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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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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전단을 날리나

대북전단·물품 살포 등 군의 대북 심리전 현황 공개돼
탈북자 단체도 “북한 자극해 국지전 위험성만 낳을 뿐” 비판
등록 2011-03-11 00:31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월16일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한나라당 의원 9명과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지를 풍선에 매달아 띄우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2월16일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한나라당 의원 9명과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지를 풍선에 매달아 띄우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북한은 지난 1월20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전통문을 보냈다.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는 제안이었다. 2010년 9월 남북 군사실무회담 이후 처음이었다. 남쪽은 받아들였다. 북한은 더 빨리 회담을 열자고 했으나, 예비회담은 2월8~9일 이뤄졌다. 결렬됐다. 회담 의제, 수석대표의 수준, 일정 등에 대한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북쪽의 진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11년 만의 생활물품 살포

이즈음 북의 대화 의지는 외견상 일관됐다.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남북 적십자회담을 제의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수용한다”고 알렸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2월14일 대한민국 국회의장에게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느 하나 진전된 게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극단으로 치달은 남북관계의 출구가 좀체 마련되지 않는다. 다만 남쪽에서 그 까닭을 “북의 진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꼬집기 옹색해졌다.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 현황’이 공개된 덕분이다.

올 2월부터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생활물품 1만 점가량을 20여 일 만에 살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월24일 송영선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다. 300만여 장의 전단지도 연평도 사건 이후 북을 향해 날려보내졌다. 형식적일지언정 북의 군·정·민이 남쪽에 만나자고 하던 2월, 남이 북쪽에 보낸 답신은 ‘세습정권, 독재정권, 장기집권은 망한다’다. 전단지는 이집트와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김정일·김정은과 비교했다. 송영선 의원은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 내용을 상세히 기재해, 북한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계획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당국의 물품 살포는 2000년 4월 이후 중단됐다. 11년 만의 재개다. 군은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6억2천만원 상당을 투입해 식료품, 의류, 라디오 등을 동부 및 중부전선 북쪽으로 뿌렸다고 한다. 북은 2월27일 “남쪽의 대북 심리전 행위가 계속된다면 임진각을 비롯한 심리모략 행위의 발원지를 조준 격파사격하겠다”는 통지문을 남쪽에 보냈다.

한발 다가오려는 북을 한 달 새 너댓 발 뒤로 떠민 셈이다. 문제는 실질적인 도발 가능성이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유영재 미군문제팀장은 “연평도 피격 때도, 북이 여러 차례 경고성 전통을 보냈는데 무시한 결과 당했다”며 “‘심리전 전개→북의 조준 사격→남의 공격 원점 초토화’ 과정을 통해 국지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군 또한 일찌감치 “후계체제 확립 과정에서 지난해부터 지속하고 있는 도발 패턴에 주목하고 있다”며 “2월 말~3월 초 한-미 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을 전후해 도발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에 말하곤 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의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무모한 것 같지만 나름의 논리성으로 도발하기에 북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북 전단과 방송을 안 하기로 (남북이) 협약했는데 ‘너희들이 하니까 우리는 (임진각 일대를) 쏘았다’라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임진각은 대북 풍선 행사를 성원하는 이들 말고도, 많은 이들의 관광 장소라 연평도와는 (피해 수준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남쪽의 대북 심리전을 ‘기승’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심리전은 본질적으로 전쟁 행위”라며 “군이 전단·물품을 뿌리는 것과 민간이 뿌리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유영재 팀장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위한 실무회담 와중에 전단지를 뿌렸다는 사실에서 (우리쪽) 대화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고, 되레 심리전으로 도발을 유도하는 일종의 음모가 아닌가 의심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위험성과 불신 때문에 2004년 남북 합의 아래, 대북 심리전(전단지·물품 포함)은 중단됐다. 보수우익이 희구하는 박정희 정권 역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 중지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최근의 북한으로선, 더더욱 대북 전단에 위약할 수밖에 없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중동 상황 등과 비교되면서,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남북 갈등의) 상승 효과를 여느 때보다 강하게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일부 탈북자 단체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이유다.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2003년 민간 최초로 대북 전단을 풍선에 실려보냈던 이다. 이 단장은 “외부 소식을 유일하게 접하는 게 풍선이라, 북한 당국이 2010년까지 5년간 35~36차례 공식 항의할 정도”라며 전단 사업의 위력과 필요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그는 “정부나 기독교계 단체 등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는 단체가 많고, 그런데도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결과 이런 경쟁이 조장된다”며 “당장 언론이 이를 지적하고 정부도 지나친 풍선 행사를 자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라도 북쪽의 공격으로 피해가 발생한다면, 나 자신도 (전단 풍선을 띄웠던 이로서) 도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눈과 귀가 막힌 동포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접근”에서 “외부 정보를 알리는 건 필요하되, 떠들어선 안 된다”는 게 그가 강조하는 원칙이다.

군은 결과적으로 대북 심리 전략을 공개한 꼴이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 심리전을 재개하겠다고 애당초 천명하기도 했다. 김용현 교수는 “식량 지원을 매개로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미국의 입장 등이 최근의 흐름인데, 한국 정부는 그와 다른 입장으로 비칠 수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한 시점에서 군이 직접 대북 전단 살포 등에 직접 나서는 건 문제가 크다”고 말한다. 생필품 또한 정상적 통로로 지원하며 호감을 유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란 분석도 더해진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3월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의 전단 살포 방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단 살포 대놓고 지지하는 여당

지난 2월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에 탈북자 단체는 임진각에서 대량의 대북 전단을 날려보냈다. 이 자리엔 신지호·차명진·조전혁·나성린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9명이 동참했다. 탈북자 단체들은 이 의원들을 몰아세웠다. “(한나라당이) 과거엔 대북 전단을 보내지 말라고 힘으로 막더니… 이제 북한 주민들한테 표 받을 일 있나”라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이민복 단장은 이런 말도 했다. “임진각은 상징성은 좋지만, 풍선 날리기에 매우 나쁜 위치입니다. 언론만 (행사를 비추면) 풍향이 남으로 향하든 관계없이 풍선 행사가 진행되는 겁니다.”

누굴 위한 대북 전단인지, 바람이 먼저 묻고 있는 셈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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