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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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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결과에 ‘정면 돌파’ 주먹 불끈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여론조사 결과 안 후보에게 절대 우호적… 이슈도 없고 쟁점도 없는 선거, 당선만이 문제
등록 2013-04-14 17:55 수정 2020-05-03 04:27

안철수 후보는 지난 4월4일 서울 노원구 선거관리위원회에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4월24일) 후보로 공식 등록한 뒤 “이번 선거는 노원만을 바꾸는 지역선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전국선거”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세 가지 입장도 밝혔다. “새정치로 정면 승부하겠다” “권력의 독선과 독단에 경종을 울리겠다” “이번 선거를 국민의 승리로 만들겠다”. 안 후보는 그러면서 “저는 감히 안철수의 당선은 국민의 승리라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대선 출마 선언 같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5일 전은 제게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넉 달 전 대선 때 (후보 사퇴로) D-26에서 멈췄던 시계가 드디어 D-25로 찰칵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매일 새롭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정면 돌파하겠다”고 적었다. 20일 뒤 ‘정면 돌파’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당선될 것 같으세요?” 지난 4월3일 서울 노원구 상계5동 계상초등학교 앞에서 안 후보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해야죠. 지금은 한분 한분 만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를 보더니 뛰어가 손을 잡는다. 안 후보는 1시간30여 분 동안 인근 상점들을 돌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사인을 받았다. 음식점에서 안 후보는 무릎으로 걸었다. “대선 때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만 갔다.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텅 빈 저곳에 한 분계시면 전속력으로 달려가 딴 데 가시기 전에 손을 잡는다. 이런 게 진짜구나 싶다”(3월 31일 기자간담회)는 말처럼 ‘달라진 안철수’였다. 그는 쉴 새 없이 “잘 부탁드린다” “잘하겠다” “더 자주 뵙겠다”고 말했다. 대선 때 중도 사퇴를 아쉬워하는 주민에게는 “이번엔 반드시 끝까지 정면 돌파하겠다”고 말했다. 정면 돌파가 뜻하는 게 ‘완주’는 아닐 텐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서울 노원병 선거는 ‘여 1, 야 3’ 구도로 짜였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왼쪽부터)가 4월4일 서울 노원구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러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서울 노원병 선거는 ‘여 1, 야 3’ 구도로 짜였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왼쪽부터)가 4월4일 서울 노원구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러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안철수 “우리 힘으로 가겠다”

“‘안철수의 새정치’란 깃발을 들고 우리 힘으로 가겠다.” 캠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가 등록하면서 노원병 선거는 ‘1 대 3’의 구도가 됐지만, ‘야권 단일화’ 얘기는 쑥 들어갔다. 안 후보가 단일화에 뜻이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다, 민주통합당의 무공천 결정으로 단일화를 ‘압박’할 주체도 사실상 사라졌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에 경고해야 한다, 안 후보와 김 후보는 지난 대선 때처럼 지혜를 발휘해달라”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주문했는데, 이는 선거판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한 처지에서 나온 궁색한 언사에 가깝다. 진보정의당은 “단일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선거운동에 임하고 있다. 안 후보가 저희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들어오실 때는 우리 당을 무시해도, 또 단일화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천호선 최고위원)이라며 완주 뜻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진보정의당은 이번 선거를 ‘삼성 X파일 국민법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 후보 쪽의 한 관계자는 “우린 물러설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여론조사 결과도 대체로 안 후보에게 우호적이다. 3월30일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는 안철수 40.5%, 허준영 24.3%, 김지선 5.1%, 정태흥 0.5% 순으로 나타났다. 4월1~2일 KBS-미디어리서치 조사도 안철수 44.5%, 허준영 24.5%, 김지선 6%, 정태흥 1.6% 순이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와 허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혼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김광림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장은 “연구소 자체 여론조사 결과 상당히 밀리고 있는 게 사실”(4월3일 PBC 라디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투표와 득표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보궐선거의 특성 때문이다. 평일에 치르는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30~40%대 수준으로 낮은 탓에 조직력이 우세한 후보가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원병은 서울의 북동쪽 끝에 위치해 직장까지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 출퇴근 투표가 쉽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이번 선거에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제로 투표율이 다소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전투표는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고 선거일(4월24일) 전인 19~20일에 동마다 하나씩 설치되는 부재자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전당적 지원’을 받는 다른 후보에 견주면 안 후보의 조직력은 떨어진다. 새누리당은 후보 등록일에 맞춰 허준영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허 후보는 선거사무소를 상계중앙시장 입구에 차리고 바닥을 다지고 있다. 4월4일 ‘출마의 변’에서는 창동철도차량기지와 도봉면허시험장 조기 이전 등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철저히 ‘지역일꾼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무장을 맡고 있는 이한국 노원구 의원은 “30% 후반대의 투표율을 예상하고 있다. 조직은 당연히 새누리당이 탄탄하다. 허 후보는 임기가 이제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지지자들에게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일 보궐선거 조직력 우세 후보가 유리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는 노회찬 전 의원과 노원병에서 5년 동안 함께 일궈온 풀뿌리 단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상계동 마들역에 자리잡은 선거사무소는 진보 인사들의 월례 특강으로 잘 알려진 마들연구소 사무실이다. 지역 생활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관련 자료 등이 빼곡하다. 그리고 ‘노회찬은 무죄입니다. 김지선이 나섰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김후보의 멘토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견주면 ‘무소속’ 안 후보는 그야말로 안철수라는 이름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동섭 민주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불출마와 함께 안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지역 조직의 물밑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안 후보는 민주당 중앙당은 물론 대선 파트너였던 문재인 의원의 지원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단일화 없이 정면 돌파’ 의지다. 안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차분하게 가려고 하는 건데, 투표율이 제일 걱정이다. ‘당선이 되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 캠프는 사전투표제를 알리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안 후보는 후보 등록 직후 두르기 시작한 어깨띠에도, 후보 명함에도, 누리집 첫 화면에도 ‘19~20일 먼저 투표하세요’란 문구를 적었다.

지지자 27%는 새누리당 지지층

투표 독려 말고 안 후보가 집중적으로 내세우는 건 ‘새정치’란 화두다. 자신의 존재, 당선 자체를 새정치라고 규정하는 인식은 대선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대선 때는 제도 개혁에 방점을 뒀던 것과 달리, 이번엔 “민생을 해결하는 정치가 새정치”라고 강조한다. 그는 3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정치는 지금까지 없었던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정치가 원래 해야 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도 지금은 말밖에 없지만, 새정치는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결과물이다. 새정치는 실천이고, 실천을 위해 국회에 들어가 하나하나 해보고 싶다.”

안 후보가 정치의 기본과 상식을 강조한다해도 새정치를 ‘결과’로 보는 이상 그 내용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원에 자리한 안 후보의 정치 지형을 고려하면 이런 모호성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자 가운데 27%는 새누리당 지지층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성향 유권자와 중도층, 야권 지지층을 모두 안고가야 하는 안 후보의 처지에서는 기성 정치를 비판하면서 결국 인물론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안 후보 쪽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지층이 넓기 때문에 특정 타깃층을 정해 공략하기도 어렵다. 새정치를 실천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2011년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 연상

새누리당과 진보정의당은 ‘새정치의 모호함’을 집중 비판하고 있다. 허준영 후보는 “안 후보가 표방하는 새정치의 실체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천호선 진보정의당 최고위원은 안 후보와 이동섭 민주당 당협위원장의 만남에 대해 “당 공천을 받은 적이 없는 민주당의 공식 후보도 아닌 예비 후보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서는 이런 것이야말로 정치공학적 계산이 아닌가. 똑같은 것도 안 후보가 하면 새정치고 다른 정치인이 하면 구태정치냐. 진짜 안 후보가 이야기하는 새정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능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3월2일 TBS 인터뷰)고 말했다.

안 후보의 서울 노원병 선거는 얼핏 2011년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경기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를 떠올리게 한다. 새누리당의 수도권 텃밭에서 손 대표는 ‘인물론’을 앞세우고 ‘변화’라는 화두로 승부를 걸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는 ‘중산층의 꿈’이라는 구호로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당’을 부러 감추는 ‘조용한 선거’ 전략을 폈는데, 물밑에서는 국회의원 수십 명이 나서 온갖 인맥을 동원해 저인망식으로 표밭을 훑었다. 51% 대 48.3%로 이겼다. 새누리당 텃밭에 과감히 도전했다는 자체로도 평가를 받았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현재 노원병 보궐선거는 경기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처럼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의미가 부여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안 후보가 조용한 승리를 하게 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선거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아직까지는 안 후보가 이슈와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노원병 선거는 결국 자신이 당선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로 의미가 좁혀졌다는 얘기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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