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팔로어’(따르는 자)를 보면 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인 박영선 의원과 안철수 무소속 후보 쪽 박선숙 선거총괄본부장이 같이 걸어온 길과 갈림길 사이 어딘가에,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으로 두 사람은 많이 비슷했고 사소하게 달랐다. 야권 대선 후보가 2명인 지금, 두 사람의 다른 선택이 더 눈에 띈다.
문재인이 박영선 영입에 공들인 이유
민주당의 대표적인 ‘전략통’ 및 ‘스나이퍼’(저격수)로 평가받는 것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1960년생으로 나이도 같다. 거인을 통해 정치인이 됐지만, 거인의 어깨에 잠자코 앉아 있지 않은 점도 닮았다. 박영선 의원은 MBC 기자를 오래 했다. 1981년 아나운서로 입사해 1983년부터 기자로 활동했다. 박선숙 본부장이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이던 1995~98년, 박영선 의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특파원과 국제부 차장 등을 지냈다.
‘정치인 박영선’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뼈와 근육을 얻기 시작했다. 2004년 MBC 선배인 정동영 전 장관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속칭 ‘DY계’로 불렸다. 당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16대 국회 때 삼성 등 재벌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했다. 2007년 대선 때 저격수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을 파헤쳤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살아 돌아왔다. 2010년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태호 의원의 거짓말을 파헤쳐 낙마시킨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박선숙 본부장도 인사청문위원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두 사람은 각각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등에서 행정부 관료들에게 저승사자로 통했다. 일 잘하는 의원이라는 뜻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땐 박영선 의원은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선숙 본부장은 전략홍보본부장으로 활동했다. 박영선 의원이 당시 정동영 전 장관과 선거전략과 관련해 설전을 벌인 일화가 유명하다. 2010년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땐 이인영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더 이상 특정 계파로 해석되지 않았다. 서울시장 후보가 됐지만, 경선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패했다.
문재인 후보에게 언론이 진작부터 제기했던 의문이 있다. 사람과 정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때문에 ‘경제민주화론자’ ‘전략가’ ‘저격수’ 등 여러 이미지를 두루 갖춘 박영선 의원을 영입하려고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지난 9월13일 문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박영선 의원은 이미 2007년에 대선을 경험했다. 당시 정동영 캠프에서 박 의원과 함께 일했고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에게 박 의원의 변한 점과 변하지 않은 점을 물었다. “2007년 느낌은 두 가지다. 첫째, 당시 박 의원은 꼼꼼한 참모라는 이미지를 줬다. 언론인 출신이라 일정을 기획하고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리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 두 번째 특징은 후보에게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직설이라는 점이었다. 정동영 당시 후보와 친하기도 했지만 그런 관계 때문만이 아니었다. 상황 판단도 빨랐다. 지금은 서울시장 후보 반열에 오를 정도로 중량감이 생겼다. 기존 스타일을 버린 건 아니다. 다이렉트하게 이야기하는 성정은 그대로인데 방법이 달라졌다. 가령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관련 자료를 넌지시 건네는 방식으로. 또 본인의 역할만 고민하기보다 ‘주변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를 더 고민하더라. 이번에도 선대위원장보다 미래캠프에서 민주당 안팎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간사 역할을 맡길 더 원한 것으로 안다.”
박선숙의 선택 이유, 속죄?
박영선 의원이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이유와 문 후보에게 해결을 요구한 숙제는, 오롯이 유권자가 문재인 후보를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박 의원은 9월13일 에서 지지 이유로 ‘경제민주화’ ‘국가 정의’ ‘당의 새로운 진로 개척’을 언급했다. 다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그런 원칙과 후보로서의 단호함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조건을 달았다. ‘단호함’을 보여줄 사례로 “참모그룹의 백의종군 선언”도 요구했다. 이른바 ‘친노그룹’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됐다. 문 후보는 최근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 위주로 비서실 인사를 짜 적지 않은 비판을 샀다.
‘비노’ 정치인이던 박영선 의원의 선택은 정당정치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발언에서 엿보인다. 당시 박영선 의원은 무소속 박원순 시장과 경쟁해야 했다. 현재 대선과 비슷한 구도다. 박 의원은 후보 수락연설에서 “무소속 후보는 역사상 반짝하고 대부분 소멸했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당정치의 진수는 갈등의 조정과 타협”이라고 주장했다. 이 박영선 의원에게 단일화 등 캠프 전략, 향후 외부 인사 영입, 박선숙 본부장에 대한 견해 등을 물었으나 박 의원은 인터뷰를 고사했다.
‘경제민주화’ ‘국가 정의’ ‘새로운 정치’는 박선숙 본부장이 안철수 후보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선숙 본부장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 정치인이 됐다. 김근태 사람이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청와대 대변인을 했다. 오랫동안 그는 민주(통합)당 사람이었다. 참여정부 때는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18대 때는 국회의원이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오가며 ‘정당정치’를 경험했고 책임졌다. 특히 4·11 총선 민주당 선대본부장이었다. 그런 그가 정당도 없고 정당정치 경험도 없는 안철수 캠프의 선거총괄본부장으로 간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본부장은 보도자료와 기자회견으로 자신의 선택을 설명했지만 부족했다. ‘왜 안철수인가’를 다소 추상적인 언어로 말했을 뿐 ‘왜 문재인이 아니라 안철수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고민의 시작을 토요판 인터뷰(2012년 6월9일치 참조)에서 엿볼 수 있다. 박 본부장은 인터뷰에서 4·11 총선 당시 불출마와 관련해 “우리가 그런 유권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걸 보면서 저라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마중물 정도 돼서 저보다 비중 있는 분들이 불출마 선언을 더 해주기를 바랐는데…”라고 말했다. 어미를 흐린 그의 마지막 문장에서 박 본부장의 패배감이 엿보인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기회를 (총선으로) 한 번 놓쳤어요”라고도 했다. ‘죄’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박선숙 본부장은 이 10월4일 통화에서 안철수 캠프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다시금 ‘새로운 정치’를 이유로 들었다. “안철수 후보가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는 것이라면 나는 정치하면서 쌓은 (국민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가 국민들을 존중하지 못해서 섭섭하게 했다. (4·11 총선에서) 더 잘했어야 했다.” 기자가 ‘민주당에 대한 실망 때문이냐’고 물었다. 박 본부장은 “실망감, 그런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주당)가 2007년에 버림을 받았다. 두 대통령을 땅에 묻고 너무 빨리 용서받았다. 그리고 4월에 당연히 이겨야 하는 선거를 진 것이다. 12월에 또 죄를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재차 ‘이른바 친노그룹 때문이냐’고 물었다. 박 본부장은 “나의 행동의 동기는 그런 게 아니다. 지금껏 ‘무엇무엇에 대한 반대’ 때문에 움직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안철수 후보가 강점과 지향을 확실히 가졌다는 취지다.
“단일화 창구가 될 수도 있겠다”
다만 박 본부장은 “내가 (총선 뒤) 당 안에서 싸울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기 때문에 (내 선택에) 상처받은 분도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어서 (본부장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단일화 전망에 대한 질문에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단일화는 목적이 될 수 없다. 민의를 존중하는 혁신과 국민의 동의가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말투와 전후 맥락상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정책과 노선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렸다.
박 본부장은 경제민주화 방안에 대한 질문에 “경제민주화는 복지를 포함한 개념이며, 민주주의를 확장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완결성이 없다”고 말했다. “여러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처지나 조건에도 불구하고 참여의 기회를 가질 것인가가 중요하다. 또 하나의 축은 ‘미래 성장동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가령 대기업을 규제한다고 해서 저절로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오르는 게 아니다. 기술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고 김근태 전 의원의 지향을 따르는 이른바 ‘GT’계 정치인 거의 다 박 본부장의 선택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박 본부장의 선택과 역할에 대해서도 조금씩 느낌과 견해가 달랐다. 지난 10월2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만난 유인태 의원에게 ‘박 본부장이 상의한 적 있느냐’고 묻자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기자가 ‘박 본부장의 선택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재차 묻자 유 의원은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그래도 합리적인 분이 가셔서 안심”이라고만 말했다. 유은혜 의원은 “본부장으로 가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사전에 상의한 적 없다. 다만 6월께 초선 의원 강연 당시 정권 교체를 하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5월에 찾아뵈었을 때 대선 때 어떤 역할을 할 것 같다는 말씀은 했다”고 답했다. 유 의원은 “(박 본부장의 선택에 대해) 살짝 의문이 들긴 했다”면서도 “(박 본부장이) 지금껏 개인의 권력욕으로 어떤 선택을 한 적이 없어 신뢰가 있다. 또 단일화 과정에서 창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인영 의원은 “(박 본부장의 선택을) GT계의 선택으로 보지 말아달라”며 “정권 교체와 쇄신을 위한 나름의 판단이고 결단으로 존중한다. 우리(문 캠프 GT계 정치인)도 GT의 선택이라기보다 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유은혜·이인영 의원은 문재인 후보를 돕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유권자의 선택
“민주당 스타일과 안철수 스타일의 결합이 2012년 대선에 대선 스타일로 굳어지게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영선 의원이 9월13일 에서 한 말이다. 박선숙 의원은 9월20일 보도자료에서 “저의 결정이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라는 큰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두 발언으로 보면, 박영선 의원과 박선숙 본부장의 손가락은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다만, 각자 다른 선장이 모는 배에 타고 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선장의 운항 실력 등은 야당 지지 유권자에게 대선 투표의 기준이 될 것이다. 박영선 의원과 박선숙 본부장의 선택과 행동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판단하는 척도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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