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거대 담론이 아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그렇다. 말싸움은 종종, 이념보다 말투, 몸짓, 눈빛 때문에 시작된다. 2002년에도 그랬다.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했다. 대선 투표를 하루 앞둔 2002년 12월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국세청 앞 광장에서 일이 났다. “노무현 후보는 이날(12월18일) 저녁 4천여 명의 지지자들이 모인 국세청 앞 유세에서 ‘저 뒤에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플래카드 보이던데 너무 속도위반하지 말라’며 정동영·추미애 두 본부장을 치켜세웠다. 그는 ‘대찬 여성 추미애 의원이 있다.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지키고 올바른 정치를 살리겠다며 나를 지켜줬던 정동영 의원은 어떠냐’고 말했다.”( 2002년 12월19일치) 정몽준 후보는 투표 하루 전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해버렸다.
민주당 “통상적 정당 활동까지 문제 삼나”
2012년의 싸움도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시작됐다. 한쪽이 사소하거나 정당하다고 느낀 문제를 상대방은 결정적 문제로 해석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민주통합당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11월14일부터 중단됐다(협상은 기사를 마감하는 16일 밤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안철수 후보는 11월16일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 캠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민주당 문재인 캠프를 비판했다.
“4·11 총선의 패배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국민의 마음에 실망과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정치 혁신은 낡은 구조와 낡은 방식을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제 문재인 후보께서는 잘못된 것이 있다면 사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진심은 믿습니다. 국민들은 진정 하나가 되는 단일화를 원합니다. 문재인 후보께서 낡은 사고와 행태를 끊어내고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국민들께서 요구하시고 민주당 내부에서 이미 제기되는 당 혁신 과제들을 즉각 실천에 옮겨주십시오.”
문재인·안철수 캠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었다. 안 후보 쪽이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행위는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먼저, 이른바 ‘안철수 양보론’ 익명 보도 사건이다. 11월14일치 에 ‘문재인 캠프 핵심 관계자’라는 주어로 안철수 후보 양보 가능성이 보도됐다. ‘관계자’라는 익명의 주체나 ‘알려졌다’는 수동태 문장을 이용해 선거캠프 내부 분위기를 전달하는 관행적인 정치 기사 작법이 문제가 됐다.
양 캠프의 온도차가 크다. 문재인 캠프의 공식 견해는 캠프 내부 인사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안철수 캠프 유민영 대변인은 11월16일 CBS 라디오 에서 “명백한 사실이고 저희들도 취재를 하게 되고”라고 말했다. 분명히 문재인 캠프 내부 인사가 기자에게 그런 발언을 했다는 취지다.
둘째, 문자메시지 전송 사건이다. 문재인 캠프의 해명은, 시민캠프의 회계사 출신 자원봉사자가 지인 76명에게 문 후보를 지지하라는 문자를 보낸 게 전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캠프가 언론에 공개한 문재인 캠프 문자메시지에는 ‘단일화 대비 조직 독려, 목표 제시. 카톡 100만 플러스 등록. 단일화 대비 지역 지지자 DB 수집 독려. 안 후보가 단일후보 돼도 무소속으로 남는단다. 그러면 민주당은 꽝이다. 전통 당원들 자존심을 건드려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문재인 캠프의 공식 견해는 이렇다. 첫째, 문자메시지 전송 행위는 자원봉사자가 지인 76명에게 보낸 1건에 불과하다. 둘째, 이는 문제될 것 없는 정당의 지지운동이다. 문재인 캠프의 우상호 공보단장은 11월16일 브리핑에서 “자원봉사자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돕기 위하여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도 구태정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통상적 정당 활동까지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안 후보가 단일화 선언 뒤 ‘비문재인’으로 분류된 민주당 의원 30여 명에게 전화를 한 행위에 대해서도 뒤늦게 반감이 번진다.
안 캠프 쪽은 격렬하게 반발한다. 안 캠프 쪽은 문자메시지 전송이 1건 이상이며 그것은 부당한 조직 활동으로 구태정치라는 의견이다. 유민영 대변인은 11월16일 CBS 라디오에서 문자메시지와 관련해 “저희가 여러가지 제보들이 있고요. 그런 것에서 몇 가지 예를 든 것이니까”라고 말했다. 즉, 다른 문자메시지 전송 행위가 더 있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문재인 캠프 정무특보였던 백원우 전 의원이 안철수 캠프 단일화 협상팀 이태규 미래기획실장을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도 시빗거리가 됐다. 이태규 실장이 한나라당 출신으로 2007년 이명박 캠프에 있었고 지난 4·11 총선 때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활동했던 점을 언급하며 사실상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안 캠프는 “인신공격”이라고 반박했다.
문재인 후보는 11월15일 두 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혹여… 있었다면”이라는 가정법 어법으로 잘못이 있었다면 “대신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안 후보의 기자회견은 문 후보의 사과 뒤에 나왔다. 사과만으로 미흡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안 캠프 “이게 정치? 그렇게 생각 안 해”
유권자들의 질문은 두 가지 논점으로 쏠린다. 안철수 후보의 반발은 정당한가, 민주당의 정당 활동에 부당한 측면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안 후보 쪽은 이번 갈등이 단순 해프닝이 아님을 강조한다. 안철수 후보는 11월16일 “정치 혁신은 낡은 구조와 낡은 방식을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유민영 대변인은 CBS 라디오에서 “전체적인 문화, 흐름, 그다음에 더더욱 중요한 것은 관행을 관행으로 봐달라, 정치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낡은 정치와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의 충돌이 갈등의 본질이라는 의견이다.
유시민 진보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도 적어도 조직 동원 측면에서 민주당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 위원장은 TBS 에서 2010년 민주당과의 단일화 경험을 언급하며 “(당시 민주당이) 그런 식으로 온갖 험담 하고 뒤로 이야기 돌리고 조직 동원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옳은 게 아니죠. 그런 점은 안철수 후보의 심정에 대해선 제가 공감을 하는데”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김진표 전 원내대표와 경선을 벌여 단일후보가 됐다. 유위원장은 당시 민주당의 태도에 대해 “그 과정에서 그때는 민주당에서 회의만 열면 당직자들이 다 나서서 저를 인신공격하고 그랬습니다. 저도 반격했고요. 그 결과가 본선에서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가 이렇게 자꾸 문제제기를 하는 취지는 공감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직 구체적 사실들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민주당의 조직 활동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럼에도 안철수 캠프의 반응은 어느 정도는 정치공학적 계산을 고려한 반발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CBS 에서 사회자는 “안철수 후보가 여론조사 지지율 떨어지니까 판 흔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 시간 끌어서 단일화 방식을 유리한 고지로 가져가려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야권 성향 유권자 사이에 설령 민주당이 일부 잘못했더라도 안 후보의 반발이 과하며 그것은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시각이 있음을 전제로 던진 질문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조사 분석실장도 ‘민주당의 잘못이 협상 중단 사항이라고 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만약 안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해) 지지율에서 안정된 우위를 갖고 있었다면 문제제기 수준에서 그쳤겠지만 그런 부분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봐서 특단의 대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캠프의 반발에는 정당한 분노와 함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의도가 존재한다는 시각이다. 물론 유민영 대변인은 “과정으로서 새로운 정치를 보여줄 책무와 의무가 있다는 측면이 하나 있는 것 같고요. 원칙의 측면은 타협이 가능하지 않습니다”라며 그런 시각을 정면으로 부인한다.
이번 단일화 협상 중단이 완전한 이별로 이어질까? 그렇게 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김부겸 문재인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은 11월16일 BBS 라디오 에서 ‘11월25~26일 단일화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 “그 약속(단일화)을 못 지키면 두분 다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없죠. 벼랑 끝에서는 심정으로라도 정리를 꼭 해내야 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잘못을 지적했던 유시민 위원장도 “재개해야겠죠”라며 “이게 게임의 일부고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등 단일화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극복 가능한 갈등이라는 시각이다. 단일화에 실패해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각자 완주하리라는 우려도 일부 존재한다. 안철수 후보의 발언이 강경해서다. 안 후보는 와의 11월16일 인터뷰에서 다시금 “양보는 절대로 없다”고 못박았다.
단일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이번 갈등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갈등의 지속성이다. 꺼진 불씨가 아니다. 당장 낡은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두 캠프의 생각 차이를 좁히지 않으면 갈등이 또 벌어질 수 있다. 유시민 위원장은 11월16일 TBS 라디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민주당 당원들이나 정치인들 경우에는 이런 것은 정상적인 거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다, 도덕적으로 나쁠 게 없다, 서로 양해하면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수단들이 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그런 게 익숙하지도 않고 또 그런 건 용납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게 제일 문제 아닌가 싶다.” 다만 유 위원장도 “축구할 때 약간 어깨로 몸싸움하는 게 허용되듯이”라는 비유법을 쓰며, 민주당의 조직활동이 민주주의 기본 규칙이나 윤리의식을 침해라는 것이 아니라면 안철수 후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후보는 11월16일 에 출연해 “안 후보 주변에서 과장하거나 확대돼 보고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갖고 있다”며 섭섭함을 표현했다. 감정의 골이 깊다.
협상 중단 사태, 지지율에 어떤 영향?
안철수 캠프가 이번 갈등 과정에서 지지율과 관련해 이득을 봤는지는 분명치 않다. 윤희웅 실장은 11월16일 통화에서 “이번 사건이 즉각적인 안 후보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큰 틀에서 단일화 논의를 깨서는 안 된다는 야권 성향 대중의 기류가 형성돼 있어 (이번 갈등에서) 어느 한쪽 지지율에 큰 타격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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