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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죽는 수밖에 없다”

남북경협 파탄으로 줄도산 앞둔 경협 기업인들 잔혹사… 여전히 재계에 매력적인 남북경협 살리는 전향적 대북정책 염원
등록 2013-05-12 14:02 수정 2020-05-03 04:27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가 한 달을 넘어
섰다. 지난 4월3일 북한은 돌연 개성공단 통행 차단을 선언하고, 남쪽으로의 귀환만 허용했다. 일부 업체들의 조업이 중단되는가 싶더니, 4월8일 북한은 노동 인력을 전원 철수시켰고 결국 9일부터는 사실상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4월25일 마땅한 대화 채널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하루의 말미를 주며 실무회담을 제안했고, 이튿 날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개성공단의 우리 쪽 인원들을 철수시켜버렸다.

정부가 개성공단 남쪽 인원들을 전원 철수시키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4월27일, 기업인들이 차량 60여 대에 나눠 타고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다. 이날 남쪽으로 넘어온 차량엔 하나같이 완제품과 원부자재, 개인 소지품이 주렁주렁 묶여 있어 ‘남부여대’식 피난길을 방불케 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정부가 개성공단 남쪽 인원들을 전원 철수시키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4월27일, 기업인들이 차량 60여 대에 나눠 타고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다. 이날 남쪽으로 넘어온 차량엔 하나같이 완제품과 원부자재, 개인 소지품이 주렁주렁 묶여 있어 ‘남부여대’식 피난길을 방불케 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font size="3">천안함 사건, 경협 중단의 분수령</font>

숨가쁜 듯, 별 소득 없이 흘러가버린 이 한달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개성공단 건설 이전부터 남북을 오가며 경제협력의 발판을 다졌던 기업인들이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과 1989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을 효시로 삼는 남북경협 20여 년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관계의 파탄 속에서 눈물을 삼켰던 이들은 바리바리 짐을 챙겨 승용차 지붕에 묶은 채 남쪽으로 내려온 개성공단 기업인들을 보면서, 몇 해 전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남북경협은 이명박 정부 들어 규모가 차차 쪼그라들어, 결국 임기 말에는 개성공단 하나를 남겨놓고 사실상 모든 게 중단된 상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08년 7월 발생한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 2009년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4월5일) 무렵 정부는 ‘신변 안전’을 이유로 민간인의 방북을 제한했고, 핵실험(5월25일) 이후엔 아예 불허했다. 개성공단이 아닌 평양 등 북한의 내륙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들과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방북이 차단됐다. 2010년 3월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분수령으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끝내 2010년 5월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무역 중단 △북한주민과의 접촉 제한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등의 내용을 담은 ‘5·24 조처’를 발표해 사실상 경협을 전면 중단시켰다.

유일하게 개성공단만이 예외였다. 그래서 한때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다른 경협 기업인들의 부러움을 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뒤 피 말리는 심정으로 몇 년을 버틴 터에, 개성공단마저 ‘수모’를 겪고 있는 모습이 한층 안타깝다. 남북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본인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게 불안하고, 개성공단을 나온 기업인들이 자기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 염려스럽다. 남북경협의 파탄은 우리 기업들에도 막대한 피해를 줬다.

경협 기업인들에게 5·24 조처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의 정양근 상임위원장도 개성공단 인근에서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근처 북한 땅을 허가받아 농사를 짓는 한편, 북한과 중국의 농산물을 사들여 개성공단에 식자재를 공급하려 했다. 남쪽에서 가져가는 데 견줘 20~30%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들이 환영할 것으로 내다보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보관 및 전시 시설을 설치한 상태에서,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방북 신청과 물품·자재 반출 신청에 대해 통일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2009년 정부의 민간인 방북 제한 조처가 내려진 무렵이었다. 뉴스를 보고 소식을 접했을 뿐, 별도의 공지도 없었다. 늘하던 대로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를 통해 받은 북한 파트너 쪽 초청장을 첨부해 인터넷으로 방북을 신청했으나, ‘불허’라는 답장 외에 언제 풀릴 예정이란 설명도 없었다.

<font size="3">북한의 대중 및 제3국 자원 수출 늘어</font>

정양근 위원장은 금강산에서도 사업을 벌였다. 북한산 견과류를 사들여 금강산 근처에 설치한 컨테이너형 공장에서 가공한 뒤 관광객에게 판매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땅콩 재고를 남쪽으로 가져오려 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재고 물량을 시장에 반출하지 않고 세관에 보관하는 선에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유일한 해법이던 ‘금강산 관광 재개’는 시간이 흘러도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011년 초 썩은 땅콩 13t을 모두 불태워야 했다. 북쪽에 남아 있던 호두와 잣도 부패했고, 포장지와 상자 등 부자재도 모두 부식돼 폐기했다. 전체 손실이 2억원 규모였다.

개성공단 바깥에서 시행된 대표적인 남북경협 사업인 ‘모래 반입’도 난관에 봉착했다. 석산을 개발하거나 바닷모래와 강모래를 북한에서 가져와 국내 건설시장에 내다팔던 기업이 많았다. 황해도 해주에서 석산을 개발해 골재를 채취한 ㄱ업체는 전체 990만달러를 투자해서 16만5천m²(약 5만 평) 규모의 부지를 확보했고 5만m²(약 1만5천 평) 크기의 공장도 지었다. 5·24 조처로 접촉이 불가능해지면서 투자한 만큼이라도 국내 반입을 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경영 사정이 악화돼 법정관리에 맡겨졌다. ㄴ업체는 채취한 바닷모래와 강모래를 개성공단 외곽에 쌓아놓은 상태다. 허가만 해준다면 트럭 등을 이용해 육로로 실어와도 되는데 허가가 나지 않는다. 남북경협이 주춤하면서 모래를 포함한 북한 자원의 대중국 및 제3국 수출이 늘어난 것은 자명하다.

바닷길을 통한 운송에 관심을 쏟았던 기업인들도 답답하다. ㄷ업체는 북한에서 석탄을 들여와 국내 발전소에 납품하기 위해 평안남도의 한 지역에 121억원을 투자해 탄광을 개발하고 석탄 전용 부두까지 지었다. 그러나 투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새로 지은 부두에 들여놓으려던 각종 설비를 아직도 경기도의 한 창고에 보관하면서 되레 3억원이 넘는 보관료가 발생했다. 납품하려던 발전소 등이 매기는 벌금(입찰 미이행)도 9억원 규모다. 자구책으로 36명이던 본사 인원을 8명으로 줄이고 외국 사무실을 철수시키는 등 고육책을 썼지만 여전히 힘들다. ㄹ해운사도 인천∼남포 구간을 운항하던 항로가 차단되면서 손실이 늘어났다. 이들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서해에서 벌어지는 긴장 상황 때마다, 경협이 계속됐다면 서해상에서도 일종의 안전망 구실을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항변한다.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려던 기업들도 줄줄이 손실을 보고 있다. ㅁ업체는 개성에 공장을 지어 마늘을 가공했다. 남쪽에서 보낸 마늘의 껍질을 까서 포장한 뒤, 다시 남쪽으로 가져오는 식이었다. 1만6500m²(약 5천평) 규모의 공장과 장비·설비·차량 등 전체 26억원을 투자했지만, 5·24 조처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북한에 원단을 보내 현지 공장에서 옷을 지어와 국내 업체에 납품했던 ㅂ사는 전체 26만달러의 투자금에서 임가공비 공제 등으로 절반을 회수한 상황에서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2010년 봄 40억원어치의 가을·겨울 옷 생산을 계약하고 원부자재를 보냈지만, 북한의 공장들은 5·24 조처 뒤 접촉이 힘들어지면서 생산을 뒤로 미뤘다. 결국 전량도 아닌 일부만이 이듬해 초에 생산돼 1~3월에 걸쳐 국내로 들어왔고, ㅂ사는 철 지난 옷들이라 75% 할인판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13억76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북한 공장은 한국 회사와 접촉이 뜸해진사이, 중국 회사의 유럽 수출 물량을 생산했다고 한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은 남북 민간 경제협력의 신호탄이었다. 한겨레 자료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은 남북 민간 경제협력의 신호탄이었다. 한겨레 자료

<font size="3">강원도 고성군 일대 주민들도 피해</font>

금강산 관광 중단 5년은 해당 기업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금강산에서 사업을 벌였던 한 기업인은 최근 어느 야당 정치인을 찾아가 신세를 한탄하며 “이제는 죽는 수밖에 더 있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쪽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뒤 금강산 관광은 모양이 초라해졌다. 최요식 금강산기업인협의회 회장은 “남쪽 관광객이 없어지면서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 수가 확 줄었다. 우리가 육로관광으로 보낼 때 많으면 하루 2천 명까지도 이르렀는데, 지금은 한 달에 30~40명 선이라고 한다. 중국 관광객들은 교통이 불편해서 굳이 금강산까지 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금강산에서 운영 중인 호텔은 북한이 건축해 북한 소유물이자 북한의 전기로 운영되는 금강산호텔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이 리모델링을 해서 임차해 쓰던 호텔이다. 역시 북한 소유인 외금강호텔도 현대아산이 운영하긴 했지만 남쪽 전기를 쓰는 탓에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한국관광공사)가 만든 온천장은 현재 북한 쪽이 운영한다. 하지만 남쪽의 민간이 투자해서 만든 해금강호텔, 금강패밀리비치호텔, 온천장마을, 해금강횟집, 기념품판매소 등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5년 가까이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은 관광시설의 상황은 뻔하다. “금강산 시설들은 전부 수리를 해야 할 상황이다. 호텔 방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문짝이나 가구도 망가졌다고 한다. 기계나 차량은 5년 동안 세워둔 탓에 모두 못 쓰게 됐다.”(최요식 회장) 당장에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 수익은 없는데, 언젠가 재개된다면 오히려 각종 수리 비용이 들 판이다.

‘금강산 특수’를 기대하며 식당업·숙박업 등에 나섰거나, 기존 운영 식당을 확장했던 강원도 고성군 일대 주민들도 무시할 수 없는 피해자다. 오가는 관광객들이 백숙을 먹으러 들르곤 했던 ㅅ식당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관광이 중단된 상황에서 집을 담보로 신용협동조합에서 빌린 2천만원의 이자율은 11.4%에 이른다.

경협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신용도가 추락한 기업인들의 대출금 이자가 많게는 10%대까지 뛰어오른 것도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개성공단 외 일부 업체들은 5·24 조처이후 이자율이 많게는 5~7%포인트까지 올랐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ㅇ사의 대출 이자율은 4%대에서 12%로 껑충 뛰었다. A+였던 신용등급은 8단계 떨어져 BB-로 곤두박질쳤다. 10·4 선언 때 남북 당국이 약속한 기숙사 건설이 지연돼 노동자 수급이 어려워진 탓이다. 공장 가동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했고, 2009년 9월부터 가동한 이후 3년 동안 매달 1억5천만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미 대금을 지급한 물품을 들여올 수 없어 자금난을 겪는 경우도 즐비했다. 농수산물을 북한에서 수입했던 ㅈ사는 5·24 조처 이전에 북어채 대금으로 4만8400달러를 송금했다. 그러나 교역 중단 뒤, 물품을 전달받지도 대금을 돌려받지도 못했다. 자금난 속에서 2009년 5억원을 기록했던 매출 규모는 2011년 7천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선불금을 이미 낸 상황에서도 물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정부의 조처에 대해 기업인들은 “이거야말로 아무 조건 없이 북한에 현금을 안겨주는 것 아니냐”며 비웃기도 한다.

<font size="3">기업 10곳 가운데 7곳 “경협 관심 있다”</font>

5·24 조처 이후 정부는 반출·반입을 허용하는 ‘유예 및 긴급 구제조치’를 실시해, 5·24 이전에 북한에 반입된 원부자재로 생산한 물품의 국내 반입을 한시적으로 승인했다. 일부 숨통이 트인 곳도 있었지만, 남북교역을 주 업무로 삼는 경협 기업들은 피해를 피하지 못하고 손실 일로에 내몰렸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에 정부는 특별대출 형태로 금융 지원에도 나섰다. 그러나 지원이 아닌 대출이었고, 5·24 조처로 사업 기회를 차단시켜놓은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도 없었다.

개성공단을 통한 교역이 성장하면서 전체 남북교역이 성장하는 듯한 착시가 빚어졌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남북 간 실질 교역을 뜻하는 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은 2011∼2012년 들어 거의 실종됐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2011년 1월24일부터 2개월 동안 남북경협 기업들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설문에 제대로 응답한 기업 104곳은 5·24 조처로 전체 403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금강산 지역에 진출한 기업 30곳도 관광 중단으로 1178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쪽에서 남북경협 중단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는 ‘응징’의 성격이 깔려 있다. ‘남북경협=퍼주기’라고 인식하다보니, 말을 듣지 않는 북한을 벌하겠다는 식의 태도다. 최근 보수언론이 개성공단을 ‘북한의 달러 박스’라고 표현해 북한을 자극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정부는 5·24 조처로 북한의 연간 외화수입이 2009년 기준 약 2억5천만~3억달러가 줄어드는 직접적 피해를 입는다는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수치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북한이 실질외화수입에서 타격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협력’과 ‘교역’의 쌍무적인 특성상, 우리 쪽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퍼주기’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건비·물류비 절감과 자원 확보 등으로 대표되는 남북경협의 장점은 여전히 재계에 매력적인 제안이다. 올해 초 국내 기업 500 곳을 상대로 한 대한상공회의소 여론조사에서, 10곳 가운데 7곳(73.4%)은 “남북경협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남북경협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게(64.8%) 나타난 가운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경협 확대에 큰 영향을 줄 변수 1위(39.9%)로 꼽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신변 보장 및 재발 방지에 대한 북한의 확약’을 조건으로 금강산 관광의 재개 가능성을, ‘북한의 태도 변화’를 조건으로 5·24 조처 해제 가능성을 각각 시사한 바 있다.

남북경협의 앞날에 대해선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이 많다. 드넓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얘기다. 개성공단이 위기로 치닫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그랬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법무팀장으로 일한 김광길 변호사는 지난 4월30일 한 모임에서 ‘개성공단의 국제화 전략과 법제도적 과제’라는 발표를 통해, 외국 기업의 개성공단 유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창규 산업통상자원부 투자정책관은 지난 4월25일 한 토론회에서 ‘제2, 제3의 개성공단’ 건설을 통해 평양권으로 경협 지역을 확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960호 기획

960호 기획

<font size="3">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font>

지난 4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것이겠지만 무작정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지, 국민의 희생이 너무 크다. 이 문제를 논의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이라고 말했다. 파탄 난 경협 기업들의 현실 속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은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이 아닐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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