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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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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투표 부정은 압수수색할 범죄인가

정당내 민주적이지 못한 투표는 당의 자율 해결이 우선…서버 압수는 영장주의 위반 소지, 당원명부는 압수대상 안돼
등록 2012-06-01 12:25 수정 2020-05-03 04:26

검찰의 통합진보당 서버 압수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인 당내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는 유령 당원이 선거인이 되고 대리투표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인단 수보다 투표수가 더 많은 곳도 있었다고 한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선거에서의 부정에 대해 공직선거법은 이를 선거범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가능성

하지만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므로, 사실관계에 따라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 추천을 위한 업무를 방해했다는 점에서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정당의 후보 선출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회의원은 유권자에 의한 선거가 아니라 정당의 특정 집단 또는 특정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직접선거 원칙에 반하고 정당한 대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소속 후보자의 입후보에 유권자 수백 명의 추천을 요구하면서 정당 후보는 단지 정당의 추천만으로 입후보하니 평등선거 원칙에도 반하게 된다. 당내 경선에서 부정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 이유다.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경선에서 부정이 있다고 해도, 정당에 대한 수사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에서 정당을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데, 이는 정당의 자율적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자칫 국가가 정당 활동에 간섭하는 것이 소수자 탄압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 내에서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 작업이 진행되고, 경선 과정의 부정에 의해 영향받은 것으로 보이는 비례대표 후보들의 사퇴 공표 등 정당이 부정 경선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정당의 자율적 문제 해결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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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유령 당원이 선거인으로 등록되거나 대리투표 등이 이뤄졌다면 정당은 그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정당이 자율적으로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정당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나중에 부정경선이 사실로 밝혀지면 엄격한 법적 제재가 따라야 하겠지만, 아직 사실관계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고, 그것이 중대한 것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수사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 정당의 자율성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게 될지 모른다. 이는 정당을 보호하려는 헌법의 취지에도 반한다.

검사는 범죄 수사에 필요한 때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 압수영장에는 압수할 물건과 수색할 장소, 신체나 물건 등이 기재돼야 한다. 특히 컴퓨터 등에 수록된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때는 “원칙적으로 영장 발부의 사유인 혐의 사실과 관련된 부분만을 문서 출력물로 수집하거나,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해당 파일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2011년 5월26일 선고, 2009모1190 결정)다. 저장매체 자체를 직접 또는 하드카피나 이미징 등의 형태로 수사기관 사무실 등 외부로 반출해 범죄와 관련된 정보를 찾는 것은, 출력 또는 복사 방식에 의한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부득이한 사정이 있고 영장에 저장매체의 외부 반출을 허용한 경우에 한정된다. 수사기관 사무실 등에서 문서 출력이나 파일 복사를 하는 경우에도 범죄 혐의 사실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된다.

당사자 배제된 상태에서는 열람 복사 금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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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에서 대법원은 수사기관 사무실 등으로 옮긴 저장매체에서 범죄 혐의 관련성에 대한 구분이 없이 저장된 전자정보 가운데 임의로 문서 출력을 하거나 파일을 복사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장주의 등에 위반된다고 한다. 또한 수사기관 사무실로 옮기거나 사무실에서 정보를 열람하거나 복사하는 과정에서 수록 정보가 상실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당한 당사자나 변호인의 계속적인 참여권 보장, 압수·수색을 당한 당사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저장매체의 열람·복사 금지, 저장매체 내 전자정보의 왜곡, 훼손, 오·남용, 임의적인 복제와 복사를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한다. 적절한 판례다.

검찰이 통합진보당의 전자정보가 담긴 서버를 통째로 가져간 것은 집행 현장 사정상 문서 출력이나 파일 복사 등의 방식에 의한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랬는가? 서버를 들고 나올 정도의 형편이었다면 그 수록 정보 가운데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 복사할 여지도 있지 않았을까? 압수·수색에 통합진보당 쪽의 당사자나 변호인의 참여가 보장됐는가? 서버 수록 정보의 왜곡이나 훼손 등을 막기 위한 봉인 등 조처를 취했는가? 사실관계에 따라 위법 여부가 판단될 부분이다.

정당법 제24조에서는 법원이 재판상 요구하는 경우와 해당 선거관리위원회가 당원에 관한 사항을 확인하는 경우에만 당원명부의 ‘열람’을 강요당하며, 범죄 수사를 위해 당원명부를 ‘조사’할 경우에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요구할 때조차 명부의 제출이 아니라 ‘열람’을 강요당할 뿐이다. 명부를 ‘펼쳐보는 것’(열람)에 대해서도 이처럼 제한을 하고 있다면, 당원명부의 점유를 이전하는 압수는 더욱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범죄 수사를 할 경우에도 당원명부의 ‘조사’에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당원명부를 특별히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원명부가 일반적 문서로 취급된다면 압수도 가능할 텐데 단지 명부를 ‘조사’하는 경우에도 법관의 영장을 요한다고 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따라서 당원명부는 압수 대상이 아니며, 이러한 해석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왜 당원명부를 이처럼 보호하는가? 당원임이 드러나는 것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당원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정당 활동 핵심

단체를 구성하고 활동을 하는 결사의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 나아가 헌법은 정당 결성과 활동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특정 정치적 신념을 옹호하는 정당에서 당원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은 그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로 인해 겪게 될 고통과 위험 때문에 단체 탈퇴의 위협을 받게 되고 새로운 가입 자체를 억제하게 된다. 따라서 당원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정당 활동의 핵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법률에서 수사기관이 당원명부 조사 결과를 누설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해도, 이미 검찰의 수중에 들어간 당원명부가 어떤 경로를 거쳐 자신들에게 부당한 보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위협을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느끼고 있다는 것은 당원명부가 정당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정당에서 당원명부를 공개할 경우 정당 활동뿐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활동 자체에 대한 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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