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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김정은의 꽃놀이패

영변 경수로 가동 땐 ‘평화적 핵이용’ 막을 명분 사라져… ‘에너지-비핵화’ 교환 방식 무력화로 협상 구도 급변
등록 2013-05-20 16:27 수정 2020-05-03 04:27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의 열쇳말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버마’다. 두 정상이 북한에 던진 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핵무기를 버리고 평화와 진전의 길’로 가는 의미 있는 조처를 취한다면 버마처럼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한-미 정상회담에 호응하듯이 공교롭게도 이날 중국의 4대 ‘국유 상업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행은 북한의 무역결제은행인 조선무역은행의 계좌를 폐쇄하는 조처를 취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와 한 회견에서 밝힌 “북한이 올바른길을 선택하도록 중국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요청에 화답한 셈이다. 중국은행의 이번 조처는 미국과의 사전 교감에 의해 나온 것이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월13일 <abc>의 에 출연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하는 조짐이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보고서에 게재된 북한이 영변에 건설 중인 우라늄 농축시설(위)과 실험용 경수로의 3D 모형도. 위성사진에 근거해 만든 것으로 발전기 건물, 주행 크레인 레일과 지붕 등 원자로 외관의 상당 부분이 거의 완성 단계임을 보여준다. 한겨레 자료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보고서에 게재된 북한이 영변에 건설 중인 우라늄 농축시설(위)과 실험용 경수로의 3D 모형도. 위성사진에 근거해 만든 것으로 발전기 건물, 주행 크레인 레일과 지붕 등 원자로 외관의 상당 부분이 거의 완성 단계임을 보여준다. 한겨레 자료


중국도 압박 동참… 공은 북으로
이처럼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가 중국의 지원을 배경으로, ‘올바른 선택’을 압박하면서 공을 북쪽에 넘긴 모양새다. 북한이 과연한-미가 요구하는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먼저 지난 1월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이래 보여온 군사적 위협을 더욱 강화해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비핵화를 포함해 기존 합의의 준수와 이행을 위한 의미 있는 조처”를 취하는 것이다.
북한이 후자를 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5월5일 밝혔듯이 ‘키리졸브 독수리 합동 전쟁연습의 화약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핵탄을 적재한 니미츠호 항공모함 타격집단이 부산항에 들이닥쳐 5월10일쯤부터 새로운 해상합동 훈련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대화의 자세를 보일 리는 없다. 게다가 5월 말 미국은 한 차례 연기했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다시 ‘2호’ 전투준비 태세를 발동해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 위치로 전환하고 나아가 4차 핵실험과 ICBM 발사 등 군사적 대응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미가 ‘어떤 위협에도 보상은 없다’고 거듭 밝힌 이상, 위협을 가중한다고 해서 회담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제재와 압박에 굴복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올 수 없듯이, 한-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 강경 대응은 중국을 더욱더 한-미 쪽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만의 딜레마는 아니다. 한-미, 특히 박근혜 정부도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개성공단의 정상화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회복이 요원하다. 중국이 나서지 않는 한 협상으로 가는 접점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주도의 안보리 제재 결의에 동참하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까지 가담했다. 북한이 중국을 ‘선의의 중재자’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협상 국면으로 갈 수도 없고, 또다시 전시 상태의 위기로 가기도 어려운 교착 국면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뭔가?
경수로 가동하면 핵무기 생산 능력도 확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딸린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38north.org)는 지난 5월1일 영변 지역에서 북한이 건설 중인 실험용 경수로(ELWR)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38노스’의 두 전문가인 닉 핸슨과 제프리 루이스는 “최신 위성사진과 과거 사진을 비교한 결과, 경수로 시설의 마지막 외부 손질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원자로 등 내부 작업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들에 따르면 경수로용 핵연료가 확보되면 올해 여름부터 시험 가동에 들어가고, 1년 이내의 시험 가동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는 전력 생산의 상업운전이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북은 2010년 11월 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다. 경수로용 핵연료인 저농축 우라늄은 이미 확보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ELWR를 가동한다는 것은 추가 핵실험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핵무기 생산 능력의 확대다. 북은 이미 5MWe급 흑연 감속로의 재가동을 선언한바 있다. 곧 시험 가동에 들어갈 실험용 경수로는 열출력 기준 100MWt급으로, 발전용량으로는 30MWe로 흑연 감속로의 6배 규모다.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이 경수로가 본격 가동되면 매년 핵무기 4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 약 20kg을 생산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렇게 되면 북의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대된다. 여기에 이미 공개된 원심분리기 2천 기의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포함하면, 북은 말 그대로 핵무기 원료의 양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무엇보다 전력 생산에 부적합한 흑연 감속로와 달리, 경수로는 전력 생산을 위한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 실험용 경수로 가동은 조만간 상업용 경수로 건설 기술을 확보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이제 북이 우라늄 농축이든 재처리든 무엇이든 전력 생산을 위한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로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도 “북한의 평화적인 핵 이용 권리를 존중한다”고 돼 있다.
북이 핵무기 개발을 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이 주권적 권리를 부정하지 못한다. 북한 경제를 옥죄온 심각한 전력난과 세계적 수준의 천연 우라늄 매장량으로 볼 때, 북은 빠른 속도로 추가 원전 건설에 나설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4월1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내각에 원자력공업성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지렛대 하나가 사라진다
지난 3월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으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도 이 경수로 건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은 지난 5월3일 ‘우리 당의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은 항구적인 노선이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역사와 현실이 보여주듯이 핵억제력을 억척같이 다져나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제건설”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당의 병진노선은 주체적인 원자력공업에 의거하여 핵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긴장한 전력 문제도 풀어 나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한-미는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기다리며 경수로 가동을 지켜볼 수 있을까? 과거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은 “플루토늄은 먹을 수 없다”며 핵무기가 북한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경수로는 다르다. 북한의 (대외) 압박 카드가 될수 있다. 한-미가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경수로 확보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그동안 진행돼온 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는 북이 모든 핵활동을 동결하고 재처리 등 핵시설을 폐기하면 미국 등이 연간 중유 50만t과 경수로 2기를 제공한다는 맞교환에 의해 가능했다. 9·19 공동성명의 핵심 합의 역시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를 존중하며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하였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의 경수로 제공을 들어 “같은 말(馬)을 두 번 살수 없다”면서, 경수로라는 ‘말’이 공동성명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했다. 당시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경수로를 ‘논스타터’(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사안)라고 말했다. 북은 “미국이 신뢰의 기본 척도인 경수로를 주지 않겠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우리로서는 우리 식의 평화적 핵활동을 순간도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결국 미국은 ‘경수로 문제를 논의하는 데 동의한다’는 문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경수로 제공은 모든 합의의 핵심에 있었고, 경수로 제공은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지렛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북은 제네바 합의나 9·19 공동성명의 핵심이던 핵 포기·경수로 제공의 협상 전략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북이 과거 협상과 전혀 다른 ‘핵 보유국 대 핵 보유국’의 협상을 요구하는 데는 3차 핵실험까지 이른 핵 보유의 현실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북한이 이제 요구하는 것은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건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량·에너지 지원으로 문제 풀 단계 지났다”
지난 4월1일 사설은 “미제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며 경제건설에 제동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4월2일 내각기관지 에 따르면 이제 “존엄 있는 주권국가이고 핵 보유국인 조건에서 미국과 대화를 해도 평등한 관계에서 하자는 것이 우리의 원칙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비핵화 협상 방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새로운 협상 전략에 대해 제네바 합의 당시 국무부 북한 담당관인 조엘위트는 지난 4월 와 한 인터뷰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으로 문제를 푸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건 통하지 않는다. 북한은 안보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북한과 직접 대면해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호 기자 한겨레 정치부 kankan1@hani.co.kr

핵심 부품 설치했으니 기본 능력 갖춘 셈
북 경수로 가동 능력은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와 핵 전문가들은 북이 과연 경수로를 완공시켜 가동할 능력이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북의 경수로 건설 현장을 직접 본 건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 소장을 지낸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일행뿐이었고, 대부분이 위성 관측 사진의 변화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0년 11월 당시 헤커 박사가 본 것은 ‘23피트(7m) 크기의 구덩이와 콘크리트 기초’가 전부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2011년 11월14일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가 당시의 위성사진과 그 이전을 비교 분석한 데 따르면, 발전소 중심 건물과 터빈실 등 다른 지원시설들은 거의 완공단계였으며 돔 모양의 원형 지붕도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여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는 북이 경수로 건설에서 중요한 진전을 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경수로 건물에 돔이 설치됐다”며 “내부에 기기 설비를 장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냉각 시스템은 이미 갖춘 상태로 이는 중대한 진척”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원자로를 감싸는 돔과 냉각시설 등 콘크리트 건물은 지을 수 있어도, 격납용기 등 원자로를 자체 제작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의문이 제기돼왔다. 경수로는 △핵연료봉 △펌프 △제어봉 등이 핵심인데, 예컨대 저농축 우라늄으로 핵연료 다발 형태로 노심에 들어가는 연료봉을 만들려면 지르코늄 특수금속의 피복 기술이 필요하다. 또 냉각수를 돌리는 특수 펌프는 한국도 자체 생산을 못한다고 한다.
많은 외부 전문가들이 북이 우라늄 농축의 핵심인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초정밀 고강도 알루미늄합금이나 초고속 극소형 모터 등의 핵심 부품을 확보하거나 생산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북은 2010년 11월 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고, 그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났으니 경수로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은 충분히 확보했을 것이다. 연료를 확보하고 경수로 핵심 부품까지 설치했는데 연료봉·제어봉 제조 등 다른 기술은 없다고 보는 건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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