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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정치인

‘고학력 엘리트’와 ‘서민의 친구’ 양면을 가진 손학규 민주당 대표…‘매력 포인트’ 부족 넘어 왜 2012년 대통령 돼야 하는지 보여줘야
등록 2011-05-04 18:48 수정 2020-05-03 04:26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4·27 재보선 최대의 승자다. 선거가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맞설 수 있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손학규는 누구일까? 정치인으로서 어떤 특징과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까?
정치인 손학규의 인생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 이때부터 연대기순으로 그의 이력을 훑어보면, 정치인 손학규가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잡힌다. 정치인의 이력은 곧 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관심 가졌던 교수

4월27일 밤 경기도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손학규 민주당 휴보가 꽃다발을 목에 걸고 지지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4월27일 밤 경기도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손학규 민주당 휴보가 꽃다발을 목에 걸고 지지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서강대 교수였던 그를 광명 보궐선거에 민자당 후보로 발탁했다. 민주화운동을 한 그가 느닷없이 5공의 혈통을 이어받은 민자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에 대해 재야는 ‘배신’이라고 비판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기택 대표)에서도 ‘손학규 교수’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 대표는 여당을 선택했고, ‘YS(김영삼)의 꿈나무’로 자라게 된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그를 대변인, 정책조정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 요직에 앉혀 일을 맡겼다. 그는 1996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민자당-신한국당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손학규 대표는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꽤 합리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념을 떠나 ‘일’을 열심히 하는 정치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려 했다. 기자들에게는 자신을 ‘개혁적 보수’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고 여당 정치인으로서 ‘금지된 선’을 넘지는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답변하기 곤란한 기자들의 질문은 언제나 미소로 받아넘겼다.

그는 정적이던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든 일도 있다. 1996년 1월 신한국당 대변인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국민회의에 대해, “원초적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대변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손 대표는 1998년 의원직을 던지고 경기지사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그러나 국민회의 후보인 임창열 전 부총리에게 패배했다. 2000년 다시 광명에 출마해 3선 의원이 됐으나, 2002년 또다시 의원직을 포기하고 경기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국회의원을 세 번 지내는 동안 온전히 4년 임기를 채운 적은 한 번도 없는 셈이다.

경기지사 4년 동안 손학규 대표는 중앙 정치를 멀리하고 ‘일’에만 몰두했다. LG필립스의 파주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등 수많은 첨단기업과 외자를 유치했고, ‘일하는 경기지사’로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기지사 임기를 마무리할 즈음 손 대표는 2007년 12월 대선에 출마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는 이명박-박근혜 양강구도로 짜여 있었다. 경기지사를 마치고 곧바로 100일 민심대장정으로 지지율 상승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준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명분’의 손학규 대신 ‘현실’의 이명박을 선택하고 지지를 선언했다.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던 이명박 대통령은 “안에 있어도 시베리아지만 나가도 추울 것”이라고 손 대표의 약을 바짝 올렸다. 손 대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 뒤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했다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현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패배한 일, 당 대표를 맡아 2008년 총선을 지휘했으나 패배한 일, 춘천에 칩거한 일, 2010년 10월 전당대회에서 화려하게 대표로 복귀한 일 등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손학규표 정책’이 뚜렷치 않다

손학규 대표에게는 정치인으로서 대단한 장점이 있다.

첫째, 가식적이지 않다. 손 대표는 4·27 재보선 기간 동안 매일 새벽 5시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선거운동만은 아니었다. 교인들이 알아보든 말든 괘념치 않았다고 한다. 경기지사 때 현장 시찰을 나가면 웬만한 일꾼들보다 더 열심히 삽질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00일 민심대장정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을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했다 하면 대충하지는 않는다. 둘째, 남에 대한 배려를 잘한다. 특히 다른 사람의 불편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사소한 얘기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옷에 이물질이 묻어 있는 것을 절대로 그냥 넘기지 못한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 직성이 풀린다.

두 가지는 인간적인 장점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최대의 정치적 자산은 바로 그의 ‘출신’이다. 그는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를 나온 수도권 출신 엘리트다. 또 한나라당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해 보수층의 거부감이 적다. 그의 이런 특징은 분당을에서 당선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표의 확장성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단점은 무엇일까? 어느 정치인이든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가 부족하다. 그를 잘 아는 모든 사람들은 “사람은 참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만 좋다면 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손 대표 홈페이지를 보면, ‘HQ(손학규) 리더십’ 코너가 있다. “일 잘한다, 유능하다, 추진력 있다”가 첫 번째로 올라와 있다. 글로벌 지도자, 국민 대통합, 한반도 평화, 민생 지도자 등이 제목으로 뽑혀 있다. 너무 많다. 그래서 공허하다. 손학규 대표가 왜 2012년에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그 ‘왜’가 아직은 잘 안 보인다.

둘째, 너무 총론적이다. 그의 연설은 화려한 말의 성찬이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해보면 듣기 좋은 말을 열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각론이 빈약해 보인다는 얘기다. 정치를 시작한 지 오래됐지만, 손에 잡히는 ‘손학규표 정책’이 무엇인지 아직도 찾기 어렵다.

셋째, 그에게는 위급한 사태를 눈앞에 두고 현실을 도피한 ‘전과’가 있다.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기 직전 모든 언론사 기자가 그를 찾아 헤매야 했다. 강원도에 있는 눈 덮인 산사로 들어가 닷새 동안 칩거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레이스 도중 조직동원 경선에 항의하며 사흘 동안 사라졌던 일도 유명하다. 손 대표 자신은 고뇌의 깊이를 그런 식으로 보여주려 했지만 국민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이상한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은 어떨까? 손 대표에게는 서강대 출신 제자를 중심으로 젊은 참모들이 있다. 그런데 떨어져나가서 손 대표를 비판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국회의원 공천이나 자리를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커 보인다.

1999년부터 손 대표를 돕고 있는 김주한(45) 전 경기도지사 비서관은 “(손 대표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지만, 마지막 결정은 반드시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직계였던 박종희 전 의원이나 김성식 의원은 그를 따라나오지 않았다. 지금 민주당 의원 중에 “목숨 걸고 손학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손학규 사람’도 별로 없다.

가능성과 위험성 어디로?

손학규 대표에게는 ‘고학력 엘리트’와 ‘사회 변혁을 추구한 서민의 친구’라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그는 경기중·고,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이다. 그런가 하면 중학교 때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수배 중일 때는 철공소에서 용접공을 했다.

고학력 엘리트들에게는 보통 똑똑하고 합리적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귀족적이라는 단점도 있다. 사회변혁가는 진정성과 순수함이라는 장점을 가졌지만, 남을 가르치려 든다는 ‘지도자 콤플렉스’를 가진 경우가 많다. 두 얼굴의 단점이 배합되면 “귀족적이면서 남을 가르치려 들” 것이다. 장점이 배합되면 “유능하면서도 진정성을 갖추게” 된다. 손학규 대표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그의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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