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內査). 어두운 포스가 물씬 묻어나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몰래 조사함”이라고 풀어놓았다. 쉽게 말해, 뒷조사다.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 의해 행해진다. 사람들은 주로 언론 보도를 통해 ‘내사’라는 말을 접한다. “광범위한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이다. 내사와 ‘세트’로 피내사자, 내사종결 등의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내사는 수사기관의 꿀단지</font></font>
그러나 내사라는 용어는 형사소송법(형소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내사는 법령으로 명확히 정해진 형사 절차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 헌법 제12조가 천명한 죄형법정주의의 우산에서 살짝 비켜난 지점에서 관행적·실무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도 많이 터진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조사하거나,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도 혐의가 없다고 끝내버리거나 덮어버린다. 몰래 조사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사고를 방지하려고 수사기관 자체적으로 내사의 착수와 진행, 보고 등을 규율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한계와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내사 활동이 자유로워지면 형소법 통제를 덜 받게 되니 내사의 효율성은 커지지만, 피내사자의 방어권은 그만큼 약해진다. 법의 통제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으면서도 할 건 다 할 수 있다 보니 수사기관으로서는 이런 꿀단지가 따로 없다.
내사라는, 음습해서 달콤한 지대를 두고 검찰과 경찰이 서로 자신의 ‘영토’임을 선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6월20일 검경이 형사소송법의 수사개시권 명문화에 합의하며 “모든 수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논란의 출발점이다.
현행 형소법 제196조 1항은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 2항은 “경사, 순경은 사법경찰관리로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지휘를 받아 수사의 보조를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경찰 계급은 아래부터 ‘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으로 나뉜다. 총경이 일선 경찰서장급이고, 치안총감이 경찰 총수인 경찰청장이다. 행정경찰 8만여 명을 제외한 2만2천여 명의 수사경찰이 형소법 조항에 따라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는다. 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 같은 경찰 최고위직은 사실상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고 수사 보고를 받지만 행정경찰로 분류되기 때문에 검사의 수사 지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1954년 검사의 지휘를 못박은 형소법이 제정될 때부터 경찰은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요구를 해왔다. 바로 수사권 조정 문제다. 수사 지휘를 받는 ‘복종적·노예적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기관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판을 깔고 청와대가 나서서 어정쩡하게 봉합한 이번 6·20 합의안은 ‘수사개시권’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합의안은 이렇다. 형소법 제196조 1항을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바꿨다. 현행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에서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바꾼 것이다. 경찰 안에서는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혹 떼려다 오히려 더 큰 혹을 붙였다”며 ‘개악’으로 보는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2항에는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에 관하여 수사를 개시·진행하여야 한다”라는 경찰의 수사개시권이 명문화됐다.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3항), “사법경찰관은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검사에게 송부하여야 한다”(4항)는 조항이 새로 생겼다. 3항의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1항의 “모든 수사”와 맞물린다. “모든 수사”에 내사가 포함되는지, “모든 수사”의 구체적 범위를 검찰 쪽 편을 들어주게 될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검찰과 경찰이 불꽃 튀게 맞붙는 지점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경찰 영토 침입에 대한 반발 </font></font>합의안이 나온 직후부터 ‘합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서로 다른 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모든 수사에는 내사도 포함된다. 경찰이 하는 내사도 지휘하겠다”고 했다. 이러자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자신의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임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조현오 경찰청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검찰이 경찰의 독자적인 내사 활동까지 지휘하려고 시도하면 합의를 완전히 파기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모든 수사’에는 내사 단계는 포함되지 않는다. 검찰에서 내사의 개념을 확장해 수사의 한 부분으로 보고 내사 단계에서 경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감금 합의’를 종용했던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지금도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경찰이 하는 내사는 모든 수사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거들었다. 검찰은 “조현오 경찰청장이 합의안에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뒤늦게 떠든다”고 했다. ‘경찰 내부 불만 진화용 발언’이라는 것이다.
내사는 경찰에서도 하고 검찰에서도 한다. 수사 역시 경찰에서도 하고 검찰에서도 하지만, 수사할 때는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구속, 압수수색 등도 일일이 검사의 지휘를 거쳐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절도·상해 등 단순 사건이나 현행범 등 상당수 사건은 검사의 지휘 없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해왔다. 수사개시권 명문화는 이런 현실을 법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수사의 종결권은 검사에게만 있다. 경찰이 끝내려는 사건도 검사가 다시 수사하라고 ‘지휘’하면 다시 수사해야 한다. 경찰이 또다시 다른 의견을 내면 검사는 ‘재지휘’를 한다.
반면에 내사의 경우에는 경찰의 운신 폭이 매우 넓다. 경찰은 그동안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내사를 시작하고, 독자적으로 내사를 종결해왔다. 내사개시권에 내사종결권까지 가진 것이다. 내사의 내용이나 진행 상황을 검사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 그런 신성불가침의 ‘영토’를 검찰이 치고 들어오겠다니 총궐기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경찰의 내사 활동이 완전히 검찰의 지휘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공안, 선거, 주요 강력사건 등은 내사 단계부터 지휘한다. 피의자가 수십~수백 명에 이르는 사건은 입건 기준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한다.
검찰은 또 일반적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관할 경찰서에 ‘체포·구속장소 감찰’을 나간다. 흔히 ‘유치장 감찰’로 불리는데, 이는 형소법 제198조의 2에 규정돼 있다. “감찰하는 검사는 체포 또는 구속된 자를 심문하고 관련 서류를 조사하여야 한다.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체포 또는 구속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체포 또는 구속된 자를 석방하거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것을 명하여야 한다.” 검사는 유치장 감찰을 할 때 내사종결 사건 등 각종 서류 감찰을 함께 한다. 경찰의 내사사건 처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인 셈이다.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논문 ‘내사사건의 통제방안에 관한 연구’(2008)에서 “경찰은 (검찰의 감찰에 대해) 원래의 인권보호 취지를 벗어나 경찰 업무에 대한 백화점식 사무감사 및 서류감찰 등 경찰 통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유치장 감찰을 와서는 내사부(내사사건부)부터 깐다.” 서울 지역의 한 경찰 간부는 검사의 유치장 감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내사종결된 사안에 대해 경찰이 ‘다른 뜻’으로 종결한 것이 아닌가 들여다본다.” 범죄 혐의가 있는데도 경찰이 자의적으로 사건을 끝내버린 게 아닌지 의심한다는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내사와 수사의 모호한 구분</font></font>내사는 형식적으로는 수사의 전 단계, 그러니까 수사 착수 전에 범죄 혐의를 구체화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내사의 단서는 진정·투서·언론보도·출판물·인터넷·풍설 등에 기초를 둔다. 일부 형법학자는 경찰 내사를 “범죄 혐의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활동”으로, 검찰 내사를 “범죄 혐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하는 조사”로 구분하지만, 실무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검경 관계자들의 말이다.
경찰은 내사 결과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피내사자를 ‘입건’(범죄인지보고서 작성)하게 된다. 공식적으로 수사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경찰은 이때부터 검사의 수사 지휘가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내사종결한 사안은 수사가 아니라 내사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찰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검찰은 유치장 감찰 결과, 경찰이 부당하게 내사종결했다는 판단이 서면 입건을 지시해왔다.
검찰은 실무적으로 내사와 수사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건 이전의 내사 단계(내사종결 포함)도 수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수사에 내사도 포함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경찰이 이것저것 탐문하고 다니는 것을 어떻게 지휘하나. 내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지휘가 이뤄지지 않는다. 내사종결한 사안에 대해서만 지휘를 하는 것인데, 이는 내사 지휘가 아니라 사실상 수사 지휘”라고 말했다.
경찰은 ‘입건’을 기준으로 내사와 수사를 구분하지만, 검찰은 입건 이전에도 범죄 혐의에 대해 실질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내사와 수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설명한다. 대법원 판례도 이와 같은 취지의 선고를 한 바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경찰에서 관련자들을 다 조사하고 통신 조회까지 마쳤다고 치자. 그런데 아직 사건 번호를 안 붙였다(입건을 안 했다). 이게 내사인가, 수사인가? 경찰은 이를 내사라고 하는데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했다. 형소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증거수집 활동은 수사라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형사부 검사는 “최근 유치장 감찰을 나갔는데, 내사사건부는 보여주지도 않고 범죄사건부 등 몇 가지만 보여주더라. 내사사건은 전산망에 입력하니 그걸 보라고 한다. 내사는 완전히 자기네 거라는 의미다. 내사부에 올리지도 않고 뒤지고 다니는 내사 활동이 얼마나 많겠나. 그러다 사고가 터지는 것”이라고 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검찰의 권력형 내사는 괜찮나</font></font>그러나 경찰청 관계자는 “지금도 검찰이 내사에 관여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법무부가 주도해서 만든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에 내사 단계부터 입력하지 않으면 영장 신청을 포함해 아무것도 못한다. 경찰이 내사사건을 몰래 암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지방경찰서의 보고를 받아보니 유치장 감찰을 나온 검찰이 내사사건부 등 20개도 넘는 항목을 점검하고 갔다. 실제 유치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보고 구타 등의 흔적도 찾아야 하는데 오로지 서류만 본다. 이건 사무감사이자 월권”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도 “내사를 전산에 입력하지 않으면 등본조차 마음대로 떼어보기 힘들다. 그렇게 의심하고 들면 검찰이 하는 내사는 누가 통제하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은 ‘인권보호’를 위해 경찰 내사도 검찰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권단체 등에서는 “지난해 서울양천서 고문사건도 전혀 통제하지 못했던 검찰이 인권을 걱정하고 나서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경찰 역시 “내사는 우리 것”이라고 요구하기 전에 권리침해 가능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얼마나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의 권리가 직결된 수사권 문제를 대통령이 ‘밥그릇’으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사 건수는 경찰이 검찰보다 월등히 많다. 수백 배에 이른다. 비율상 ‘사고’도 경찰에서 더 많이 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검찰 내사는 권력형 내사가 많다. 경찰이 민생에 좀더 밀착한 내사를 한다면 정치·경제·사회적 의미는 검찰 쪽이 훨씬 크다. ‘봐주기 내사종결’이나 ‘손봐주기 내사’에 대한 의심은 검찰 쪽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검찰은 입건 전에도 압수·수색·출국금지 등 강제처분을 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내사는 권력이다. 사람 만나러 다니고 탐문하고 첩보 활동을 벌이는 것에서 힘이 나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내사는 형소법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인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경찰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검찰도 내사 번호를 안 붙이고 내사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았다. 두 기관 모두 내사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진단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내사를 법률에 규정해야”</font></font>내사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지적해온 신동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무상 내사라는 관행이 있어왔지만 이번 합의안을 계기로 내사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가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건을 안 하고 조사하는 내사는 형소법에서 규율하는 여러 권리보장 장치를 비켜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국회에서 명확히 법률로 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그런데도 국회가 이를 법무부령으로 떠넘긴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일부 형법학계에서는 경찰 내사는 검찰이, 검찰 내사는 외부 기관이 통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자체 내사 보고 체계나 사무감사 등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사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찍어 누를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시민의 권리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내사를 내사해야 하는 이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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