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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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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춘사월, ‘강원도의 힘’은 어디로?

MB의 구상과 반대로 판 커지는 재·보궐 선거…
문화방송 사장 출신으로 강원지사 출마 선언한 엄기영·최문순 두고 치열한 설전
등록 2011-03-11 00:03 수정 2020-05-03 04:26

오는 4월27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는 내년 총선·대선 전에 치러지는 마지막 선거다. 경기 성남 분당을과 전남 순천, 경남 김해을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강원지사와 울산 중구·동구청장 등을 새로 뽑는다. 선거를 두 달가량 앞둔 지금 각 당은 후보 공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가 없는 올해는 일해야 하는 해인데, 정치 문제로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며 신년사에서 정치 관련 내용을 대부분 뺐다지만, 4월 재보선 상황은 그의 구상과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선거가 치러지는 곳이나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모두 이 대통령의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탓이다.

4·27 강원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출마를 선언한 문화방송 사장 출신의 최문순 전 민주당 의원(왼쪽)과 한나라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 한겨레 김정효·연합

4·27 강원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출마를 선언한 문화방송 사장 출신의 최문순 전 민주당 의원(왼쪽)과 한나라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 한겨레 김정효·연합

엄기영, 자신을 쫓아낸 세력에 귀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치러지게 된 강원지사 선거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대법원의 판결이 “보복 기획수사에 따른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하면서 ‘정권심판론’과 ‘이광재 동정론’을 확산시키는 모양새다. 최문순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25일 강원지사 선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재보선이 “지난 3년간 이명박 정부의 독주·독선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자 “앞으로 남은 2년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 나라가, 강원도가 앞장서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줄 것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이광재 (전 강원) 지사를 되찾아오겠다”고 했다.

닷새 뒤인 3월2일엔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강원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엄 전 사장의 출마선언문은 이랬다. “강원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자원을 모아야 합니다. 정부·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이번 선거가 중앙정치의 싸움터가 되거나, 강원도가 여야 정쟁의 볼모가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합니다.”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에 ‘힘있는 일꾼론’으로 맞선 셈이다.

이런 구도는 선거 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달 중순 ‘당내 경선’이라는 산을 먼저 넘어야 한다. 그런데도 두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건 모두 문화방송 사장 출신인 이들이 ‘적’으로 만났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엄 전 사장의 행보를 놓고는 비판이 잇따른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MBC도 못 지키면서 과연 강원도를 지킬 수 있을까요?”라고 썼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MBC 사장 시절 공영방송 독립성을 지키려 했던 그를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언론악법을 밀어붙이던 인사들이 그대로 있는 한나라당으로 출마한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엄 전 사장의 영입에 직접 발 벗고 나섰던 이광재 전 지사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사람을 잘못 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했다고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전했다.

이와 관련해 엄 전 사장은 “MBC 사장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에 관해 이견이 있었다. 언론 자유는 소중한 가치인데 이것이 좌절돼 스스로 사퇴했다”고 말했다. 시비를 피해가려는 발언인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언론 자유를 짓밟은 정부·여당에 ‘귀순’했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 됐다.

노 전 대통령 묘역 있는 경남 김해을에선…

흥미로운 점은,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를 우파 진영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갑제 전 대표는 3월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엄 전 사장을 “2008년 봄 광우병 선동 책임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적 1호를 공직에 앉히려는 한나라당은 조폭과 창녀의 윤리도 없다. 미친 것은 미국 소가 아니라 한나라당인 듯하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여론조사에선 인지도가 높은 엄 전 사장이 최 전 의원을 조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2월26~27일 강원도민 1132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두 사람만 가상 대결을 벌일 경우 엄 전 사장은 42.2%의 지지율로 최 전 의원(35.3%)을 오차범위(±3.1%)보다 조금 앞질렀다. 이런 결과는 두 사람이 실제 선거에서 맞붙을 경우 결코 엄 전 사장이 유리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론조사의 특성상 ‘숨은 야당표’가 많고, 두 달 가까운 선거 기간에 20%가 넘는 부동층이 어디로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원지사 선거 사흘 전 방송 3사의 합동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계진 전 의원은 42.7%를 얻어 39.7%를 얻은 이광재 전 지사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전 지사가 54.4%를 득표해 8.8%포인트 차이로 이 전 의원을 이긴 것이다.

경남 김해을 지역도 한나라당이 조바심을 낼 만한 상황이다. 이곳의 선거 역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최철국 전 민주당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바람에 치러진다. 박 전 회장 사건으로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과 사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세운 국민참여당은 이봉수 후보를 일찌감치 확정하고 야당의 선거 연합을 요구한다. 한나라당은 예비후보가 6명이나 되지만, ‘노무현’과 야권 단일화에 밀리지 않을 ‘거물’을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 공천설이 나도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김 전 지사가 측근을 통해 (공천 신청과 관련한) 여러 절차를 구체적으로 문의했다. 3월5일 중국에서 귀국한다는 공식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정치적 재기 기회를 찾고 있는 김 전 지사의 김해을 출마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부정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박연차 게이트’ 때문에 치러지는 김해을 재선거에, 이 사건에 연루돼 총리 후보자에서 낙마한 김태호 전 지사가 후보로 나서는 게 말이 되느냐”고 거듭 주장한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김태호-이봉수’ 2인 가상 대결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봉수 후보가 7%가량 앞서는 걸로 나왔다”며 “김 전 지사는 나가도 진다. 질 거라면 논란이 없는 후보를 내든지, 차라리 김해을에 후보를 안 내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남 순천, 야권 연합 디딤돌 되나

‘경기도의 강남’으로 인식되는 경기 성남 분당을의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이 모두 이 대통령과 관련이 깊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총리 임명 때부터 야당에서 ‘변절’이라는 공격을 받았고, 세종시 논란에서 이 대통령의 ‘총알받이’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민주당 일각에선 손학규 대표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손 대표는 이 대통령의 ‘시베리아 발언’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한나라당을 탈당한 바 있다. 그 밖에도 한나라당에선 강재섭 전 대표, 비례대표인 조윤선·정옥임 의원 등의 출마도 거론된다.

한편 민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전남 순천은 야권의 선거 연합 전략과 맞물려 있다. 김선동 전 사무총장을 후보로 결정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안에서도 무공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역 당원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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