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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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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비가 그치고 햇볕이 비칠까?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방미로 대화 국면 들어간 북-미 관계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돌아온 웬디 셔먼은 공화당 벽 넘고 MB 정부 견제 뚫을까
등록 2011-08-02 16:14 수정 2020-05-03 04:26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7월28일(현지시각) 북-미 회담 장소인 미국 뉴욕의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로 이동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7월28일(현지시각) 북-미 회담 장소인 미국 뉴욕의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로 이동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지루할 만큼 ‘흐리다 비’의 연속이었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한반도 정세 말이다. 이제 해가 날 때도 되었다. 미국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초청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미 양국의 두 번째 고위급 만남이다.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북한 방문이 첫 번째 기회였다. 그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2010년 초 오바마 행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만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미국은 한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편승했고, 북-미 관계도 멀어져갔다. 이번에는 다를까? 이명박 집권 3년6개월, 오바마 집권 2년6개월 만에 처음으로 협상 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까?

북한과 미국의 탐색적 대화

경색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것은 사실이다. 7월22일 아세안지역포럼(ARF)이 계기였다. 그동안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이른바 ‘3단계 접근법’이 추진되었다. 남북대화→북-미 회담→6자회담의 수순이다. 남북대화는 지난 5월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북한이 폭로해 파국을 맞았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처지를 고려해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남북 모두 한반도 정세를 전환할 수 있는 의지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결국 ARF에서의 형식적인 남북 만남을 명분으로 미국은 다음 단계인 북-미 회담으로 넘어갔다.

북-미 회담이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까? 6자회담이 장기 표류하는 사이 한반도 질서가 많이 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북한은 꾸준히 핵 능력을 강화했다. 북-중 경제협력 확대라는 경제적 안전판도 확보했다. 자신감을 갖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가 어려워서 나온 것도 아니고, 식량을 얻으려고 나온 것도 아니다. 미국이 검토하고 있는 인도적 식량 지원은 현재의 북-미 대화 국면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안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외교적 협상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공개적 원칙이 있다. 북한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식량 지원은 상징 효과가 크지만, 목맬 정도의 경제적 대가는 아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환경의 변화다. 경제제재 완화 같은 이른바 ‘적대 정책’의 변경을 요구한다.

미국은 어떤가? 오바마 행정부의 협상 의지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탐색적 대화’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예비회담’이라는 표현도 썼다. 당장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않고, 북한의 의중을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피차일반이다. 북한 역시 미국과 직접 만나 미국의 협상 의지를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열린 회담’이다.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면서 상대의 태도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추후에 행동을 선택할 것이다.

북한의 주장은 무엇인가? 북한은 강화된 핵 능력을 공세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자체적으로 소형 경수로를 지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이에 필요한 저농축 우라늄 생산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라는 국제법적 명분을 강조하며, 미국에 적대 정책의 중단과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주장할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당연히 우라늄 농축을 9·19 공동성명의 위반으로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우선적으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가능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요구할 것이다.

양쪽의 견해 차이는 크다. 그렇지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번 만남은 미국의 협상 관계자들이 북한이라는 상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오해에서 이해로 이동하는 데 접촉은 필수다. 과거 내 경험에서 보면, 미국 관료들은 북한과의 초기 협상에서 많이 놀란다. 접촉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상대를 이념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교조적이고, 협상 권한이 없고, 무데뽀일 것이라는 선입관 말이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면,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북한의 협상 전략 주기를 보면, 지금은 진전의 시기다. 북한은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벼랑 끝 전술을 종종 쓴다. 그렇게 핵이나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키면 그것을 협상 수단화해서, 다시 말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서 협상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웬디 셔먼(59·사진)

웬디 셔먼(59·사진)

오랜 동면만큼 뜨거운 협상을

6자회담을 전망할 때, 북한의 협상 패턴은 상수다. 협상이 이루어지면 그들은 핵 능력을 동결하거나 축소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핵 보유의 길로 달려간다. 결국 북한의 핵 포기 환경을 미국과 관련 당사국들이 제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협상 의지가 있는가? 이번에 시작되는 대화 국면은 금방 종료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낙관적이지도 않다. 우선적으로 미국 내 사정이 복잡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여전히 북핵 문제 해결에 자신감이 부족하다. 개입해서 해결하지 못할 바에야, 지켜보며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것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그러한 전략은 실패했다. 성 김 주한미국대사 인준 청문회에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경고했다. “외교적 교착이 지속되면, 더 위험한 상황이 온다”고. 방관의 시효는 지났다. 이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위기 관리를 위한 소극적 개입과 적극적 개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악화되고 있는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변수다. 재정위기 사태를 극복하려면 공화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공화당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신중함이요, 소극성의 이유다.

그러나 이제 선택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북핵 협상’이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미국이 탐색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선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바로 웬디 셔먼이다. 1998년 ‘페리 프로세스’의 실무자였으며,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 초안 작성 및 협상 책임자였고, 2000년 11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마지막 북-미 미사일 회담의 대표이기도 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비롯해 과거 클린턴 행정부 사람들은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 협상 결과를 승계하지 않은 것을 가장 중요한 외교적 실책으로 거론한다. 바로 그 웬디 셔먼이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돼 인준 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다. 빌 번스 부장관이 중동전문가라는 점에서, 향후 웬디 셔먼이 동북아 외교를 총괄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오바마 외교팀의 우유부단함은 전략 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협상을 지휘할 사령탑이 없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경험 많은 보즈워스는 실권이 없었고, 실권이 있는 사람들은 경험이 없었다. 북한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가 주도했으며, 이명박 정부에 끌려다녔다. 물론 8월 초 인준 청문회에서 셔먼은 홍역을 치를 것이다. 공화당은 그녀를 ‘유화파’로 낙인찍고 있다. 임명되더라도 미국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알고 협상 경험이 있는 그녀의 등장은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 외교를 점차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자신감의 크기는 아는 만큼이다.

최근 내가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들을 만나 왜 협상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동안 많은 것을 준비해왔다고.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막상 시작되면 진정성이 있을 것이라고. 그러기를 바란다. 내년 대선 정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남아 있는 하반기의 몇 개월을, 동면의 기간에 축적해온 협상의 열기를 불태우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래서 내년 대선 과정에서 북핵 협상이 외교적 성과가 되고, 그래서 핵 없는 세계에 대한 오바마의 비전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선불로 받은 노벨평화상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으면 한다.

다시 ‘통미봉남’이라는 말이 거론되고 있다. 북-미 대화가 이루어지면, 한국이 왕따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통미봉남은 왜곡된 개념이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 남북관계 없는 북-미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하면, 6자회담의 성과도 보장되기 어렵다. 북한은 핵을 억지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긴장 국면이 지속되면, 그 억지력을 포기하겠는가? 결국 남북, 북-미, 한-미 관계가 선순환해야 한반도 정세도 안정되고 북핵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 ‘통미봉남’ 조성하는 한국 정부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 변수다. 말이 달라지고 있지만, 이제 말로 국면을 전환할 시기는 지났다. 8·15 경축사를 기대하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말이 있을까? 조건 없는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전향적 행동이라면 모를까. 말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통일부 장관 교체를 비롯해 인사가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기대하기 어렵다. 청와대를 포함해서 온통 뉴라이트 천지인데, 그중 한두 명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스스로 통미봉남을 선택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남북관계는 어려워도 최소한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북핵 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남북대화에 대한 정리된 방침도 없으면서, 북-미 대화를 막기 위한 3단계 접근법의 시효는 끝났다. 북-미 대화가 시작되는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또다시 악역으로 나서지 않기를 바란다. 바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한의 선 조처 요구다. 북핵 문제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이 기본이다. 협상 결과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면, 마차를 말 앞에 두려고 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6자회담 재개 국면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고립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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