿐이다.
[%%IMAGE2%%]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먼저 가톨릭을 보자. 지난 이명박 정권 시대에 벌어진 이른바 ‘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의 군사기지화 사업, 그리고 ‘용산 남일당 화재 사건’ 등에 대한 반대운동이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을 점차 동력화하는 계기가 됐다. 소수를 제외하면 대체로 조용하고 소극적이던 사제와 수도자들이 이 사건들 속에 함축된 반생명적이고 반인권적인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가톨릭교회에서 보수적인 주교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 성직자들의 광범위한 참여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데 올해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미사에서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는 일에 교회가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것은 전세계 가톨릭교회들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바티칸 라디오 방송은 한국에서 벌어진 거리 시국미사가 바티칸과 사전 논의해 한국주교들이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항명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WCC의 진보성, 이제는 옛말한편 상대적으로 변화에 민감하고 진취적인 개신교는 민주화 이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화 이후 교회는 낡은 공간으로 낙인찍혔고, 이것은 진보적인 교인들의 이탈을 초래했으며 새로운 신자의 유입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요컨대 변화를 이끌어갈 교회의 개혁세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황에서 교회는 성장의 위기를 맞았다. 이것은 다시 개신교회의 보수주의화와 권위주의화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 하나의 현상이 과거 반공주의적 권위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의 약진이다. 이들이 박근혜 정부 아래서 교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만들어낸 진보적인 세계 신학의 시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7년마다 열리는 총회에선 수천 편의 진보적 신학 문건이 발표되고, 그중 몇십 편은 향후 7년간 세계 신학의 화두로서 신학계와 교회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문건의 작성자들은 세계적 신학자 혹은 교회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권위주의적 폭력이 과도한 사회일수록 그 사회에서 제기된 비판적 문제제기들이 세계 신학을 이끄는 의제로 주목받았다. 또한 이것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에 개신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WCC는 이런 담론 현상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권력욕에 사로잡힌 제3세계의 교회 지도자들이 WCC 활동에 적극 참여함에 따라 WCC 신학의 기조는 모호하고 무의미해졌으며, WCC의 재정은 이들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에 상당 부분 의지하게 되었으며, 그럴수록 본부 엘리트들의 관료주의적 성향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였음에도 한국 신학을 이끌었던 비판적이고 인권친화적이며 생명친화적인 진보적 신학은 생명력을 거의 상실했다. 즉, 한국 개신교회의 변화를 이끌어갈 신학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낡고 늙은 개신교에 희망은 있는가이렇게 서로 다른 길로 가는 ‘한국의 두 교회’의 미래는 어떤가? 아마도 가톨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많은 이들을 신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신자들의 진취적 문제의식과 활동력이 사제와 수도자들보다 앞서갈 때 교회가 이들의 가능성을 얼마나 뒷받침해줄 수 있느냐다.
그리고 개신교는 이미 많은 진취적 계층의 이탈에 직면해 있고, 그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년과 여성의 이탈과 신규 유입의 저하, 소외계층의 유입 둔화가 두드러진다. ‘늙고 힘있는’ 남성 노인들의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어쩌면 작고 실험적인 교회들과 아웃사이더 신학운동이 빠르게 주체화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이 이런 낡고 늙은 개신교회 내에서 불고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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