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의 진상 조사는 이제 더 이상 국방부의 관심사가 아니다. 유일한 과학적 논의였던 천안함 흡착물질 논란에 국방부가 백기를 들었다. “과학자들의 몫”이라는 말뿐 천안함과 어뢰의 흡착물질이 폭발물질이 아니라는 분석에 직접적 반박은 더 이상 없다. 그런데 천안함 1주기, 국방부가 백기를 든 과학적 논쟁에 갑작스럽게 가 나섰다(3월21일치 1·4·5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다만 그동안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한 인물들을 지면에 올려 ‘비전문가’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 과정에서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수(물리학), 양판석 박사(캐나다 매니토바대학 분석실장) 등 과학자들의 분석과 의견은 왜곡됐다. 국방부 발표에 과학적 의문을 제기한 쪽은 ‘좌파’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승헌 교수, 정정보도 소송 예정
지난 3월24일 천안함 1주기 토론회 참석차 국내에 머물고 있는 이승헌 교수를 만났다. “이승헌 교수가 천안함 잔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북한의 어뢰추진체에 남아 있는 물질과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의 보도에 대해 이 교수는 “인터뷰는 물론이고 내가 분석한 결과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왜곡됐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현재 변호사와 함께 정정보도 요청 등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 교수는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의 물질이 다르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질은 같다’는 전제 아래 이 물질이 폭발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다. 또 ‘(천안함 잔해에 남은) 흡착물질은 조작한 게 틀림없다’고 이 교수가 직접 말한 것처럼 보도된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 이유는 동일하다. 이 교수는 “천안함과 어뢰의 흡착물질이 어뢰 폭발의 결과가 아니라고 했을 뿐, 천안함 흡착물질을 조작했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국방부 합조단이 초기에 공개했던 흡착물질 분석 그래프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래프의 조작 가능성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래프의 경우 국방부가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임의로 편집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이 교수의 지적을 받아들여 최종 보고서에서 그래프를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이런 의 왜곡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일반인들이 더 솔깃해할 만한 것은 가 이 교수를 향해 “폭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실험했다”고 한 대목이다. 폭발 여부가 논쟁의 중심인 상황에서 폭약 실험이 없었다는 것은 이 교수 분석에 큰 흠결이 있는 것으로 비친다. 실제로 이 교수의 실험에는 HMX, RDX 등 폭발물질이 시료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교묘한 왜곡이다. 애초 흡착물질 논란의 핵심은 알루미늄이었다. 알루미늄을 앞세운 것은 국방부였다. 지난해 5월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의 조사 결과 발표에서, 폭발의 과학적 증거로 알루미늄이 폭발 뒤 변화한 물질이라는 ‘알루미늄 산화물’ 분석 데이터를 제시했다. 알루미늄은 폭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폭발물에 다량으로 들어가는 재료다. 지난해 5월 말 이 교수는 국방부가 주장하는 알루미늄 산화물 분석 그래프에서 정작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방부와 이 교수의 논쟁에서 폭약 실험 여부는 본질이 아니었다.
말바꾸기가 아니라 논의 진전
양판석 박사를 흠집내는 과정은 더 교묘하다. 양 박사는 “열린 토론을 바란다”며 과학자 모임 인터넷 사이트인 브릭(Bric) 등에 국방부 천안함 흡착물질 분석 결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공개하면서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양 박사는 기사에서 “말 바꾸는 사람”이 됐다. “흡착물질의 성격을 ‘깁사이트(광물질)→수산화알루미늄(부식)→비결정질바스알루미나이트’로 세 차례 주장을 바꿔왔다”고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이승헌 교수 사례처럼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논쟁의 본질에도 벗어나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양 박사는 지난해 6월25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흡착물질은 폭발 결과물인 알루미늄 산화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과학적 지식이 있다면 논의를 보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양 박사는 6월30일 로 보내온 분석 자료를 통해 깁사이트와 수산화알루미늄의 가능성을 동시에 언급했다. 양 박사는 “깁사이트(수산화알루미늄)는 알루미늄이 산소·수소와 결합해 형성되는 물질로 소화기 분말이나 화재를 막기 위한 방화벽 재료로 쓰이거나, 알루미늄이 부식할 때 생기기도 하고, 지질학계에서는 해저에서 풍화작용을 통해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광물, 부식물질, 인공화합물 등의 가능성을 모두 언급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꿨다기보다는 합조단의 반박과 동료 학자들의 조언을 통해 논의를 진전시켰다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 또한 그것이 어떤 물질이냐보다 폭발물질이 아닐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양 박사가 지난해 10월 흡착물질이 ‘바스알루미나이트’라는 결론을 내놓을 때는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을 피력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는 국방부가 흡착물질을 분석한 자료를 기초로 재분석한 것이었지만, 이때는 국방부가 이정희 의원(민주노동당)을 통해 공개한 흡착물질을 직접 실험해 분석했기 때문이다.
사설을 뒤엎는 표리부동에서는 이정희 의원이 입수한 천안함 흡착물질을 지난해 10월 초 국내 학자에게 맡겨 독자적인 실험에 착수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광물 분석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정기영 안동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다. 뒤이어 한국방송 에서도 정 교수에게 분석을 맡겼다. 정 교수는 10여 가지 실험(합조단은 4가지 실험)을 통해 이 물질이 ‘비결정성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 교수는 이를 ‘아시’라고 표현했다. 정 교수의 ‘아시’와 양 박사의 ‘바스알루미나이트’는 ‘비결정성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같은 물질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도에 정기영 교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양 박사와 정 교수의 분석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언급되지도 않았다. 나아가 두 연구자의 분석 결과에 대해 국방부가 ‘흡착물질은 더 이상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라고 자인했다는 사실도 소개되지 않았다.
기사에서 ‘비전문가’로 지목되기도 한 노종면 언론3단체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검증위 위원은 “언론 등 이른바 비전문가들이 상식에 근거한 의혹 제기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유의미하다”며 “상식에도 답하지 못하는 진상 조사 결과를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논쟁에 함께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최종 보고서를 내놓은 다음날인 지난해 9월14일치 사설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정부의 무신경과 여론 결정 요인에 대한 무지, 군의 무사려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두 번 열리고 활동을 마감한 천안함 조사특위를 재가동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이 최종 보고서에 대해 토론하고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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