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10월26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한나라당 후보로 9월27일 공식 추대됐다. 앞서 보수 시민사회 후보로 이석연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했고, 같은 당 김충환 의원도 나 의원과 경선을 벌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 의원의 지지율이 범여권 후보군 가운데선 압도적으로 우세한 탓에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물러섰다. 나 의원으로선 손쉽게, 혹은 다소 싱겁게 후보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박근혜 잇는 선거의 여왕
비단 이번 서울시장 후보 추대뿐만이 아니다. 사실 나 의원의 이력은 매우 순탄하다. 사법연수원 24기 출신으로 부산·인천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재직하다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5년 원내 공보부대표, 이듬해 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2007년 대선 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 캠프 대변인도 겸했다. 3년여의 공보·대변인 활동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돼 나 의원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특히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광운대 BBK 동영상’과 관련해 낸 “주어가 없다”는 논평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뒤를 잇는 ‘선거의 여왕’이 된 바탕은 이런 대중성 덕분이다. 선거에서 직접 이기거나, 동료가 이길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대중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데 필수 요소다. 그는 18대 총선 때 서울 중구에 출마해 정범구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 신은경 당시 자유선진당 후보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자기 선거뿐만 아니라, 박근혜계가 ‘공천 학살’을 당한 뒤 선거 지원에 손을 놓은 박 전 대표를 대신해 다른 후보들의 지원 유세도 마다치 않았다. 이후 치러진 몇 차례 재·보궐 선거에서도 나 의원에겐 지원 요청이 쏟아졌다.
지난해 지방선거 땐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후보는 못 됐지만 ‘성과’는 없지 않았다. 당시 3선인 원희룡 의원과의 단일화 협상에서 자신의 신념인 무상급식 반대를 조건으로 내걸어 관철시켰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겐 임기 중 치러지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지난해 7월과 올해 7월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잇따라 출마해 최고위원 자리를 거머쥐었다. 최고위원 1명은 여성 몫으로 전당대회 결과와 무관하게 할당되지만, 나 의원은 두 차례 모두 자력으로 3위에 올라 ‘자기 정치’의 기반을 다졌다.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선 “성전”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한 덕분에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가능성도 주목받게 됐다. 그리고 이번엔 한나라당의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장애인 인권침해, 여성비하 논란
단지 운이 좋아서 이런 이력이 가능했을까? 아무리 운이 좋아도 스스로의 노력과 자질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나 의원은 집념이 매우 강하다. 일단 뭘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면 저돌적으로 추진한다. 꼼꼼하고 똑 부러지게 일처리를 하는 편이다. 정해진 당론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윗사람을 깎듯이 대한다. 성실한데다, 상황의 포인트를 짚어 잘 정리하고 암기력도 뛰어나 ‘모범답안’ 같은 보고를 하기 때문에 윗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의원 주변 인사들의 평가다. 이런 평가는 당의 일부 인사들이 그를 ‘하고잽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드러난다. ‘하고잽이’는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고 싶어 한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욕을 먹거나 실패하더라도 당을 위한 일, 또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선거든 텔레비전 토론이든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심’은 “이벤트 정치인, 탤런트 정치인은 안 된다”(홍준표 대표)는 비판을 부르기도 한다. 제대로 콘텐츠를 갖추지 못한 채, ‘보여주기’에만 급급하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그는 딸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탓에 초선 때부터 장애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회에 ‘장애아이 We Can’이라는 연구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9월26일 서울 후암동의 한 장애아 복지시설에서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그 자신이 여성인데도, 2008년 11월 ‘경남 여성지도자회의 정기총회’에서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붓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붓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붓감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며 여성·교사 비하 발언을 쏟아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자위대 창설 50돌 기념 행사 참석은 “자위대 행사인지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비판받을 뿐 아니라 ‘거짓 해명’ 논란까지 빚고 있다.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은 이런 사례들이 쌓인 결과로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9월29일 자신을 예방한 나 의원에게 “인상이 좋고 누가 봐도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하므로, 그게 점수를 따고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나 의원은 기사에 ‘국회의원계의 김태희’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국회의원 같지 않은 외모를 과시한다. 측근들조차 “나 의원의 대중성과 인기는 뛰어난 외모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힘의 논리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위세를 떨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감성과 공감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각광받기 때문에 이에 부합하는 나 의원의 이미지는 경쟁력이 충분하다.
왜 ‘정치적 동지’가 없을까
그러나 나 의원 스스로 “(외모 때문에) 손해나는 면도 있다”고 말했듯, 화려한 외모만 주목받는 탓에 정작 능력은 저평가되거나 발휘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전히 정치권의 지배적인 문화는 성차별적이기 때문에 나 의원이 ‘꽃’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9월29일 김종필 전 총리가 나 의원에게 한 ‘손등 키스’는 이런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는 단면이다. 한편 나 의원은 2007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한 일을 두고 “민생정치가 아닌 기생정치로는 결코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란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적도 있다.
꼼꼼하고 까다로운 일처리는 장점이지만, 정작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에겐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나 의원에겐 ‘정치적 동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윗사람에게 예의 바르고 상냥한 태도는 거꾸로 “주류의 뒤꽁무늬만 좇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동전엔 양면이 있듯, 나 의원도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극과 극으로 평가가 달라진다. 남은 선거 기간에 나 의원이 보여주는 모습은 서울시민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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