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1995년 저서 를, 2001년에는 을 냈다. 이 책들은 단지 노련한 정치평론가의 ‘촉’에 기댄 예언서가 아니었다. 김대중에게 덧씌운 용공 이데올로기와 투쟁했고, 비주류 노무현을 바라보는 기득권 세력의 편견을 통렬하게 까발렸다. 지지층에게는 결집의 논거를, 흔들리던 유권자에게는 발견의 기쁨을 선사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이번 대선에서 강준만 교수의 선택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최근 발간한 저서 을 통해 안 원장이 “증오의 종언을 실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후보”라고 주장하는 강 교수를 7월19일 전북 전주 전북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승자독식 구조가 분노·증오 증폭시켜”
-공교롭게도 오늘 안철수 원장이 자신의 저서를 발표했다. 실질적인 대선 출마로 보는 해석에 동의하는가.
=안철수 원장이 되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끊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렇게까지 해놓고 출마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욕먹을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이 양반이 조금 독특한 것 같다. 자신이 꼭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액면 그대로 봐줘도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맞는 후보가 있다면 서울시장 선거처럼 밀어주고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거다.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증오의 종언’을 제시했다. 어떤 맥락인가.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소통과 타협으로 가야 한다는 담론을 고민한 건 10년 전부터다. 노무현 정부의 민주당 분당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당시 그 담론에는 시장성이 없더라. 우리나라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 군 단위까지 전적으로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이겨야 애국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본말이 전도된다. 지금의 여야 구조를 봐도 타협을 통해 공리민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정말 많다. 그런데 진영이 이겨야 하는 승자독식의 논리가 작동하니까 상대를 부수려고 분노와 증오를 증폭시킨다. 이 상황에 대한 국민적 염증은 임계치에 와 있다고 본다. 기존의 정치권이 이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안철수를 보자는 이야기다. 안철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양쪽을 동시에 때려도 이야기가 된다. 증오와 적대의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강 교수에겐 ‘대선 후보 노무현’을 열렬하게 지지했고 ‘대통령 노무현’은 치열하게 비판했던 과정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떤 의미에선 ‘증오의 게임’에 능란했던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친노 그룹과 내 생각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쳤기 때문에 배우고 성찰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노는 이명박 정부가 추잡할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보이니까 여기에 모든 것을 떠넘겨버리고 성찰할 게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결코 동의가 안 된다. 친노는 ‘유시민 모델’이다. 대통령을 뽑았고 지지했기 때문에 끝까지 그를 지켜야 한다는 식이다. 이래선 안 된다. 누군가를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면 한계와 문제를 끝없이 지적해서 정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모델과 최근 의 팬덤은 그런 점에서 유사한 한계가 있다.
“안 지지자, 노사모 따라가면 큰 일 나”
-리더십보다 팔로십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게 핵심이다. 안철수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이후부터는 지지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안철수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이 과거 노사모 모델을 따라가면 큰일 난다. 정치학 원론의 견해에 가까운 분들은 민주주의 구조에서 이념과 정당, 그리고 진영 논리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싸움은 기본적으로 이념 대결이 아니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새누리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갈 수도 있다. 여기에 이념이 있나? 우리 편이 이기기 위한 싸움이라는 거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이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추진하다가 정권이 바뀌니까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나쁜 FTA다? 이런 논리 때문에 기회주의자라는 이미지가 민주통합당에 들러붙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승자독식의 시스템, 증오의 게임에 갇혀 있다. 탈출구가 필요하다.
-안철수 원장의 집권을 통해서만 탈출이 가능한가.
=담론 분석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여야의 어떤 주자들도 그 이야기를 안 한다. 문제의식을 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안철수 원장뿐이다. 만일 집권하지 못하더라도 증오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안 원장은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런 측면은 있다. 개인적으로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을 싫어한다. 도토리 키 재기는 중요하다. 증오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과 이 문제가 결국 국민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지지자들의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안철수의 정신은 양 극단에 있는 증오의 정치에 대한 일종의 반격인데, 주변에서 안철수라는 사람을 자기들 팬덤의 대장으로 모시고 ‘안티 안철수’에 대한 증오의 담론을 구상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건 안철수를 모독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안철수 원장 본인도 이런 행태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야권의 다른 주자들로는 부족한가?
=문재인 후보가 잘 되길 바란다. 그런데 최근 ‘여자 박근혜’와 ‘마초 문재인’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전략이 엿보이던데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다. 김두관 후보에겐 박력과 추진력이 있다. 손학규 후보에 대해선 과거엔 그의 경력을 비판했지만 민생대장정 등의 행보를 접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민주당 내에서라면 통합의 정신에 가장 적합한 후보가 손학규 아닌가 싶다.
-증오의 종식이라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확장 가능성의 문제로 봐야 한다. 문재인 후보도 아마 느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발언들을 보면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하다. 친노 지지자들과 의 전투성에 어느 정도 기대려고 하는 그 시각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내부적으로 토론이 왜 안될까? 이런 방식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왜 안되느냐는 말이다. 에 대한 내 생각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의롭고 훌륭한 분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선거는 생각이 다른 중도층 40%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의 방식으로 과연 이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화끈하게 보수를 공격하고 풍자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왼쪽 날개’로 있어야 한다. 이게 ‘문재인 소통전략’의 모든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 문제다. 그러다보니 확장력에 한계가 생긴다. 이건 앞에선 남을지 몰라도 뒤로는 밑지는 장사다. 일단은 민주당 후보가 되어야 하니까 그러는지는 몰라도 그때까지 누적될 무당파와의 거리감은 어떻게 좁힐 것인지 묻고 싶다.
-안철수 원장에게 정치와 공직 경험이 없다는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관료사회를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다’는 것 아니었나. 관료집단이 잠식한 나라를 고민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다. 안철수 원장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에게 “도와주는 분들 중 하나”라고 했던 사례를 보자. 내가 봐도 싸가지 없더라. 그런데 저 싸가지 없음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원장이 경험 없는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직원들 데리고 정권을 운영하겠나? 어차피 민주당 세력과 손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또 ‘똑같은 놈들이다’라고 비판하지 않겠나? 결국 상반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걸 제대로 끌고 가는 기술에 리더십의 예술이 있는 것 아니겠나.
“새로운 타협의 리더십 보여줘야”
-유권자들이 안철수 원장의 비전과 정책을 확인하고 판단할 물리적 시간이 짧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증하지 않았나? 김영삼 전 대통령도 오랜 검증을 받았다. 검증의 정체가 뭔지 생각해 보자는 거다. 우리는 막연하게 검증은 길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 검증은 기존의 게임의 룰에 의한 검증이다. 안철수는 일종의 ‘공공적 CEO’였다. 그 활동의 기간은 검증이 아니었을까? 안철수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외계인인 것도, 우리가 그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인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려할 대목은 아니라고 본다. 아마 안철수 원장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안철수 원장과 민주당이 만나는 지점을 가정해보면 친노와 호남이라는 몸통에 안철수의 머리를 얹은, 어찌 보면 기이한 구조다.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안철수 쇼크는 노무현 쇼크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무현 쇼크를 한 번 겪었다. 안철수에게는 반면교사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가 옛 민주당 세력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줬나. 안 원장이 노무현 정부처럼 칼을 들고 내부를 숙청하겠나? 스스로 역설한 리더십의 정신으로 타협하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진보·보수의 양극단은 자연스럽게 배제될 것이다. 그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타협의 기술을 보여줘야 한다. 거기에 안철수의 미래가 달렸다.
전주=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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