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최대의 정치 현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하지만 여러 정치세력들은 그 너머의 내년 4월 총선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국회와 여야 정당들이 모인 서울 여의도에는 각종 신당설이 난무하고 있다. 어쩌면 5개월도 남지 않은 4·11 총선에서는 현재 익숙한 정당들의 이름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법륜은 신당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야권은 세력 재편이 본격화됐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인 통합연대가 11월17일 진보 3자 통합에 합의해 ‘진보통합정당’이 생길 전망이다. 세 축이 합쳐진다지만 사실상 옛 민주노동당에 유시민 대표를 비롯한 참여당 세력이 합쳐진 형태다.
진보통합정당이 만들어지면서 ‘혁신과통합’이 주도해온 범야권 대통합 정당 구상은 차질을 빚게 됐다. 혁신과통합과 민주당 등은 그동안 정파별 독립성이 보장되는 연합정당 방식의 통합을 강조하며 국민참여당과 진보 진영에 공을 들였다. 당분간은 힘을 잃게 됐다. 총선 전에 진보통합정당과 합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지만, 민주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전 총리 등 참여당을 제외한 친노 세력과 김기식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 세력, 그리고 한국노총이 결합하는 형태의, 진보가 빠진 ‘민주통합정당’이 불가피해졌다.
‘진보통합정당’과 ‘민주통합정당’은 연말께로 점쳐지는 전당대회를 거치며 각각 ’진보’와 ’민주’가 들어가는 새 이름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1:1 대결 구도를 만들어 야권이 승리하고 내년 12월 정권교체의 기반을 닦는다는 목표는 같되, 경로는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혁신과통합은 하나의 통합정당 내에서 진보정당 출신 세력이 독자적 정치활동을 하며 총선에서는 국회 교섭단체 구성(20석) 수준의 의석 확보를 위해 배려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진보정당들은 결국 선거 연대 전략을 택했다. 민주통합정당과 진보통합정당, 그리고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 대표 탈당 뒤 홍세화 전 기획위원이 새 대표로 나서 조직을 추스르는 진보신당 등이 총선에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10·24 강원도 인제군수 보궐선거처럼 야권 연대의 실패로 한나라당이 어부지리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진보통합정당이나 민주통합정당은 엄밀히 말해 신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존 정당의 연합 혹은 기본 골격에 새 기둥을 덧댄 셈이기 때문이다. 무당파와 중도층을 기반으로 한 제3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중심으로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신당이 맞다.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의 현실 정치 참여를 시간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11월14일 주식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을 정치 참여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내년 12월 대선으로 직행할지, 아니면 4월 총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지 따위의 문제만 물음표로 남겨뒀을 뿐이다. 안 원장의 주변 인사 가운데 ‘청춘콘서트’의 기획자이기도 한 법륜 스님은 안 원장 중심의 신당 창당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안 원장이 총선 전에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불과 몇 달 전의 ‘사회공헌’이 신당을 향한 정치적 수순이었느냐는 비판이 불 보듯 뻔한 길을, 안 원장이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문재인, 김문수의 러브콜재밌는 대목은 여권과 야권 양쪽 모두에서 안 원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과통합의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1월7일 국회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안 원장의 범야권 합류를 위해 직접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이사장은 “가급적 내년 4월 총선 전부터 같이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 조만간 이런 우리의 뜻을 안 원장 쪽에 전하고 안 원장의 견해를 듣고 만날 수 있을지 타진하겠다. 안 원장의 현재 지지도가 계속되면 우리 진영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도 돕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도 적극성 면에서 뒤지지 않았다. 김 지사는 지난 11월15일 미국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이 안철수 같은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선 박근혜 전 대표가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 원장은 나보다 10배 이상 더 한나라당에 적합한 사람이다. 안 원장이 한나라당을 비판한 게 얼마나 되나. 내가 그보단 10배 더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보통 광역단체장들이 외국을 방문해 특파원들을 만나면 자신의 해외 방문 성과를 설명하는 데 열중하고 국내 정치 얘기를 곁들이는데, 이날은 작심한 듯 ‘박근혜 비판’과 ‘안철수 영입’ 주장으로 일관했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大)중도주의’ 정당을 구상 중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숟가락을 얹었다. 박 이사장은 와의 인터뷰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있고, 12월에는 창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안철수 원장과도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중도를 표방하지만, 최근 그의 행적을 보면 극우보수에 가깝다.
안철수 원장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만큼 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어쩌면 진보개혁 진영과 보수 진영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것은 안 원장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뒤집으면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단점이 된다. 안 원장의 정치적 태도는 ‘반한나라(“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비민주’로 요약할 수 있고,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총론적 견해를 밝힌 적은 있지만 일부 경제 관련 분야 외에 각론은 불투명한 상태다.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할 때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이 됐던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그리고 최근 자신의 주식을 기부하며 저소득층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언급했지만, 무상교육 등 복지 현안에 관해 뚜렷한 의견을 내놓은 게 없었다.
보수 세력 재편은 어떻게 되나
현존하는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한나라당(1997년 11월 창당)은 존속할까. 한-미 FTA 국면이 끝나면 한나라당에는 ‘쇄신 파동’이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색깔을 지우고 쇄신하는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쇄신파 연합의 갈등이 고조될 전망이다. 한때 ‘박근혜 신당설’이 불거질 정도로 양쪽의 골이 깊다. 한나라당 바깥의 ‘박세일 신당’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세력도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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