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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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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아파트가 분당을 움직일까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망설이게 하는 친이계 이미지,
손학규 후보의 정권심판론에 힘을 더하는 아파트값 하락…
4·27 보선, 분당을 후보와 민심을 쫓다
등록 2011-04-15 10:27 수정 2020-05-03 04:26

‘지키려는 자’에게선 초조함이 엿보이고, ‘뺏으려는 자’에게선 여유로움이 읽힌다. 경기 성남 분당을의 4·27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맞붙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 얘기다.
4월6일 오후 5시50분 정자동 신기사거리 앞에서 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의원 2명과 함께 주민들에게 인사를 시작했다. 파란색 어깨띠 뒤쪽엔 ‘15년 분당 사람’이라고 적었다. 강 전 대표는 분당구의 고급 주택촌인 구미동에 오래 살았지만, 17대 국회까지 대구 서 지역구에서만 내리 4번 당선된 탓에(13대 땐 비례대표) ‘대구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다.

‘대구 사람’ 아니라 ‘분당 사람’?

4월27일 밤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웃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7일 오전 분당 정자동 버스 정류장에서 출근길 주민과 악수를 하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4월27일 밤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웃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7일 오전 분당 정자동 버스 정류장에서 출근길 주민과 악수를 하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애초 강 전 대표는 ‘더 큰 분당’을 슬로건으로 쓰려고 했는데, 경쟁자인 손 전 대표와 달리 그는 분당 주민이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좋겠다는 지지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 중년 남성이 악수를 청하는 그에게 “먼 데서 오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강 전 대표는 “저는 낙하산 아닙니다. 분당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손 전 대표가 이달 초에야 정자동의 한 아파트에 월세를 얻어 전입한 데 비하면, 강 전 대표는 ‘분당 토박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경상도 말투의 나이 지긋한 쪽에선 먼저 강 전 대표를 알아보고 “환영합니다” “1번 찍을 거예요”라며 반가워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시큰둥했다. 손을 잡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가거나, 명함을 받지 않는 이도 있었다. 억지로 악수를 해도 강 전 대표의 눈을 마주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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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이날 오후 만난 금곡동 주민 김민영(66)씨는 한나라당 쪽 선거운동만 20년 가까이 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강 전 대표를 찍겠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아이고, 복잡해”였다. “좀 젊은 사람이 오면 좋은데, 나이도 많고.” 사실 강 전 대표는 올해 63살로, 손 대표보다 한 살 적다. 하지만 ‘5공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다선 의원인 탓에 실제보다 더 ‘옛날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 같았다. 선뜻 강 전 대표를 지지하겠다고 답하지 못하는 덴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난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거 보고 싶은 사람이거든. 그런데 강재섭은 너무 이명박 쪽으로 기울었어.” 김씨는, 강 전 대표가 대표로 있을 때 치러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그가 이명박 후보 쪽을 편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유세하는 거랑 신문 기사 나오는 거 지켜보고 결정해야지. 그렇지만 흔쾌하게 밀어주고 싶지는 않아.” 복잡했다.

하지만 강 전 대표는 주민들의 호응이 크다고 강조했다. “공천 갖고 당에서 그렇게 나한테 애를 먹인 거 주민들이 다 알아요. 내 손 잡고 ‘참 잘됐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 젊은 부인들, 청년들도 나를 굉장히 반가워하고, 노인복지관 가면 내가(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99%예요. 그쪽(손 대표)은 현역 대표고, 나는 3년 동안 잊혀진 전직 대표니까 인지도 차이는 있어요. 더구나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내 공천이 확정 안 돼서 불리할 때 나온 거였고. 이제는 다릅니다.” 그의 얘기엔 공천을 먼저 신청한 자신을 놔두고, 한나라당이 정운찬 전 총리의 전략공천 카드를 오랫동안 검토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묻어 있었다.

‘정권심판론’ 피하려 당 지원 꺼려

4월27일 밤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웃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7일 오후 수내3동 녹색경로당을 방문해 인사하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4월27일 밤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웃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7일 오후 수내3동 녹색경로당을 방문해 인사하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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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의 지원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개별 의원들이 와주면 좋죠. 홍준표·정두언 최고위원도 한번 오겠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도 중앙당 차원의 지원은 안 받으려고요. 여기는 아파트·단독주택이 많아 크게 유세판 벌이면 주민들이 짜증낸다고.” 강 전 대표의 말은 그랬지만, 실은 한나라당 간판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강 전 대표는 “이건 대통령 선거가 아니에요. 임기 1년짜리 ‘땜빵’ 국회의원 선거에서 판을 과도하게 키우는 것에 주민들은 거부감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옛날 사람’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도 강 전 대표에겐 부담인 것 같았다. “개혁이다, 옛날이다 하는데 자기 행보를 보면 알지. 말로는 개혁하자면서 광명 갔다가 종로 갔다가 분당 오는 거, 개혁으로 화장한 사람이지. 그거는 차선 위반, 무면허 운전이에요. 민주화운동만 했다 하면 걸핏하면 개혁세력이라고 하는데, 말이 안 되지. 자세가 깨끗하고 개혁적이어야지. 나는 부동산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집밖에 없고, 돈 문제도 없어요. 딴 사람보다 내가 덜 개혁적일 이유가 없어요.” 경기 광명 지역구에서 14~16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지난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하고 이번엔 다시 연고가 없는 분당으로 출마한 손 대표의 이력을 겨냥한 얘기였다.

오후 6시20분 강 전 대표는 주변 상가를 돌기 시작했다. 한 분식집 주인이 “서민들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가게를 빠져나온 그는 기자에게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하는 선거가 아니”라며 “무질서하게 차선 위반하고, 무면허 운전하는 정치 지도자를 분당 주민들이 심판해줄 것”이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연예인 같은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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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대표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오리역 3번 출구 앞에서 퇴근길 주민들에게 인사하며 명함을 나눠줬다. 지원을 나온 비서실장 양승조 의원은 “손학규 대표입니다”라며 주민들을 손 대표 쪽으로 안내했고, 박선숙 의원은 “4월27일 꼭 투표해주세요”라고 목청껏 외쳤다.

서울에 직장을 둔 주민들이 오리역으로 쏟아져나오는 오후 7시30분 손 대표는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번쩍 들어 흔들며 이들을 맞았다. “반갑습니다. 손학규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려던 사람들은 손 대표를 알아보고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다른 사람의 악수가 끝나기를 굳이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고 가는 이도 있었다. 한 40대 여성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세요”라며 어쩔 줄 몰라했고, “힘내십시오”라며 캔음료 3개를 쥐어주고 가는 남성도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손 대표의 사진을 찍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주로 30~40대에 집중되긴 했지만, 강 전 대표를 대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이곳이 수십 년 동안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양 의원은 “다른 국회의원 선거에선 이런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지만, 손 대표는 대선주자라서 주민들 호응이 이렇게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확실히 손 대표는 대선주자로 알려진 까닭에 인지도도 높고 언론 노출도 많아 주민들은 그와의 만남에서 연예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손 대표가 내세운 슬로건은 “대한민국의 운명-분당에서 바꿔주십시오”였다. 먹힐까? 금곡동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는 송아무개(55)씨는 그동안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워낙 한나라당만 되니까”가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엔 꼭 투표할 생각이란다. “분당에서도 한나라당이 아닌 사람이 해봐야죠. 이번엔 될 것 같아요.” 손 대표가 당적을 바꾼 건 별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뜻을 펴려고 하는데 노선이 다르면 당은 바꿀 수 있죠. 철새처럼 이 당, 저 당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딱 한 번이잖아요. 저는 손 대표가 말 바꾸기도 안 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모습에 믿음이 갑니다.”

‘차선위반론’ 피하려 대응 꺼려

경기 성남 분당을은 지금까지 민주당의 '불모지'였다.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4월8일 분당의 한 유세장.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던 당시 총선에서도 임태희 전 의원(현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54%의 득표율로 김재일 열린우리당 후보(41.1%)를 가뿐히 이겼다.

경기 성남 분당을은 지금까지 민주당의 '불모지'였다.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4월8일 분당의 한 유세장.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던 당시 총선에서도 임태희 전 의원(현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54%의 득표율로 김재일 열린우리당 후보(41.1%)를 가뿐히 이겼다.

송씨가 손 대표를 지지한다는 이유엔 현실적인 배경도 있었다. “10억원 하던 47평(155.37m²)짜리 아파트가 이명박 정부 들어 7억5천만~8억원까지 떨어졌어요. 자기 재산 줄어드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임태희가 여기서 3선까지 했지만 별로 해놓은 것도 없어요. 지하철 신분당선 연장 구간의 미금역 정차 문제도 확정짓지 못했잖아요.” 분당 지역 아파트값 하락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정자역~광교 신도시를 잇는 신분당선 연장선은 오는 2016년 2월 개통되는데, 미금역 정차를 관철시켜 분당 주민의 서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성남시와 이에 반대하는 광교신도시 주민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또한 분당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를 만한 사안인데,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보인 성과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게 송씨 얘기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라도 분당이 ‘비한나라당’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건 변화의 조짐일 수 있다. 손 대표는 ‘여유 있어 보인다’는 질문에 “글쎄요, 허허. 여유 있어 보여요?”라고 되물었다. 오후 8시가 다 돼 저녁 식사를 재촉하는 수행비서에게 손 대표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정각 8시에 끝냅시다. 아직 (지하철) 한 대는 더 올 시간이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지하철역 앞에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10여 대의 운전석 창문을 일일이 두드리며 인사를 했다. “선거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을 몸으로 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한나라당 텃밭인 데 비하면 분위기가 좀 낫다는 거지. 우호적인 사람 수로 따지면 그쪽(한나라당)이 더 많아요”라는 게 뒤늦은 그의 대답이었다.

근처 추어탕집에 자리를 잡은 손 대표를 응원하러 강봉균·신건·이성남 의원이 찾아왔다. 몇몇 의원은 식사가 끝난 뒤 상가를 돌 때 함께할 참이었다. 손 대표의 ‘생환’에 민주당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강 전 대표가 말한 ‘차선위반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지만 손 대표는 말을 아꼈다. “대구에서 4선 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잠만 잔다고 주민이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자 손 대표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얘기엔 대꾸할 필요가 없어요. 왜 대응을 해?”라며 제 식구들을 나무랐다.

호의가 투표로 이어지려면

‘국회의원 보궐선거지, 대선이 아니라고 지적한다’고 다시 물었다.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고 왔어요? 말 같은 걸 물어봐야지.” 얼핏 기자에게 화살을 쏴대는 것 같았지만, 진짜 과녁은 따로 있는 듯했다. 어쨌든 손 대표 쪽은 네거티브 전략은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괜히 대꾸해서 논란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란다.

선거는 정치인이 붕어빵 장수에게도, 편의점 ‘알바생’에게도 머리를 조아리는 유일한 때일지 모른다. 누구의 수그린 허리에 분당 주민들의 마음이 기울지는 알 수 없다. 50대 이상의 견고한 한나라당 지지가 ‘강재섭 지지’로 이어지려면, 30~40대가 현장에서 손 대표에게 보여준 호의를 투표장으로까지 가져가려면, 수그린 허리에 무엇이 더 보태져야 할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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