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법무부나….
빼닮았다. 법과 원칙을 다루는 정부 주무부처의 진상 조사 수준이 저널리즘 원칙의 기본을 거스른 보도와 매일반이다. 전문성은 안 보이고 의도와 목적만 보인다. ‘반박 불가능한 팩트를 제시’하는 치밀함보다 ‘어떻게든 내쫓아야 한다’는 다급함만 읽힌다.
법무부는 9월27일 발표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진술과 자료가 확보됐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채 총장 감찰을 지시한 지 2주 만에 내놓은 결과다. “다각도로 확인한” 진상은 3가지였다. ①채 총장이 혼외아들을 낳았다는 여성 임아무개씨의 부산 카페와 서울 레스토랑에 상당 기간 자주 출입 ②10년 전 임씨가 고검장이던 채 총장 사무실을 방문해 부인임을 자칭 ③ 첫 보도 직전인 9월6일 새벽 잠적.
법률전문가임이 의심스러운 결론이다. ①과 ③이 채 총장과 임씨의 혼외 관계를 입증하는 ‘진상’이 될 순 없다. ①은 다각도로 확인할 필요가 없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②도 현재까지는 임씨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임씨가) 채 총장의 혼외자란 판단을 내린 건 아니”라면서도 혼외자란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발표에서 보도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정황 의혹을 “(사실로) 밝혀졌다”고 단정한 의 화법을 법무부는 내용만 바꿔 재활용했다. 처럼 법무부도 당사자 확인을 거치지 않고 ‘질렀다’. 와 법무부가 ‘채 총장을 내쫓는 과정’에서 공유한 기술은 팩트 확증을 통한 의혹 규명이 아니라 팩트라고 주장하는 것을 통한 여론몰이다. 는 학적부 기록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지만 법무부는 그조차 하지 않았다. “자료가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채 총장에게 구린 구석이 많다’는 연기만 피웠다. 법무부는 채 총장의 11년 전 수사기록까지 요구하며 ‘먼지 털기’도 시도했다.
법무부 발표는 금요일 오후 5시께 이뤄졌다. 요일과 시간이 중요하다. 여론공학 측면에서 금요일 저녁은 ‘마의 시간’이다. 언론사가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운데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 ‘언론의 공백’을 누릴 수 있다. 의 혼외아들 의혹 첫 보도(9월6일)→황 장관의 채 총장 감찰 지시(9월13일)→법무부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9월27일)가 모두 금요일에 이뤄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법무부의 ‘감찰 카드’는 실효성 논란으로 역풍을 맞고 있었다. 의혹을 전혀 해소하지 못한 법무부 발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손을 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를 두고 비등하는 비판 여론의 우회로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 채 총장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 황 장관의 감찰 지시에서 엿보인 청와대의 의중은 사표 건의에서 재확인됐다. 사표 수리가 이뤄지면 ‘일반인 채동욱’에 대한 감찰은 불필요해진다.
‘언론 공백’을 누린 발표 시점진실 규명 방법으로 ‘하나의 소송’(를 상대로 한 채 총장의 정정보도 소송, 9월24일)과 ‘하나의 고발’( 기자들과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상대로 한국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시민행동의 검찰 고발, 9월26일)이 남아 있다. 정정보도 소송은 언론 보도의 ‘기술적 타당성’을 따진다. 사건의 실체 규명을 기대하긴 어렵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수사권을 갖고 있다. 검찰 수사는 보도와 해당 아동 개인정보 불법수집 및 청와대 민정의 개입 의혹을 밝힐 현실적 수단이다. 법무부 감찰이 채 총장을 향했다면, 검찰 수사는 권언유착을 겨냥한다. 검찰의 선택에 따라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을 수도, 더한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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