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로 확정돼 시민후보 박원순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불과 8년 전 이맘때만 해도 문화방송 기자였다. 2000년 16대 총선 때 문화방송 선배이자 민주당 소장파의 선두주자이던 정동영 의원이 정계 진출을 제의했으나, “기자를 시작했으니 20년은 채우고 싶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박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정치를 시작했다. 임기 4년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007년 대선 때였다. 박 의원은 기자 시절 ‘BBK’와 관련 있던 이명박 당시 e뱅크코리아 회장을 인터뷰했다. 박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후보를 향해 쏘아붙인다.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부끄러운 줄 아세요, 진짜.” 초선 의원이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 대선주자에게 던질 수 있는 ‘창’이 아니었다. 이 후보가 “저게 미쳤나? 옛날엔 안 저랬는데…”라고 옆 사람에게 얘기하는 동영상이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박 의원이 이 후보를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은, 기자 시절 인터뷰를 하며 들은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에 제출된 e뱅크코리아의 홍보 책자에는 이명박과 김경준이 각각 대표이사 회장, 사장으로 등장한다. “e뱅크코리아는 2000년 2월 하나은행과 이명박, 김경준이 합작으로 ‘설립한’ 국내 최초 사이버 금융지주회사입니다. e뱅크코리아의 자매회사인 BBK투자자문은 MAF펀드를 (운용해) 1999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 국내 최고 수익률인 28.84%를 기록하였습니다”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박 의원과 이 후보의 BBK 사건을 둘러싼 공격과 방어는 이때부터 투표일까지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박 의원은 ‘야무진 BBK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치를 시작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재선 의원이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를 꿰찬 것을 보면 박영선 의원은 간단치 않은 인물이다. 민주당 내 경쟁자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정동영 최고위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천정배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4선 의원이다. 추미애 의원은 한때 대선주자로 거론됐던,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지낸 거물이다. 경선에서 최하위를 했지만 신계륜 전 의원도 1992년 14대 총선에서 당선돼 조순 서울시장 시절 부시장을 지낸 ‘486 정치인’들의 맏형이다. 단 한 명도 만만한 상대가 없는 경선이었는데 박 의원은 천정배 후보를 1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박영선 의원의 힘은 뭘까. 우선 문화방송의 첫 해외 특파원(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경제부장을 지내며 쌓은 높은 인지도를 꼽을 수 있다. 인지도는 정치인의 가장 큰 자산이다.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상당수는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존재감이 없다. 박 의원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대변인을 맡아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송기자, 대변인으로 쌓은 높은 인지도로만으로는 정치인 박영선의 성공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결단
박 의원은 2007년 대선 때 ‘BBK 저격수’로 자질을 내비치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 각종 인사청문회와 굵직한 정책 현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경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벌 개혁에 힘쓰며 ‘삼성 킬러’라는 새 별명도 얻었다.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맹활약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지원 의원은 박영선 의원에 대해 “박영선은 기자 출신이라 분석을 잘하고 나는 정보를 잘 알아온다”며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박영선·박지원”이라고 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 ‘광주 청문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박 의원은 검찰 개혁과 복지 분야 등 정책면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 정책위 부의장을 거쳐 손학규 대표 체제에서는 정책위 의장으로 발탁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시발점이던 무상급식을 포함해 각종 복지 의제에 관한 논쟁에서, 시민운동을 통해 단련된 박원순 후보와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부진 외모와 말투에 정책적 능력까지 겸비한 점이 정치인 박영선의 두 번째 강점이다.
세 번째 강점은 인연에 얽매이지 않으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감각이다. 박영선 의원은 손 대표를 포함한 주류, 이인영 최고위원 등 ‘486 정치인’,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를 중심으로한 친노 인사 등 민주당 내 다양한 계파의 지지와 지원을 끌어냈다. 보통의 정치인들은 자신을 끌어준 선배 정치인과의 인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박 의원이 그저 그런 정치인이었다면 정동영 최고위원의 자기장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의원은 정 최고위원과 맞섰고 극복했다.
두 가지 일화가 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현재 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한 전당대회에서 자신과 인연이 각별한 정 최고위원 대신 이인영 최고위원을 도왔다. 이 최고위원이 국회 기자실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연 날, 우상호 전 의원 등 19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의 의원들이 이 최고위원 주변에 섰다. 그 끝자락에 박영선 의원이 서 있었다. 이인영 최고위원(구로갑)과는 옆 지역구(구로을)라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는데도 “이 후보를 돕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담백한 말 한마디로 이 최고를 지지했다. 이 최고위원은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 정의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불의 앞에서 단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열리기 전 정동영 최고위원이 손학규 대표를 겨냥해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우자, 박 의원은 “(정동영) 당 의장 시절 얘기를 한번 해볼까요?”라며 정 최고위원을 몰아붙였다. 천정배 의원을 제외하고는 서울시장 후보가 없던 시절, 학생운동 출신의 소장파 정치인들과 친노 인사들이 박 의원의 출마를 종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박 의원은 “민주당을 위해 낙엽이 되라면 낙엽이 되고 촛불이 되라면 촛불이 되겠다”며 경선에 나섰다. 최근 민주당에는 과거의 계파와 모임이 느슨해지며 새로 재편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박 의원이 그 선두에 섰던 셈이다.
미래가 주목되는 대중정치인
정치인 중에는 정치권에 처음 입문할 때 자신이 지녔던 자산을 까먹으며 오래 버티는 이가 꽤 있다. 애초 대중의 주목과 지지를 받던 기반을 잃고 다른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이도 적지 않다. 박영선 의원은 반대의 경우다. 인지도라는 자산에, 전문성을 살리며 정책적 역량을 바탕으로 자기 색깔이 분명한 정치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범야권 단일후보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후보 박원순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정도의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미래가 주목되는 이유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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