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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마저 ‘밀봉’한 인수위

등록 2013-01-15 20:32 수정 2020-05-03 04:27

“국방부와 중소기업청 업무보고를 가장 먼저 받는 배경이 뭡니까?”
“업무보고 일정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목표를 국민에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짰습니다.”
“아니, 두 기관을 먼저 하는 의미를 설명해달라고요.”
“설명이 된 것으로 압니다.”
1월8일 오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이뤄진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과 취재진 사이의 질의응답이다. 각 정부 부처로부터 받을 업무보고 일정을 공개하면서도 윤 대변인은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다. 특별히 비밀을 유지할 사안도 아니다. ‘안보’와 ‘상생’이라는 열쇳말로 풀어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회견장 밖에서 가진 백브리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은 윤 대변인에게 업무보고 일정의 의미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두 차례 더 했다. 그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로 시작하는 본인의 말을 한 차례 더 되풀이한 뒤 “여기까지 설명했으면 알아서 이해해달라”고 말을 흐리며 멋쩍게 웃었다. 각종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모른다” “확인되지 않았다” “더 이상 저에게 물어봐도 설명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취재진의 압박이 계속되자 그는 “나도 사람인데…”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창중·박선규·조윤선 대변인(왼쪽 부터)이 인수위 공식 출범 이전인 지난해 12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환한 표정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창중·박선규·조윤선 대변인(왼쪽 부터)이 인수위 공식 출범 이전인 지난해 12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환한 표정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당부’라며 ‘협박’하는 당선인 대변인

‘박근혜 시대’ 5년의 국정운영 방향타가 될 인수위가 특유의 ‘비밀주의’와 ‘불통’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간 인수위원들은 언론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필두로 인수위 관계자들이 사무실을 오가는 아침·저녁으로 늘 취재진과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1월9일 아침에는 경제1분과 인수위원인 홍기택 중앙대 교수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취재진에게 귤을 나눠주는 일도 있었다. “누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셧업”(Shut up)이라고 응수했다. 한 기자가 “홍기택 교수 아니냐”고 묻자 그는 “홍기택이 누구냐”며 인수위 사무실로 몸을 피했다. ‘철통 보안’을 금도로 여기는 박근혜 인수위에서 벌어진 숱한 블랙코미디 중 하나다.

박근혜 당선인은 모든 언로를 대변인단으로 한정했다. 전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인수위가 노출했던, 내실보다 설익은 말이 앞서 벌어졌던 혼선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국회의원 출신 등 정무형 측근들이 대거 포진했던 이명박 인수위와 달리 박근혜 인수위는 위원 24명 중 17명이 박사 학위 소지자고, 그중 16명이 교수 출신이다. 언론과의 접촉에 익숙지 않은 인수위원이 상당수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대변인들의 ‘입’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 ‘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자와 논객 시절에 쏟아냈던 극우적 망언으로 ‘최악의 인사’라는 비난을 받은 윤 대변인이다. 인수위의 공식 출범과 맞물려 논란은 대변인으로서의 자질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인수위의 소통을 책임져야 할 윤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은 느리다.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서,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자료로 정리해두지 않은 정보와 의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윤 대변인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자료를 뒤지며 의미 없는 동문서답을 내놓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기삿거리가 안 되니 신경쓰지 말라. (내용에) 영양가가 있고 없고는 대변인이 판단한다. 이런 식이면 발표할 게 없으면 안 오고 말겠다”(1월6일 인수위원 워크숍 브리핑)는 등 오만한 태도로 또다시 설화를 자초하는가 하면, “나는 완전히 혼자 뛰는 (인수위 내부의) 1인 기자, 단독 기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여러분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나름의 판단”(1월10일 오전 브리핑)이라는 등 생뚱맞은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언론비서관과 대변인을 지낸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브리핑의 상당 분량을 ‘언론에 대한 당부’에 할애하곤 한다. 인수위 출범 직전에도 그는 “대변인이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할 때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써달라” “지금은 부탁이지만 나중에 이게 아니다 싶으면 조치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박 대변인은 2008년 구본홍 전 YTN 사장 인선 파문과 관련해 비밀리에 구 전 사장과 접촉한 사실이 확인돼 사장 인선에 청와대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 양천갑에 출마했던 지난해 4·11 총선 과정에선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5적’으로 꼽혀 낙선했다. 박 대변인은 1월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수위의 비밀주의에 대한 비판론을 두고 “오히려 요즘 시대상에 잘 맞는 게 아니냐”라고 응수하며 “설익은 정책이 국민에게 언론의 힘을 빌려 보도된다거나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가 나간다면 정책으로 확정되기 전에 국민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명박산성’에 이어 ‘밀봉성곽’ 우려

여야를 막론하고 박 당선인의 공보 라인에 대해서는 비판적 평가가 앞선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인수위 구성도 밀봉, 운영도 밀봉”이라며 “인수위와 언론의 접촉은 철저히 봉쇄돼 있고, 윤창중 대변인은 독단적인 브리핑을 하고 있다. ‘명박산성’에 이어서 ‘밀봉성곽’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막말 대변인을 바꾸고 밀봉인수위를 국민에게 개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도 “언론을 홀대한다고 할까, 그런 인상을 주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조순형 전 자유선진당의원은 “박근혜 당선인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 극소수 보좌진의 도움만 받는다. 과연 여론을 어떻게 수렴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윤창중 대변인도 대변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세가 안 돼 있다”고 혹평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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