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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 필요한 게 ‘불도저’였나

김재철 후임에 경남MBC 사장 지낸 김종국 선임… 노조 반발 누르고 지역사 통폐합 주도해 ‘눈도장’
등록 2013-05-12 14:15 수정 2020-05-03 04:27

기나긴 ‘김재철 시대’를 끝낸 MBC가 과연 ‘정상화’를 향해 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지난 5월2일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김종국 사장이 과연 안팎의 평가처럼 ‘제2의 김재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종국 사장 본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 줄곧 억울하고 불쾌하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자신은 엄기영 전 사장 때 임원으로 승진했을 뿐 아니라 김 전 사장과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도 없는 등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의 항변에 타당성이 있다면, 시작 전부터 ‘김재철 시즌2’라거나 ‘제2의 김재철’이라고 먼저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여당 추천 이사들 ‘교감’ 있었던 듯

한겨레 윤운식 기자

한겨레 윤운식 기자

지난 3월 말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직후만 해도 김종국 사장은 사장 후보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항상 후보군에 있던 황희만 전 MBC 부사장, 정흥보 전 춘천MBC 사장, 구영회 전 MBC 미술센터 사장 등과 함께 ‘김재철 라인’으로 평가받는 전영배 MBC C&I 사장, 이진숙 기획홍보실장 등이 거론됐을 뿐이다. 그러다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후임 사장 선임 일정을 확정한 4월 중순 이후 김종국 사장이 갑자기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다.

MBC의 지분 70%를 보유한 방문진은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사회는 6명의 여당 추천 이사와 3명의 야당 추천 이사로 구성된다. 여기에 ‘과반의 찬성’이라는 이사회 의결 조건을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여당이나 청와대의 뜻이 6명의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를 통해 현실로 드러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 정권 때 김재철 전 사장이 정권 편향 방송으로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안팎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때마다 방문진의 여당 추천 이사들은 줄곧 김 전 사장의 방패막이 돼준 바 있다. 이런 기본적인 구도를 볼 때, 김종국 사장의 갑작스런 부상은 일차적으로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 사이의 ‘교감’에 따른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교감이 김재철 사장 때와 같이 여당·청와대와도 연결돼 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김종국 사장이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의 지지를 받게 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MBC 안팎에서는 ‘불도저식’으로 노조와 날카로운 대립을 펼쳤던 김종국 사장의 경영 스타일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종국 사장은 지역사들을 통폐합해 경남MBC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에 반발하는 노조원들에게 해고·소송 같은 초강수로 대응한 바 있다. MBC 노조를 ‘정치 노조’로 인식하고 적대시해온 여당 추천 이사들이 이런 김 사장의 경영 스타일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제2의 김재철’ 평가 억울하다지만

이는 김재철 전 사장이 지난 정권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의 비호를 받으며 펼쳐 보였던 바로 그 스타일이기도 하다. 비록 예기치 못한 갈등이 빚어져 김 전 사장을 해임하긴 했지만, 여당 추천 이사들에겐 여전히 ‘김재철식’ 경영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들과 비슷한 스타일을 보이는 전영배 MBC C&I 사장이 먼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친분 때문에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김 사장 본인이야 ‘제2의 김재철’이란 말이 억울할지 모르지만, 이런 맥락을 따지고 보면 안팎의 우려에도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지역사 사장 및 임원으로 누굴 앉힐 것인가, 내부 갈등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해고자 복직과 보복성 징계는 어떻게 풀 것인가 등 MBC 새 사장의 결정을 기다리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김 사장이 ‘제2의 김재철’인지 아닌지는 이런 구체적인 사안들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날 터다.

최원형 오피니언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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