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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키 어려운 돈공천 파문의 파장

등록 2012-08-14 18:39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010년 11월 20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4주년 포럼부산비전 정기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행사장에서 만난 현영희 포럼부산비전 공동대표(오른쪽)의 모습이다.  현영희 의원 다음카페 화면 갈무리

지난 2010년 11월 20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4주년 포럼부산비전 정기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행사장에서 만난 현영희 포럼부산비전 공동대표(오른쪽)의 모습이다. 현영희 의원 다음카페 화면 갈무리

2012년 3월15일.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부산 지역을 포함한 ‘제8차 공천자 명단’을 발표한 날이다. 비상대책위원장 신분이던 박근혜 후보는 이날 세대별 남녀 32명으로 구성된 국민공천배심원단 첫 회의에 참석해 “우리 정치가 과거의 구태를 씻어내고 새로운 신뢰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공천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 또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성에 부합하는지 국민의 입장에서 판단을 받기 위해 여러분을 모셨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점 박 후보는 “이번 공천에서 우리는 도덕성을 굉장히 중요시한다”는 말도 했다.

불미스러운 일 의혹에도 감쌌던 전력

바로 그 시점 공천을 사고파는 검은돈이 오갔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의 비서 정동근씨는 3억원의 돈을 쇼핑백에 넣은 뒤 서울역으로 갔다. 전달책인 조기문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정씨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조씨는 쇼핑백을 자신이 들고 온 루이뷔통 가방에 담았다. 검은돈의 최종 기착지로는 친박계 핵심인 현기환 전 의원이 지목된다. 친박계 핵심인 현 전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심사위원회(공천위) 위원으로서 부산 지역 공천을 사실상 전담한 인물이다. 결국 현영희 의원은 비례대표 23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번 사태가 박근혜 후보의 대선 가도에 치명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본질은 박근혜 후보 본인의 비민주성과 일부 측근의 폐쇄적인 서클주의다. 4·11 총선은 명실상부한 ‘박근혜의 선거’였다. 당내 인사로는 현기환·권영세·이애주 전 의원이 공천위에 참여했다. 모두 친박계 인사다. 현기환 전 의원은 애초 공천위원 자리를 고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후보가 직접 전화를 걸어 그를 주저앉혔다. 현 전 의원의 불출마 사유가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친박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증거가 있느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도 알려져 있다. 공천 뒷거래 파문이 처음 터진 시점인 8월2일 박 후보는 “(당사자들의) 말이 서로 주장을 달리하고 어긋나니까 검찰에서 확실하게 의혹 없이 밝혀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언급만을 내놨을 뿐이다. 현기환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시절 박근혜 캠프의 대외협력부단장을 맡아 신임을 얻었다. 박 후보는 그를 공천위원과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중용해왔다.

진정한 ‘공포’는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재선 부산시의원인 동시에 친박 외곽단체인 ‘포럼 부산비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현영희 의원은 2010년 교육감 선거 당시 181억5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재력가다. 현 의원의 남편 임아무개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는 지난해 33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짜 기업이기도 하다. 임씨를 공천 로비의 자금줄로 보고 있는 검찰은 이 회사 임직원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임씨가 대표로 있는 또 다른 회사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현 의원은 이 밖에도 부산 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의 캠프에 모두 4200만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역의 종교단체에 137만원을 기부하고 주민 32명에게 269만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 등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검찰이 파악한 공천 로비 자금 4억 넘어

현영희 의원이 이정현·현경대 의원에게 차명으로 불법 후원금을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현 의원은 손수조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에게도 135만원의 금품을 제공했다. 검찰은 이번 총선 기간에 현영희 의원이 살포한 공천 로비 자금의 규모가 4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에게 2천만원을 제공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부산 지역 전·현직 국회의원의 이름도 여럿 거론되고 있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비례대표 공천 과정 전반을 조사하자”는 비박계 인사들과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의 금품수수 의혹에 한정하자”는 친박계의 의견이 충돌해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형국이다. 친박계는 이미 4·11 총선 당시의 공천 자료가 폐기돼 조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태도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우선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을 제명한다는 방침을 밝히며 파문의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월요일(8월13일) 최고위원회에서 두 사람에 대한 제명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현기환 전 의원의 제명안은 최고위 의결만으로 처리되고, 현직인 현영희 의원에 대해선 의원총회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밖에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의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전면적인 캠프 내부 인적 쇄신 등의 후속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친박계 핵심인 김재원 의원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대국민 사과뿐 아니라 다른 조처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며 “단순히 사과로 끝날 게 아니라 면모를 일신하는 여러 조처가 뒤따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박근혜 경선캠프의 이상돈 정치발전위원도 “박근혜 후보가 의혹의 대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과연 선거를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등에 칼을 맞은 심정”이라며 사태가 몰고 온 파장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박근혜 책임론 제기하는 새누리 후보들

한때 대선 후보 경선의 전면 보이콧까지 선언했던 비박계 주자들은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사임하는 것을 전제로 일단 예정된 경선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목소리로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이 박근혜 후보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는 총선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전권을 행사했다”며 “황우여 대표에 비하면 열 배 이상의 책임이 박근혜 후보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후보는 “당명까지 바꾸며 쇄신을 약속했는데 쇄신의 뒷자락에서 국회의원 자리를 돈 주고 파는 일이 벌어졌다”며 “민주주의를 사고판 것은 성매매보다 나쁜 일”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임태희 후보도 “무엇이 두려워 잘잘못에 대해 말하지 못하느냐”며 “지금 당내의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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