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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불통 리더십

권위주의로 일관하는 박근혜, 통합 정신 찾을 수 없는 한명숙…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공심위 구성 두고 양당 안팎에서 부글부글
등록 2012-02-09 10:45 수정 2020-05-03 04:26

“저런 사람들한테 공천신청서를 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한 예비후보)
“공정한 공천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심위(공천심사위원회)의 전면 재구성을 요구한다.”(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4월 총선에 나설 후보를 결정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민주당)의 공식기구를 놓고 두 당 안팎의 반발이 거세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31일 특수부 검사 출신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천위)를 구성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2월3일 공심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공천위와 공심위는, ‘공천 혁명’으로 총선 승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각각 자신의 의지를 담아 야심차게 내놓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 안팎의 반응은 “걱정된다”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이런 평가는 이들의 인선·당 운영 스타일과 맞물려 ‘독선적 리더십’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통의 공천위 인선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한겨레> 이정우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한겨레> 이정우

새누리당 공천위는 인선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진영아 공천위원이 거짓말 논란으로 사퇴하는 등 출발부터 난파 위기에 처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진 공천위원을 “몇 년 전까지 평범한 주부로서 학교 폭력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진 위원 스스로도 “당적을 가진 적도, 정치 활동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진 공천위원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공천 신청까지 했고, 현재까지도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계 외곽 조직인 국민성공실천연합 대변인으로 2009년부터 1년가량 활동한 적도 있었다.

다른 공천위원들도 정치권 경력과 자질 문제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서병문 공천위원은 새누리당 재정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04년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이력이 있다. 홍사종 공천위원은 2007년 대선 때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정치권 경력 자체가 흠결은 아니지만, 문제는 박 비대위원장이 공천위 구성과 관련해 ‘탈정치 인선’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박 비대위원장이 이들의 경력을 알았다면 그가 거짓말을 한 셈이고, 몰랐다면 그토록 중요한 공천위원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선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박 비대위원장에게 있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그는 공천위원 발표 전 외부인이나 언론에 명단이 새지 않도록 ‘보안’을 강조했고, 인선 자체도 사실상 혼자 결정했다. 한 비대위원은 “인사에서 보안을 지키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비대위 전체에서 상의해 하기가 쉽지 않다”는 박 비대위원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런 논란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걸로(진영아 공천위원 사퇴로) 일단락이 됐다. 사퇴했는데 자꾸 토 달고 이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당명 개정을 놓고도 박 비대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여실히 드러났다. 14년 동안 쓴 당명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박 비대위원장은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았다. 비대위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소리에 귀를 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근혜계 핵심인 유승민 의원조차 “새누리당이란 이름에 전혀 가치와 정체성이 담겨 있지 않다. (당명 변경이라는) 이런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의 뜻을 물어봐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당 쇄신파 의원들도 2월3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의총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쇄신파 사이에선 “박 비대위원장이 소통과 민주적 태도를 내면화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등 박 비대위원장의 ‘권위주의적 불통 리더십’에 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비친노그룹 배려 없는 불균형 인사”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 <한겨레> 이정우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 <한겨레> 이정우

한명숙 민주당 대표도 공심위 인선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민주당은 ‘개혁성, 공정성, 도덕성’이 공심위원 인선 기준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는 최고위원들이나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 후보군을 정한 뒤 일일이 직접 접촉해 공심위원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심위원의 30%(15명 가운데 5명)가 여성이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민주당은 옛 민주당, 혁신과통합 등 시민사회, 한국노총 등이 통합해 만든 정당이다. 그런데 당내 위원 7명은 모두 옛 민주당 출신들로 구성됐다. 또 여성 5명 가운데 3명이 한 대표와 같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임명에 이어 ‘이대 라인’ 인사라는 뒷말을 낳고 있다.

민주당 안에선 공심위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전당대회에서 2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문성근 최고위원은 공심위원 명단이 발표된 2월3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심위 구성에서 ‘통합’의 정신을 찾을 수 없다”며 공심위 재구성을 요구했다. 시민과통합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혁신과통합은 성명을 내어 “한명숙 지도부부터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명숙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특정 세력의 기득권은 공고히 한 채, 호남을 비롯한 여타 세력의 교체만이 개혁 공천이라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 각 당의 공천추천(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 각 당의 공천추천(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장세환 의원도 공심위 재구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공심위 구성을 보면 한마디로 통합 정신이 실종됐다. 시민사회는 아예 묵살됐고, 영·호남 배려의 흔적은 없다. 비친노그룹에 대한 배려는 없는 불균형 인사”라며 “당직 독식에 이어 공천까지 독식하겠다는 몰염치한 행태”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장 의원의 주장처럼, 한 대표는 그동안 당직 인사에서 ‘자기 사람 챙기기’를 한다는 비판을 적잖이 받았다. ‘통합’을 화두로 대표로 선출됐으나, 당직 인선에선 민주당 출신의 친노 그룹에 쏠린 모습을 보여온 것이다. 대표적인 게 임종석 사무총장과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임명이다. 임 사무총장은 그의 보좌관이 삼화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난 상태다. 무지막지한 검찰의 ‘난도질’에 상처를 입은 한 대표로선 임 사무총장 기용이 ‘검찰 불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 사무총장이 최소한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에 가깝다. 또한 한 대표는 사무총장이 총선기획단장을 겸하는 관례를 깨고 자신과 가까운 이미경 단장 임명을 밀어붙였다.

“도로 민주당이냐”

당직 인선에선 한 대표 쪽과 시민통합당 출신들을 싸잡아 “친노 그룹이 다 해먹는다”는 불만이 나왔고, 공심위 인선에서 시민통합당 출신이 배제되자 “도로 민주당이냐”는 불만이 더해진 셈이다. 통합의 적임자를 자임해 당선된 한 대표에게 ‘통합과 혁신’이라는 과제가 아직은 버거워 보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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