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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총리에서 의전총리로?

등록 2013-01-29 22:16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애초 대선 과정에서 내세웠던 두 가지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국민 통합이었다. 어쨌든 정치 개혁 의제는 후순위였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 거세게 불었다. 맞불을 놓아야 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총리 및 국무위원의 권한 및 정책 책임성이 미흡해 제왕적 대통령제로 비판받았다. 총리의 정책 조정 및 정책 주도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책임총리제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회의원 특권 조정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월24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목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월24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목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실상 책임총리론의 폐기

하지만 당선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는 거꾸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과 운영 과정이 그랬다.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핵심 실세들조차 “전혀 몰랐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등 문제적 인사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완장을 차자 ‘불통’과 ‘밀봉’의 이미지가 확대재생산됐다. 권한과 책임은 분산되기는커녕 박 당선인 본인에게 집중됐다.

새 정부의 첫 총리로 박 당선인이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한 것은 사실상 책임총리론의 폐기다. 당선인 주변에선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보장한다고 했지 책임총리제를 도입한다는 게 아니었다”는 물타기 해석이 흘러나온다. 김 후보자는 인수위원장으로서 자신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책임총리는커녕 의전총리·대독총리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실세 2인자’를 용인하지 않는 박 당선인 특유의 인용술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박 당선인 쪽에선 집행의 권한과 책임을 각 부처 장관에게 집중시키는 ‘책임장관제’의 모델도 거론하지만, 이런 구조에서 과연 장관들이 얼마큼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은 1월25일 “김용준 후보자는 국정의 전반적인 경험이 부족하고, 책임총리와도 거리가 멀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직할 체제로, 친정 체제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신호탄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원로 법조인으로서 ‘법치주의의 복원’을 강조한 대목이 진의와 무관하게 박 당선인의 독선적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1월24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후보자는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져버린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할 적임자”라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에게서 인수위원장 임명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대통령직인수에 관한 법률’을 찾아 읽었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주례사도 판결문처럼 쓴다”는 말도 나온다. 김 후보자는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겠다”고 했다. ‘모두 거느려 다스린다’는 의미의 통할(統轄)은 실생활에선 잘 쓰지 않는 법률 용어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를 강조했는데, 이것이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뚜렷한 결격 사유 없다는 점이 강점?

김용준 후보자는 올해 75살로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역대 최고령 총리다. 현재까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례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10월 당시 73살의 나이로 취임한 현승종 전 총리였다. 기자회견장에서도 김 후보자는 “(기자들의)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거나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질문 자체를 듣지 못해 “뭐라고?”를 반복하는 김 후보자에게 조윤선 대변인이 다가가 질문 내용을 설명해주는 일도 있었다.

첫 총리로서의 상징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박 당선인 쪽은 김 후보자가 영남이 아닌 서울 출신이고 친박 인사도 아니라는 점에서 ‘통합형 총리’라는 의미에 애써 방점을 찍고 있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헌법재판소장까지 지낸 입지전적 스토리도 강점으로 본다. 거기까지다.

역대 정부의 첫 총리들과 비교해봐도 그렇다. 김영삼 정부는 호남 출신인 황인성 전 총리의 기용으로 동서 화합의 명분을 노렸다. 김대중 정부에선 김종필 전 총리가 등장했다. ‘DJP 연대’의 결과물이었다.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가진 책임총리라는 용어가 이때부터 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보수 성향인 고건 전 총리를 지명해 안정과 균형의 이미지를 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첫 총리로 기용한 한승수 전 총리는 경제·외교 등 3개 분야의 장관을 거친 전문성과 관료사회에 대한 장악력이 강점으로 꼽혔다. 보완재든 대체재든 어떤 정권에서나 초대 총리의 기용은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플러스알파’를 노리는 정무적 성격이 강했다. 반면 김용준 후보자는 뚜렷한 결격 사유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과연 박 당선인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야당, 철저한 검증 별러

검증 과정에서도 험로가 예상된다. 두 아들이 제2국민역으로 군 면제 판정을 받은 사실이 우선 거론된다. 장남은 신장과 체중 미달, 차남은 통풍이 면제 사유였다. 김 후보자의 경우에는 소아마비 병력으로 군 입대 대상이 아니었지만, 세 부자가 모두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휘발성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야당은 군 면제뿐 아니라 2000년 헌법재판관 퇴임 이후 2010년까지 법무법인 율촌의 상임고문으로 일하는 동안의 급여 내역 등 재산 증식과 관련해서도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다. 공직자에 대한 재산 공개가 처음 시행된 1993년 대법관으로 일하고 있던 김 후보자는 본인과 부인, 두 아들의 재산을 합쳐 약 29억8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당시 대법관 14명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였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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