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높아가는 ‘문재인 대망론’ </font></font>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사진)이 6월15일 출간한 책 (이하 , 가교출판 펴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서른 살, 피가 뜨거운 ‘청년 문재인’은 ‘인권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을 헤쳐왔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를 이끌었다. 2009년 5월23일 오전 9시30분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장이 멈춘 순간까지 30년 가까이 두 사람은 동지, 친구, 동업자, 선후배로서 같고도 다른 삶을 함께 살았다. 은 그 세월의 증언록이자, ‘노무현 정신’의 문재인판 해석본이다.
책의 마지막은 의미심장하다. 야권에서 ‘문재인 대망론’이 증폭되고, 대중적 지지율이 높아지는 터다. 이 지난 5월7일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6%를 얻는 데 그쳤던 지지율(961호 표지 이야기 ‘친노 오디션 국민투표 결과는요’ 참조)은 한 달 새 두 자릿수 가까이 치고 올라갔다. 의 6월15일 조사에서 8.5%, 헤럴드공공정책연구원의 6월4~6일 조사에서 8.7%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야권의 잠재 후보만 놓고 보면 손학규 민주당 대표(각각 16.5%, 19.4%)에 이은 2위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각각 8.1%, 7.7%)와 비슷했다.
5월26~28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일반가구 무작위 표본추출(RDD) 방식으로 실시한 ‘대선 후보 호감도’ 조사에선 문 이사장이 15.2%를 기록했다. 야권 후보 가운데선 손학규 민주당 대표(22.8%)에 이은 2위고, 10.6%를 얻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도 오차범위(±3.1%포인트) 안에서 우세를 보였다. 독보적 위치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40.8%)와의 가상 대결에선 30.6%를 얻어, 차이가 10.2%포인트밖에 나지 않았다.
문 이사장을 향한 뜨거운 관심은 판매에서도 드러난다. 여러 인터넷 서점에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초판 1만5천 부가 모두 팔려나갔고, 출간 사흘째인 6월17일 현재 3만 부가 추가 인쇄에 들어갔다. 출판사 쪽에서도 “이렇게까지 호응이 크리라고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이런 관심은 문 이사장이 대선이라는 링 위에 ‘선수’로 나설 것인지로 귀결된다. 그는 지난 2월17일 과의 인터뷰에선 “정치를 직업으로 할 경우 생각되는 어려움, 대통령이 말씀하신 고통을 이겨낼 자신감과 배짱, 결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게 없다. 누구나 정치를 직업으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849호 표지이야기 ‘나는 유빠이자 한빠다’ 참조). 그날 인터뷰에 앞서 그는 ‘노무현재단 이사장, 참여정부 비서실장, 변호사 가운데 무엇으로 불리는 게 좋으냐’는 질문에 “변호사라는 직함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문 이사장은 아직 생각이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는 최근 와의 인터뷰에서도 “직업을 (변호사에서) 정치로 바꾸는 것까지는 생각해본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힘 모아야”</font></font>지금까지 문 이사장은 현실정치 참여와 관련해 ‘진보개혁 진영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라는 선 바깥으로는 넘어가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승리하려면 통합이 필수 조건이며, 그 통합을 위해 애쓰겠다는 것이다. 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반복된다. “적어도 우리 사회 정치 지형에서 진보적 성향이 다수를 이뤄 진보개혁 진영 안에서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도 대세를 그르치지 않게 될 때까지는 통합된 정당의 틀 안에서 정파 간 연립정부를 운영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걱정하는 내용이다. 책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 집권을 말하기 전에 진보개혁 진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2003년 참여정부 집권 시기에 비해 현재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역량과 집권 능력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진영 전체의 역량을 함께 모으는 지혜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그는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책 을 거론하며 “아주 좋은 책”이지만, “모두들 앞으로 진보개혁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정부가 애를 써도 5년 임기 동안에 해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보수 진영에 뺨 맞고 진보개혁 진영에 외면당한 참여정부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국가보안법 폐지, 검찰 개혁,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여러 노동 현안 등에서 보수 세력은 기득권으로 저항했고, 진보개혁 세력은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라거나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한 점을 염두에 둔 ‘걱정’이다. 사회 개혁의 파트너가 돼야 할 진보개혁 진영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림으로써 참여정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개혁도 제대로 못 이뤘다는 게 문 이사장의 평가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워낙 못하고 지지받지 못하니 착시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진보개혁 진영이) 정권을 잡는 순간 ‘저항’과 ‘벽’은 다시 선명해지고 높아지기 마련”이라며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참여정부가 집권 뒤 국정운영 준비를 제대로 못한 점은 한계였다는 ‘자성’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인수위 시절, 보수 쪽은 대선에 승리할 경우 대통령 비서실 개편부터 연도별·분기별·월별 국정개혁 과제와 홍보계획까지 세워둔 사실을 알고 놀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볼 때 문 이사장의 지적은 ‘남 탓’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야권 통합이나 연대가 현실화되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서로 눈높이를 맞추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은 현실적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허망하다’는 표현의 의미 </font></font>문 이사장은 에서 “허망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첫 출력본을 수첩에 넣고 다니는 그로선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면서도, 스스로 링 위에 오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것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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