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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도 과도 윤창중에 묻혔다

한-미-중 3국 전략대화 토대 마련은 성과… 남북 대화 의지, 정전체제 전환 구상 없어 아쉬움
등록 2013-05-15 20:57 수정 2020-05-03 04:27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채 5월9일 혈혈단신으로 귀국했다. 이튿날 오전 그의 성추행 의혹 관련 소식이 삽시간에 국내 모든 매체를 뒤덮었다. 새 대통령의 취임 첫 외국 방문에 대한 이야기는, 오후 박 대통령의 귀국 전부터 까맣게 잊혀질 상황이었다. 며칠 전까지 박 대통령의 패션과 영어실력을 ‘예찬’했던 국내 일부 언론은 머쓱해졌다.
윤 전 대변인의 돌출행동만 아니었다면,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서 목표한 성과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한-미 공조 체제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이른바 ‘통미봉남’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며 압박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첫 정상회담을 마친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첫 정상회담을 마친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미 공조 과시해 북한 반응 이끌었지만…

앞서 5월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을 ‘마담 프레지던트’라 부르며, “박 대통령은 취임 뒤 첫 몇 달 동안 어떤 나라라 해도 시험에 들게 할 위협과 도발에 직면했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을 정의한다고 할 수 있는 침착하고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인생과 대북정책에 동시에 찬사를 보내는 화법이었다.

박 대통령은 오찬회담 시작 때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인 ‘버락’과 자신의 이름 마지막 글자 ‘혜’가 둘 다 ‘축복을 받았다’(blessed)는 뜻이라며 친근감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촉구하면서, ‘You cannot have your cake and eat, too’(케이크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먹어치울 순 없는 법)라는 영어 관용구를 직접 인용해 상·하원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에서 두 정상이 ‘하하호호’ 하며 보여준 모습에 대해,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역겨운 입맞춤’이라는 등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했다. 동시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남조선 당국자”라며 “우리는 현 남조선 당국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자극받은 모습과 한국과의 대화 의지를 동시에 표한 것으로 본다면, 박 대통령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에서 핵심으로 추진하는 한-미-일 동맹 체제 구축에서 사실상 일본이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대한 강조다. 미국은 지난해 무산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을 재삼 강조하는 등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허물고 싶어 한다.

중국 역할론에 한-미 공감대

그러나 일본이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는 웃어넘길 수 없는 ‘장벽’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한 발언(4월23일)을 포함해, 최근 일본에선 집권 자민당을 필두로 역내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온다. 미국은 외교라인을 통해 일본에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거듭 전하며 압박한다. 5월8일 아베 총리는 “학문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어 절대적인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말했던 것으로 정치가로서 (이 문제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앞으로 일본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 한국과 일본이 손잡는 상황이 온다면(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지만), 이 또한 박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처럼 한-미, 한-일 관계에 대한 포석이 깔린 상황에서 양국 정상은 한-미-중 공조를 시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인식을 바꾸고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 데 중국의 영향(력)이 많기 때문에 중국이 이에 동참할 수 있도록 (양국 정상이) 노력해나가기로 했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우리와)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공통으로 확인하면서, 또 하나의 북한 압박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마치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미 정상회담 직전 중국에선 중국은행이 북한 조선무역은행의 계좌를 폐쇄하고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3차 북핵 실험 뒤 조선무역은행을 행정제재 대상으로 추가시켜 이곳과 거래시 위험을 경고한 데 대해, 미국을 주 고객으로 하는 중국은행이 불가피하게 내려야 했던 조처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은행이 국영이란 점을 들어, 북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고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북한을 제재하고 나선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였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 중국과의 1.5트랙(민관 합동 형식)의 전략대화를 시작한 상태다. 4월에 한 차례 회의를 열었고, 5월 안에 두 번째 회의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한-중 간 전략대화를 궤도에 올려, 중국 쪽이 수긍하면 미국까지 포함시켜 ‘3국 전략대화’를 꾸리는 게 목표다. 형식도 민관 합동에서 시작해 차차 정부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대화 주제도 재난·환경·기후변화 대처 등 ‘비전통 안보 위협’ 분야에서 북핵 문제 등 역내 안보 현안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미-중 3국 전략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공약으로, 올 초 외교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다자협력 방안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실험 국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거치며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더 이상 북한을 맹목적으로 봐주지만은 않는다는 게 한-미-중 전략대화의 앞날을 밝게 내다보는 전제다.

친미·결일·연중·방북?

구한말 에는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 곧 중국을 더욱 가까이 섬기고 일본·미국과 한편으로 연대해서, ‘방아’(防俄), 즉 러시아를 막으라는 외교전략이 담겨 있었다. 이 표현을 빌리면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전략은 ‘친미, 결일, 연중, 방북’, 곧 미국을 더욱 가까이 섬기고 일본·중국과 연대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형식이다. 고립이 장기화하면 북한도 불가피하게 평화적 대화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햇볕정책’에 빗대면, ‘강풍정책’도 크게 어긋난 표현은 아닐 성싶다.

올해는 1953년 7월 정전협정 석 달 뒤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한-미 동맹 60주년의 해다. 하지만 정전협정 자체의 60주년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한-미 동맹의 새 시대를 위해 ‘60주년 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평화협정 체제 등 정전협정의 발전 방향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과의 대화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 대화 채널이 있었다면 어떨지에 대한 상상도 허용되지 않는 구조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성과도 패착도 모두 ‘윤창중 스캔들’이 집어삼켜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것이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인지도 모른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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