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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 왜 가리십니까?

배임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 받은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조판 시스템 접속 차단한 채 ‘친위 인력’만으로 파행 제작 지속
등록 2013-07-23 15:18 수정 2020-05-03 04:27
7월17일 검찰조사를 받은 뒤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장재구  회장이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신문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root2@hani.co.kr

7월17일 검찰조사를 받은 뒤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장재구 회장이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신문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root2@hani.co.kr

“200억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짝퉁 신문 제작 언제까지 할 겁니까. 대답해보시라고요!”

대답은 없었다. 지난 7월17일 밤 9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 양복을 입은 장재구(66)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장 회장은 아침부터 이어진 12시간 동안의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포토라인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까지 내보였다.

그러나 ‘배임 혐의를 인정하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신의 차량인 검정색 에쿠스에 올라탔다. 이날 장 회장의 소환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이자 회사 직원인 기자 40여 명의 질문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검찰이 장 회장에게 소환 통보를 한 건, 이날보다 하루 전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권순범)는 장 회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통보했다. 앞서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사 지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4월29일 “장 회장이 중학동 사옥의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고 받은 돈으로 개인 빚을 갚아 회사에 200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로 장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그러나 장 회장 쪽은 출석연기 요청서를 제출하고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검찰 수사에 앞서 준비할 자료가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장 회장 쪽이 소환을 7월 말까지 미루고 비공개 소환을 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검찰은 그 다음날 장 회장을 불렀다. 비공개 소환이었다. 검찰은 이날 장 회장에게 개인 돈을 빌린 과정과 회사 자산인 200억원 규모의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게 된 배경 등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매수권 논란은 2006년 가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겪는 과정에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사옥을 팔면서 시작됐다. 당시 는 사옥을 새 건물 건축을 맡은 한일건설에 넘기면서 “새건물이 완공되면 높은 층 2천 평을 시세보다 저렴한 값에 매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다.

노조가 고발을 하자, 장 회장은 무리한 인사를 진행했다. 기자들이 반발하자 장 회장은 용역업체 직원을 불러 편집국을 봉쇄했다. 지난 7월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강형주)는 기자들이 낸 편집국 폐쇄 해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장 회장은 여전히 조판 시스템 접속을 차단하고 기자 180여 명을 지면 제작 과정에서 배제한 채 신문을 만들고 있다.

장 회장의 비리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비대위는 지난 7월19일 장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박진열 사장(한남레져 사장 겸직)의 이름도 올랐다. 비대위는 “장 회장이 자회사인 한남 레져가 저축은행으로부터 33억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부동산 등 9건을 담보로 제공해 26억5천만원의 지급보증을 서주면서 에 손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한남레져가 법인 등기상 주택 건축과 부동산 매매·임대업을 하는 회사지만, 인건비 지출조차 없는 사실상 유령회사라는 게 비대위 쪽의 주장이다.

이날 카메라는 말없이 검찰청사를 빠져나가려는 장 회장의 차량을 막아섰다. 운전석 차장너머 장 회장의 모습을 찍기 위해서였다. 플래시가 터지자 그는 신문을 펼쳐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가 펼쳐든 신문은 기자의 글이 아닌 통신사 기사가 가득한 였다. 그는 대체 뭐가 창피했던 것일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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