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높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개에 대한 시국선언과 ‘촛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다.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잘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많게는 70%를 웃돈다. 리서치앤리서치 71.5%, 한국사회여론연구소 70.2%, 리얼미터 60.8%, 한국갤럽 59% 등을 기록했다. 시국을 성토하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역대 최저(42%)로 시작해 꾸준히 상승박 대통령의 1년차 1분기 지지율은 역대 최저(한국갤럽 42%)였다. 대선 때 득표율(51.6%)에도 못 미쳤다. 40% 안팎을 헤매던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취임 100일 53%, 7월 셋쨋주 59%로 오르는 추세다. 지역·연령별로 호남(40%)과 20대(48%), 30대(46%), 40대(47%)가 50% 미만을 기록했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40% 안팎으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에 견줘도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변화 추이는 사뭇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은 52%로 임기를 시작한 직후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촛불 정국이 형성되면서 21%까지 추락했다가 1년차를 32%로 마쳤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60%로 시작했지만 임기 1년차를 마칠 때는 22%로 곤두박질쳤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 인기 많은 게 아닌가?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외치 효과’다. 방미·방중이라는 첫 외교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품격 있는 외교’라는 언론의 띄워주기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은 대북 문제에서 점수를 딴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갤럽 7월 셋쨋주 조사를 보면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에 대해 ‘대북정책’(18%), ‘열심히 한다’(18%)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주관·소신, 여론에 끌려가지 않음’(14%), ‘외교·국제 관계’(13%) 순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75.9%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의 평가 기준은 성과·업적이다. 경제문제는 아직 성과가 없지만, 대북관계에서 끌려가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대중의 여론도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요구가 많았던 예전에 비해, 최근에는 단호하고 원칙 있는 대응을 하라는 주문이 많다.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 초반에 형성되는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박 대통령이 구축한 ‘신뢰와 원칙’이란 이미지도 높은 지지도를 이끄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국민은 대체로 새 대통령에게 야박하게 굴지 않는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박 대통령도 뭔가 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을 좋아하느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안정감이 있다는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직 임기 초반인 만큼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임기 초반’이라는 시점의 측면은 오히려 전혀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기저 효과’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후 ‘인사 참사’, 정부조직법 처리 등에서 ‘불통’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40%대의 낮은 지지율로 국정 운영을 시작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평가의 기준점이 애초부터 낮다보니 이후 오히려 지지도가 오르는 데 기여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 조사에서는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응답하는 사람은 ‘그때보다 낫다’는 상대적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 정국 때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졌다가 친서민·중도 노선을 내세우면서 50%선까지 급등한 데는 이런 기저 효과의 덕이 컸다고 말한다.
더 비판적인 해석은 ‘무위의 지지율’이라는 것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 힘이 강할 때 일을 추진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등이 그렇다. 이런 논쟁적 이슈는 반대를 낳는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떨어져나가면서 국정 지지도 50%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임기 초반의 추동력으로 뭘 하겠다는 어젠다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어젠다가 없다고 ‘이슈’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주요 현안마다 박 대통령이 구사하는 ‘분리 전략’이 잘 먹히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명박 정권과의 분리, 국회·정당과의 분리, 책임과의 분리가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에 대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실명 논평’이 나온 뒤 박 대통령은 “무리하게 국민 혈세가 들어간 부분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연 청와대가 내놓아야 할 논평인지, 정치적 코멘트인지 의심할 정도”(이재오
새누리당 의원)라는 친이계의 반발이 나올 정도로,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은 새누리당 정권이 아닌 듯이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 ‘여당 내 야당’ 노릇을 하면서부터 구축해 대선 때 야당이 제기한 ‘이명박근혜’ 프레임을 무력화한 전략이기도 하다.
여야가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와 NLL 대화록 정국에서 막말 논란을 벌이면서 박 대통령이 ‘반사이익’을 얻는 측면도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문제에 대해 ‘국회와 국정원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새누리당 지지율은 40%지만, 새누리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0%대에 불과하다. 예전에는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같이 움직였다면, 지금은 분리되어 나타난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다. 국회·정당이 망가지면 행정이 힘을 받는다. 박 대통령이 그런 면에서 (지지도)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많은데도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높은 것은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58.3%가 ‘국가기관이 불법 선거에 관여한 국기 문란 사건’이라고 답했고, ‘국가기관의 잘못인 만큼 박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65.6%에 달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꼬리 자르기를 잘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잘못하면 행정 독재가 시작된다”“진보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대통령 지지율이 직격탄을 맞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는 알지도 못하고 도움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민주주의 근간이 훼손된 심각한 사태인데도 박 대통령이 상처받지 않는 것은 책임질 자리에 박 대통령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태처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때 박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책임져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이 지지율 관리에서 테크니컬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한층 강화하는 건 다름 아닌 ‘대안 부재’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이명박 정권 때 보수층은 이 대통령이 싫으면 박근혜라는 대안을 지지하면 됐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싫어도 보수층이 옮겨갈 데가 없다. 불만이 있다 해도 계속 지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야당 지지율이 한심한 상황이다. 대안이 없으니 대통령에게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야당의 위상 약화는 결정적이다. 일반적으로 신뢰받는 야당이 국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면 대중은 이에 호응하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여주는 건 민주당”(김형준 교수)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어떻게 변할까? 대통령 국정 지지도와 관련해 ‘뱅크 어카운트 모델’이라는 게 있다. 은행에 넣어둔 돈을 조금씩 꺼내 쓰듯이 지지도가 내려간다는 뜻이다. 정치학에서는 ‘필연적 하락의 법칙’이라고 한다. 새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던 사람들도 정권 초기에는 기대감을 갖게 되고,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공약들이 이런 기대를 부풀린다. 야당과 언론이 비판을 자제하는 ‘허니문 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과 비판은 많아지고 기대감은 점점 실망감으로 바뀐다. 정권 초반에 지지율을 추동력 삼아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지지도가 더 오를 수 있다. ‘필연적 하락의 법칙’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전망은 밝지 않다. 화려한 외교 무대는 이미 막을 내렸고, 경제에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윤여준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에 대처했고, 첫 외교 무대에서 리더십이 부각됐다. 그러나 아직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통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취임 첫해에 중요한 정책을 내놓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데, 외교안보 이외에 특별한 지도력이 발휘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상외교라는 화려한 무대는 막을 내렸고, 하반기부터 내정에 집중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드러난 통치 능력을 보면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싶다”(지난 7월17일 야권 공부 모임 ‘혁신과 정의의 나라’ 정례포럼)고 말했다.
누적되면 어느 순간 폭발 가능성박 대통령의 ‘분리 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도 불투명하다. 김형준 교수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분리돼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청와대가) 전략적으로 하는 건데,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역대 정권을 보면 집권여당이 맹목적으로 청와대에 끌려다니면 (지지율이) 동반 하락한다. 물론 야당인 민주당이 잘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하면 행정 독재가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하락하더라도 ‘낙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기본적으로 받쳐주는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윤희웅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 가운데 정몽준 지지층이 빠르게 이탈했고, 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이들 가운데 박근혜 지지층이 이탈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영남·충청 등 ‘두 개의 고향’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견고하게 다져온 지지층이 있어서 크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현재 국정 지지도가 높은 것에 대해 ‘오판’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국정 운영 지지도는 정치적 지지 여부를 묻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 거다. 어떤 친구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그 친구가 옷을 잘 입었느냐고 묻는 거다. 옷을 잘 입었다고 말했는데 좋아한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2010년 지방선거 직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에 가까웠지만, 야당이 이겼다. 상대적인 업무 평가를 정치적 지지로 오해해선 안 된다.” 한귀영 위원은 “먹고사는 문제였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직접적으로 행동했던 것과 달리, 국정원 사태는 중산층과 ‘2030세대’ 말고는 인화성이 크지 않은 정치 문제인 측면이 있다. 다만 이것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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