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은 몰랐을까.
경찰이 발표한 ‘27살 비서관의 디도스 공격 단독 기획설’은 무너졌다. 경찰의 수뇌인 조현오 경찰청장이 지난 12월16일 직접 나서서 “단독 범행으로 단정되지 않는다”고 밝혀, 경찰은 자기모순에 빠졌다. 주무장관인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도 12월23일 “(경찰의 지금 상황이) 대단히 불명예스럽다”고 밝혔다. 검찰은 경찰이 내놓은 어설픈 ‘가설’을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범행의 내용을 재구성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최 의원은 수사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게 됐다. 최 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사전에 알았는지, 사전에는 몰랐더라도 범행 이후 범행을 축소·은폐하는 과정에 개입했는지가 검찰 수사의 핵심 고리로 부상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처남이 디도스 공격 가담한 차씨와 만나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 조합하면, 이 사건은 20대 비서관이 지시하고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해 은폐한 사건이 된다. 20대 비서관과 청와대 사이에 거대한 진공이 있게 된다. 이 두 ‘상수’를 잇는 고리가 최 의원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의 입에 시선이 쏠리는 까닭이다. 과연 그는 언제, 어디까지 진실을 알고 있었을까.
지난 12월5일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공모한 비서의 친척 형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최구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고 지금 진주시 출신의 경남도의원이다”라고 말했다. 범행의 배후 가운데 하나로 현직 경상남도 의원을 지목한 셈이다. 백 의원이 지목한 인물은 공영윤(47) 도의원이다. 공 의원은 최구식 의원의 4급 보좌관 출신이다. 공 의원은 물론 펄쩍 뛰었다. 공 의원은 같은 날 “공 비서는 촌수를 따질 수도 없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이”라며 “최 의원과 일할 때 몇 번 본 적만 빼고는 모른다”고 말했다. 최 의원 쪽에서도 같은 날 자료를 내어 “성만 같을 뿐 아무 관계도 아니다. 백 의원이 자신의 발언을 즉각 사과하고 정정치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누구 말이 맞을까. 진주 지역의 한 정계 인사는 문제의 두 공씨 사이의 관계를 기억했다. “공 비서는 공 의원의 2006년 선거 때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고, 당선 뒤에는 공 의원의 차를 운전했다.” ‘몇 번 본 사이’는 아니라는 얘기다. 백원우 의원 쪽에서 제공한 사진은 이 증언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 사진 한 컷 안에는 문제의 세 인물이 모두 자리잡고 있다. 물론, 공 비서와 공 의원, 최 의원이 서로 알았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보좌관 출신을 지역의회 의원으로 ‘밀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좌진이 지역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한편으로 자신의 지역구 관리를 맡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소개해주는 일은 다반사다. 따라서 공 비서가 공 의원의 소개로 최 의원의 운전사 노릇을 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최 의원과 공 의원 모두 공 비서를 몰랐다고 펄쩍 뛰며 잡아뗀 사실이다. 20대 청년 한 명이 헌법기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주범’으로 등장할 수 있었지만, 그를 둘러싼 ‘연’의 고리가 쉽게 끊기지는 않은 셈이었다.
최 의원과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이를 잇는 질긴 ‘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최 의원의 인척이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 12월22일 최 의원의 처남인 강아무개씨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의 얘기를 들어보면, 강씨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아무개(30)씨와 12월 초 여러 차례 통화했다. 김씨는 디도스 공격을 전후해 해커들에게 1억원을 송금했고, 공 비서가 서울시장 선거 당일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술자리에 동석하는 등 이번 사건에 아주 가깝게 연결된 인물이다. 더욱이 12월 초는 경찰의 디도스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검찰은 또 강씨가 디도스 공격에 참여한 차아무개(27)씨와도 전화 통화를 하고 직접 만난 사실도 확인했다. 차씨와 구속된 공 비서는 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동기다. 두 사람 모두 공영윤 도의원의 운전사 노릇을 한 경험이 있다. 공교롭게도, 디도스 관련 인사들이 최 의원 주변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진주 지역 정계의 다른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최 의원의 처남 강씨는 지역에서 토건 자재 관련 사업을 하며, 최 의원을 대리해 지역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영윤 의원이 공 비서와 차씨 등 비서를 부리며 돌격대장처럼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라면, 서울 지역 명문대 출신인 강씨는 지역구에서 머리 쓰는 일을 했다.”
미스터리는 특검의 손으로?
이런 모든 등장인물들의 한가운데 위치한 최 의원은 12월 초 공식 견해를 내놓은 뒤 스무 날 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12월2일에 낸 성명에서는 “사건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처럼 황당한 심정”이라고 간략히 밝혔다.
한편 여야는 디도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별검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지난 12월20일 합의했다. 사건은 결국 특검의 손에 맡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검찰은 어차피 특검이 사건을 떠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과정에서 ‘힘’을 뺄 여지도 있다. 최 의원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전말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hr>경찰청 정정보도 청구감사하다고는 못할지언정기삿거리를 하나 더 만들어주고 싶었나보다.
경찰이 이 인터넷에 게시한 ‘청와대 지시로 디도스 금전거래 덮었다’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경찰은 지난 12월20일 조현오 경찰청장 명의로 전달해온 ‘언론조정신청서’에서 “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람의 신원이나 금전거래 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수사 실무진 및 수사기획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며 청와대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보도 내용은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라고 주장했다. 은 앞서 “청와대 행정관이 범행이 비롯된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 그리고 디도스 공격을 둘러싼 돈거래 내역 등 두 가지”를 청와대의 외압에 따라 경찰청이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12월16일 기자실로 친히 찾아와 디도스 사건 관련자들의 금전거래와 관련해 “대가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 최고 수뇌도 금전거래가 범죄와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또 검찰은 지난 12월22일 “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박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만에 하나 경찰청이 ‘언론조정신청서’에서 주장한 내용이 모두 맞다고 치더라도,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핵심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판단이 모두 틀렸음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따라서 의 보도로 경찰은 그 오류들을 ‘뒤늦게’ 깨닫게 된 셈이다. 안타깝게도 경찰은 이와 관련해 이제껏 에 ‘감사의 말’을 전해온 바는 없다.
경찰의 언론조정신청에 따른 심리는 12월2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광화문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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