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사실상 낙마했다. 1월2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특별업무추진비 유용 등 핵심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논문 표절, 부적절한 관용차 운용과 재산 증식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졌다. 친여 성향의 보수 언론들조차 이 후보자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보도를 연일 비중 있게 내보냈다. 결국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위한 여야 협상에서 새누리당이 야당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설득의 명분을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박근혜 당선인과 사전 교감을 거쳤다. ‘이명박근혜 인사’라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28일 청와대에서 배석자 없이 독대했다. 그리고 닷새 뒤 이 대통령은 이 후보자를 지명한다. 지명이 이뤄진 지난 1월3일 청와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설명도 그랬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당선인 쪽과의 조율을 거쳤다”고 공식 설명했다.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도 “청와대와 협의한 인선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파문이 일자 말이 달라졌다. 박 당선인 쪽의 조윤선 대변인은 “이동흡 후보자는 현 정부의 인사라는 게 본질”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우리는 헌법재판소장 인선을 하지 않고 박 당선인에게 일임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측근은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목한 구체적인 이유 등은 밝히지 않았다. 3배수로 추천된 후보군 중에서 박 당선인이 이 후보자를 선호한 배경에는 후보자의 보수적 성향과 대구 출신이라는 점이 두루 반영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새누리당에서도 비토론이 비등했다. 황우여 대표는 “특정업무경비를 콩나물 사는 데 써서야 되겠느냐”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도 박 당선인과의 심리적·실질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꼽히는 이한구 원내대표는 청문회 전후로 이 후보자를 “헛소문에 의해 피해받은 사람”이라고 두둔하는 한편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을 향해선 “그게 새 정치냐”고 화살을 돌려 비난을 자초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의 고등학교(대구 경북고) 3년 선배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전임자 탓’ 할 수 없어
결국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 야당은 이 후보자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공금횡령죄로 고발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조순형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1월24일 “이 대통령이 박 당선인과 사전에 협의했다는데 이동흡 파문은 박 당선인의 ‘나 홀로 인사’ 결과물이 아니냐”며 “박 당선인은 앞으로 5년 동안 인사를 참 많이 할 텐데 이번 일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인사 방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편중과 최악의 도덕적 기준이 부른 ‘이명박 시대’의 인사 잔혹사는 결국 이동흡 파문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박근혜 시대’는 다를까. 앞으로는 ‘전임자 탓’도 할 수 없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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