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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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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호구 사이

등록 2013-01-01 14:26 수정 2020-05-03 04:27

요즘, 웬만한 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지 않아요. 대선 후유증으로 끓다가 시커멓게 탄 냄비가 된 기분이거든요. 바야흐로 ‘멘붕(멘털 붕괴)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어야 해요. ‘악과 깡’으로 앞으로 5년, 견뎌낼 수 있어요. 새해를 맞아 ‘부글부글’도 좀더 새롭게 거듭나도록 해요. ‘국민행복시대’에 눈높이를 맞춰 긍정적으로, 차분하게 생각해보려 해요.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말이죠. 악!

어지러운 시기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필요해요. ‘오래 두고 사귄 벗’만큼 듬직한 존재도 없기 때문이에요. 2012년 12월26일에 들려온 훈훈한 소식이 그래요. 12월9일 전남 여수시 월하동의 우체국 금고를 턴 이들도 15년 지기 동갑내기 친구였어요. 심부름센터·견인업체에서 일했던 박아무개(44)씨는 금고 뒤 벽을 뚫어 5천만원을 훔치고, 현직 경찰인 김아무개(44)씨는 밖에서 망을 봤어요. 김씨는 강력팀 형사로 근무하며 알게 된 금고털이 노하우를 전수하고, 범행 전에는 우체국 내부 사진을 미리 찍어 김씨에게 보내주기도 했어요. 2005년에도 은행 현금인출기 절도를 함께 했대요. 호흡이 척척 맞는 ‘환상의 파트너’였나 봐요. 어려운 시기를 도둑질로 이겨내려던 두 친구의 눈물 나는 우정! 더럽게 아름다워요. 악!

소름 돋게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도 있어요. 6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에게 제대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이야기거든요. 미국 국방부가 12월21일 한국에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 4대를 판매하겠다고 의회에 통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어요. 올챙이처럼 생긴 글로벌호크는 20km 상공에서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장비 등으로 내려다보면, 땅 위에 있는 30cm 크기의 물체까지 볼 수 있는 장비예요.

그런데 미국이 부르는 값이 대놓고 바가지예요. 글로벌호크 4대를 12억달러(약 1조3천억원)에 판다고 했어요. 4년 전에는 4500억원을 부르더니 그사이 값을 3배나 올렸어요. 심지어 2014년에는 단종까지 되는데 말이에요. 아들 부시 대통령과 농장에서 ‘프랜드’ 먹었던 뼛속까지 친미인 이명박 대통령, 순식간에 ‘글로벌호구’로 전락했어요. 원래 호구는 ‘호랑이 아가리 앞처럼 위태로운 상황’을 말했는데, 요즘에는 ‘이용만 당하는 상황을 빗대는 말’로 쓰여요. 거기에 뜻을 하나 더 추가하도록 해요. ‘미국이 우리를 대하는 자세’라고 말이죠. 악!

그래도 긍정적인 자세 잃지 말도록 해요. ‘글로벌호구’(GH)를 세계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거든요. 우선 이명박 대통령 퇴임 전에 청와대 기와를 싹 녹색으로 바꾸고, 앞으로 청와대는 BH(Blue House) 대신 GH(Green House)라고 부르도록 해요. ‘글로벌호크’도 들여와서 몰래 국산화를 하도록 해서, 첫 완성품에 ‘글로벌호구’(GH) 1호라고 이름 붙여요. 대형마트처럼 다른 나라에 수출할 때 4대를 사면 1대 더 끼워주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펼치자고요. 우리나라 핵발전소 수입하는 나라에는 공짜 사은품으로 끼워줄까봐요. 팍팍. 왜냐면 우리는 ‘글로벌호구’니까요. 역시, 올해도 부글부글 끓는 삶, 피하기 어렵겠죠? 아우, 혈압 올라. 악악악!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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