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은 유사했다. 총대는 육군 중장 출신인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회 새누리당 간사가 멨다. 지난해 11월, 그는 제대한 군인이 국가·공공기관·기업 등 취업지원실시기관에 지원하면 필기시험을 치를 때 과목별 득점의 2%를 가산점으로 얹어줘 정원의 20% 내에서 합격시키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누리당 의원 11명도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 뒤 지난 4월 국방위는 임시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법안 검토에 들어갔지만 찬반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논의를 6월 임시국회로 넘겼다.
새누리당이 띄우고 국방부는 지원사격
6월이 되자 국방부가 본격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방부는 지난 6월11일 브리핑을 통해 군가산점제 재도입 추진을 공식화했다.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원 외 합격’이라는 방안도 제시했다.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총점의 2% 가산+정원의 10% 이내 추가 합격’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국방부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이에 국방위는 사흘 뒤인 지난 6월14일 전체회의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여성가족위원회와 여성가족부의 반대에도 계속 제도 부활을추진할 것이냐”고 ‘확인 사살’에 나섰다. 김 장관은 “원칙적으로 군 복무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찬성 입장을 밝힌 뒤 “국방부 안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국방부와 새누리당이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반복했던 ‘여당의 분위기 띄우기와 국방부의 받쳐주기’의 전형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합공에도 불구하고 국방위의 법안심사소위는 6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결국 군가산점제 재도입을 위한 국회의 본격적인 논의는 또다시 9월 정기국회로 넘겨졌다.다만 진한 여운이 남았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6월20일 강원도 동해 해군 1함대에서 개최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앞서“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군가산점 문제를 조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조만간 있을 당정협의에서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당정이 손발을 맞춰 최종 법안을 마련한 뒤 9월 국회에서 제대로 공론화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국방부와 새누리당이 목매고 있는 군가산점제는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도입된 뒤 199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전원일치로 위헌결정을 받아 폐지된 제도다. 군 복무는 국민의 희생이 아니라 신성한 의무인 만큼 국가가 병역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특혜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게 위헌 결정의 취지였다. 군가산점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남성과 장애인의 평등권·공무담임권(국민이 공무원이 돼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리)을 침해한다는 이유도 결정문에 명시됐다. 헌재가 2001년 군가산점제와 비슷한 ‘국가유공자 가산점제’에 대해선 “헌법은 국가유공자 등에게 가산점 부여를 통해 우선적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예우 규정을 주고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헌재의 위헌 판단에도 17대 국회(2004~2008년)부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 국방위 의원과 국방부는 “가산점 적용 비율 등을 낮춰 위헌 소지를 없앴다”며 군가산점제 부활을 위한 시도를 줄기차게 해왔다. 이에 대한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헌재의 위헌 결정문에도 ‘가산점제도는 아무런 (국가의)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군인을 지원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 부분이 나온다. 국방비가 많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군가산점은 돈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도 국방 의무를 다한 장병과 그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효율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군가산점제를 되살리려는 논리는 똑같다. 한기호 의원과 국방부는 가산점 비율을 기존의 3~5%에서 2%로 완화했다. 또 가산점 혜택을 받는 합격자 비율을 무제한에서 정원의 10~20%로, 가산점 부여 횟수를 무제한에서 3회 정도로 제한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수정안도 위헌 소지 크다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이들이 제시한 수정안에도 여전히 위헌 소지가 많다고 보고 있다. 양선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헌재는 제대군인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 자체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 가산점의 과도한 혜택으로 인해 여성이나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이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건 그다음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의무를 다했다고 국가가 보상을 해주지 않듯이, 병역 의무도 보상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런 헌재의 논리를 보면, 만약 가산점 혜택을 일부 축소하더라도 여전히 위헌 소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주덕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전경희대 교수)의 지적도 비슷하다.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은 양보할 문제가 아니다. 군 가산점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과 안 다녀온 사람, 다녀온 사람 중에서도 공무원시험에 응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는 제도다.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아서 특정 계층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혜택의 정도를 떠나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아마 군가산점 법안이 통과되면 (위헌 심판을 받기 위해) 헌재로 다시 갈 가능성이 높다.”
제대군인 중에서도 공무원에 응시하는 극소수에게만 제도의 혜택이 집중되는 것 또한 군가산점제 재도입 주장의 명분을 떨어뜨리고 있다. 2010년 고려대 로스쿨과 헌법재판소가 여성가족부의 의뢰로 2009년 국가공무원 공채시험 결과에 ‘득점의 2.5%’ 가산점을 적용해본 결과, 가산점 덕에 합격한 남성은 7급과 9급을 합쳐 114명에 불과했다. 그해 제대한 군인의 0.038% 정도였다. 반면 여성의 합격자 비율은 7급 공채의 경우 41.3%에서 28.4%로, 9급 공채는 56%에서 36.3%로 급격히 떨어졌다. 당시 보고서는 “군가산점제는 제대군인 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혜택을 줄 뿐이다. ‘제대군인을 위한 보상 수단’이라는 주장과 맞지 않다. 반면 여성차별 효과는 지대하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군가산점은 국가·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채용시험뿐 아니라 20명 이상을 고용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200명 미만 제조업체 제외) 등 취업지원기관에 모두 적용되는 제도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군가산점을 도입하지 않은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처벌하는 조항은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터라 제도의 실효성은 여전히 낮다. 이에 대해 조영진 한국국방연구원 인력정책연구실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군가산점제의 혜택은 공무원시험 응시자뿐 아니라 기업 취업 희망자에게도 돌아간다. 과거 처벌 규정이 없을 때에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많이 따랐다. 설사 혜택을 받는 제대군인이 소수라 하더라도 군 복무자의 사기와 긍지를 높이는 상징적 효과가 클 것이다.”
철마다 반복되던 군가산점제 부활에 대한 주장이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는 건 ‘박근혜정부’ 효과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군가산점제 재도입에 대해 “합리적(인방식)으로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찬성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에 담은 ‘의무복무 제대군인의 군 복무 경력을 공무수행 경력으로 인정하는 등 병역이행에 대한 사회적 보상 확대’에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초대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한 박한철 소장 역시 군가산점 부활에 긍정적이다. 그는 4월8일 국회 인사청문회 때 “위헌 요소만 일부 제거된다면 제대군인의 공직 취업시 가산점을 주는 것은 괜찮다고 보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동의한다”며 ‘조건부 찬성’ 입장을 내비쳤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소장 개인의 판단에 좌우되는 건 아니지만, 헌재 소장의 이런 의사 표명은 군가산점제에 찬성하는 쪽이 어느 때보다 자신감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닫힌 취업시장군가산점제 부활 논쟁은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특정 계층의 취업에 혜택을 주는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시작이다. 현 정부 들어 취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의원·정부의 지원 법안과 정책이 쏟아져나오는 까닭이다. 군가산점제처럼 특정 계층이 입사 필기시험을 볼 때 가산점을 주거나 모집 정원의 일정 비율을 특정 계층에 할당해주자는 것이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임신·출산·육아로 직장을 그만뒀다가 취업지원실시기관에 재취업하려는 경력 단절 여성에게 과목별로 득점의 2% 내에서 가산점을 주도록 한 일명 ‘엄마가산점제’ 법안이 지난해 12월부터 계류 중이다. 5급과 7급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에서 지방대 출신을 일정 비율 선발하도록 의무화하는 ‘지방대 채용 할당제’ 법안과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을 2015년까지 15%, 2017년에는 30%로 늘리도록 한 법안도 최근 국회에 제출됐다. 지난 4월 ‘30대 역차별론’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청년고용 할당제’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도 지난 6월11일 발의됐다. 이 법안은 공공기관이 내년부터 3년간 정원의 3% 이상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한 청년층의 대상을 기존 ‘만 15~29살’에서‘만 15~39살’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발의된 법안들은 사회의 차별 등 구조적 문제로 유독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여성·경력단절여성·지방대생·청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기 위해선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차별받는 계층을 위한 ‘적극적 평등 실현 조처’(Affirmative Action)로 반드시 취업가산점제나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 고용시장이 굳게 닫혀 있기 때문에 구직자들이 좁은 취업 관문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문이 너무 좁다보니 특정 집단이 특정한 이유로 부당한 불이익을 본다는 인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학생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남성들은 군 복무 기간 때문에 여성에게 취업 기회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지방대생들은 기업들이 수도권 대학만 선호해 제대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들 고용시장에서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불만이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같은 정치적 담론과 맞물려 공론의 장으로 등장했는데, 정부와 국회가 이를 경쟁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다.”
평등 실현인가, 행정 편의주의인가그러나 섣부른 가산점·할당제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특정 계층에 대한 혜택은 상대 계층의 손실이나 양보를 전제로 하는 탓에 계층 간 갈등과 적대감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지난 4월 신규 채용하는 공무원의 10%를 고졸자로 우선 채용하는 방안을 발표했을 때 대졸자와 대학생들 사이에서 ‘대졸 역차별론’이 강하게 일었던 게 대표적인 예다. 김선택 교수는 “적극적인 평등 실현 조치는 역사적으로 특정 계층에 차별이 진행돼왔고 현재에도 구조적 왜곡이 남아 있을 때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조처다. 따라서 상대 계층에 돌아갈 수 있는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의 사유가 있을 때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는 가산점·할당제가 가져올 부정적 착시 효과에 주목한다. “가산점·할당제는 부작용이 많아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선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을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도외시하고 손쉬운 사후 보상만 자꾸 해주려고 한다.
이런 대책에 매달리면 일시적으로는 차별이 회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한국 사회는) 실질적 평등을 만들려는 노력과 책임을 다하지 않게 된다. 차별과 불평등이 쉬운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용 차별 문제는 또 다른 고용 차별로 절대 풀 수 없다는 의미다.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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