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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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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철통 법리에 재계·정치권 경제논리 ‘앵벌이’

한국GM 사무직 “업적연봉·가족수당도 통상임금” 판결, 8천여억원 걸린 생산직 1만 명
소송도 판결 기다리고 있어… 재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자 정치권 지원사격 나서
등록 2013-08-07 18:09 수정 2020-05-03 04:27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한국GM 부평1공장의 모습. 한국GM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을 재산정해달라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한국GM 부평1공장의 모습. 한국GM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을 재산정해달라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한국GM 통상임금 소송 2심서 패소… 업적연봉도 고정급여로 간주, 타 사무직 유사소송 확산될 듯.”(7월27일치 )

“통상임금 범위 확대 땐 임금동결·고용감축.”(8월1일치 )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조건 갖춰”

또다시 ‘통상임금’이다. 지난 7월26일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김용빈)가 한국GM 사무직 노동자 차준영(47)씨 등 102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지급 청구소송에서 “업적연봉과 가족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시간외근로 수당과 연·월차 수당을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며 1심 판결을 뒤집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놓으면서 재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직원 19명이 낸 임금지급 청구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던 것에 이어, 이번에는 업적연봉·가족수당까지 구체적으로 인정한 판례가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조바심 때문일까. 경제지에서는 이번 통상임금 판결이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우려를 한 움큼 쏟아냈다.

이번 재판의 선고일은 원래 지난 5월10일이었다. 그러나 이틀 전인 5월8일, 방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에서 대니얼 애커슨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가야 한다. 합리적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그 뒤 재판부가 선고 하루 전 일정을 갑작스레 연기하면서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1천 명이 넘다보니 금액을 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아 연기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업적연봉’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판결문을 보면, 한국GM의 업적연봉 지급 방식은 이랬다. 전년도 인사평가에 따라 올해의 업적연봉을 결정하고 이를 12개월로 쪼개서 받는 방식이었다. 지급액수도 월기본급의 700%를 바탕으로 삼고, 이 액수는 인사평가와 상관없이 모두 받았다. 그 대신 인사평가에 따른 차등 인상분을 5단계(0~100%)로 나눈 뒤 주는 방식이어서, 직원들은 기본급 대비 700~800%의 업적연봉을 받았다. 앞서 한국GM은 1년에 7차례 상여금을 지급해오다가 2002년 10월 연봉제로 전환하면서 이런 업적연봉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2009년 11월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배광국)는 “인사평가 등급에 따라 금액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근로자의 근무성적에 따라 좌우돼 고정적 임금이라 할 수 없다”며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매달 사무직에게 지급한 조사연구수당·조직관리수당, 가족수당 중 본인분, 귀성여비,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판결을 뒤집고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의 조건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해 연도의 근무성적과 상관없이 전년도 근무성적에 따라 결정되고, 연초에 정해진 업적연봉이 바뀌지 않고 1년 동안 나눠서 지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4월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대법관 13명이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판결을 하기 위해 재판석에 앉아 있다.한겨레 박종식

지난 4월1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대법관 13명이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판결을 하기 위해 재판석에 앉아 있다.한겨레 박종식

한국GM 위헌법률심판 제청 안 받아들여져

사실 이번 소송 자체가 한국GM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통상임금 소송인 건 아니다. 애커슨 GM 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민원을 제기하면서 언급한 소송은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조합원 1만여 명이 벌이고 있는 정기상여금과 휴가비, 귀성비 등의 통상임금 산입 여부를 다투는 건이다. 현재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이 소송은 사무직이 아닌 생산직 노동자가 중심이 돼 진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GM 사 쪽은 이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되면 체납임금 반환 등 모두 8천여억원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사무직 부분에서 업적연봉까지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게 될 경우 추가로 부담해야 할 액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번 서울고법 재판부의 판결문에는 업적연봉 등에 대한 판단 말고도 통상임금 개념 범위에 대한 내용도 언급됐다. 다급한 한국GM 사 쪽이 통상임금의 개념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국GM 사 쪽은 이 소송과 별개로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하다”며 근로기준법 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통상’이라는 어휘가 들어간 법령은 100개를 훨씬 넘는바, ‘통상임금’이라는 용어가 불확정 개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 쪽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 통상임금에 대한 판결이 제각각이라는 한국GM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통상임금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원칙적으로 모두 통상임금에 속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해왔다”고 반박했다.

통상임금 위헌제청 신청은 한국GM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6월13일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삼화고속 사 쪽도 항소심 도중 한국GM과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 56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화고속 사 쪽은 현재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 규정이 모호해 논란을 불러오고, 회사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근로기준법 제56조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이번 판결로 재계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자 정치권도 지원사격을 나섰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7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라도 가동해서 지급 요건이나 고정성 정도 등 통상임금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지원사격은 곧바로 효과를 나타 내는 듯하다. 보수언론 등에서는 전원합의 체 판결의 구체적인 시기까지 언급하면서 대 법원이 앞장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예 오는 9월5일 통상임금 소송을 전원합의체 에 넘겨 공개변론 방식으로 열고 TV 생중계 도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언급까지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고 밝혔다. 이현복 대법원 홍보심의관은 “양 승태 대법원장이 여름휴가 중이라 대법관 회의가 열리지 않아, 논의 자체를 하지 못하 고 있다”며 “8월5일 이후 대법관 회의가 열리 면 안건으로 올라가겠지만, 통상임금 사안 을 전원합의체에 올릴지 9월에 열지, 그리고 공개변론을 진행할지 등은 정해진 것이 없 다”고 말했다. 대법원 재판 예규에는 사회적 으로 관심이 많아 알릴 필요가 있는 사건 등 은 대법관 회의를 거쳐 공개변론 여부를 결 정하도록 돼 있다(상자 기사 참고).

전원합의체·공개변론·TV 생중계 압박

줄소송으로 이어지는 통상임금 논란은 대 법관들의 다수결 판단으로 결론이 날 가능 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통상 임금 논의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는 의 문이다. 그동안 정부와 재계가 통상임금 문 제에 대해 대법원 판례를 받아들이지 않았 던 점을 미뤄보면 그렇다. 이들은 늘 “(통상 임금의 범위는) 아직까지 법학자·전문가 사 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사회적 공감 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밀었다. 그런 점에서 대법관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 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합리적 해법’ 이 아닌 ‘(법에 따른) 합리적 해법’을 내놓아 야 할 테니 말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새삼 주목받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법리 바꾼 적 없는데 합의체 필요할까 대법원이 통상임금 논란의 열쇠를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전원합의체(대법관회의) 판결 방 식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13명의 대법원의 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대법원 최고 재판 부다. 판결 내용도 대법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 때문에 전원 합의체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각 부의 대법관들이 의견이 엇갈리거나 소수 의견이 나올 때 도입한다. 또 기존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등을 해석한 것에 대해 의견을 바꿀 때도 전원합의체 판결을 거친다.
통상임금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열리면, 현재 대법원에 올라온 통상임금 범위와 관련한 11건의 소송을 중심으로 심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최근 쟁점이 되는 통상임금 관련 의견을 낸 것은 지난해 3월 금아리무진 운전기사 19명이 낸 소송이었다(970호 표지이야기 ‘금아리무진 버 스기사의 아무도 묻지 않은 월급 이야기’ 참조). 당시 재판부는 “근속연수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비 율을 적용해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 이유 는 지급 조건이 통상임금성(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통상임 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그동안 법원에서 밝혀온 ‘통상임금성’의 법리를 묻는 자리가 될 가능성 이 높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하급심 판결 등 다른 법원의 판단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기업마다 진행하고 있 는 통상임금 소송은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다리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노동부에서는 아예 금아리무진의 대법원 판결이 전원합의체로 이뤄지지 않아 권위를 인정하기 어렵 다는 식의 의견을 낸 적도 있다. 방하남 노동부 장관은 지난 5월20일 정부과천청사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판례가 전원합의체 판례라고 보기도 어렵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일률적으 로 판결된 거라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통상임금에 대한 기존 법리를 바꾼 적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전원합 의체 판결의 필요성부터 따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확정되면 기업·노동부가 통상 임금의 법리를 뒤집기 위한 다양한 여론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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