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4일 는 ‘페이퍼 정당이 최선의 野(야) 연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틀 전 ‘선거 연합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제안한 ‘가설정당’(임시정당)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노 전 대표는 토론회에서 “내년 총선에서 야당 간 (연합) 협상 전망은 비관적이고, 야권 단일정당도 회의적이다. 야권의 선거 연대 기구를 일시적으로 정당으로 등록하자. 일부에서 ‘가설정당’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는 ‘정치 전문가’의 입을 빌려 “정당정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발상”이며 “정치적 혼란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합당 안 해도 가설정당 통해 공동 경선 가능
지난해부터 진보개혁 진영에선 내년 총선과 대선을 대비해 다양한 연합·통합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관련 보도에 소극적이던 가 노 전 대표의 제안을 정색하고 비판한 것은, 역설적으로 진보개혁 진영 논의의 실현 가능성이 우파에 불안감을 줄 만큼 커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만큼 진보개혁 진영의 논의가 점점 확산되면서 ‘대세’가 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크게 보아 진보개혁 정당, 즉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국민참여당이 모두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의 진보 정당만 진보통합정당을 만들고 민주당·국민참여당과는 후보 단일화와 정책 연대를 통한 선거 연대를 할 것이냐 두 가지 길을 둘러싼 논의뿐만 아니라 각각의 길에 적합한 방법론도 다양하게 제기된다. 노 전 대표의 가설정당 제안은 진보통합정당 건설 뒤 민주당 등과 선거 연합을 이루는 방법론의 하나다.
노 전 대표의 제안에서 기본 전제는 국민참여경선을 통한 총선·대선 후보 선출이다. 그런데 각기 다른 정당이 함께 국민참여경선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래서 야당들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까지 일시적으로 하나의 당을 만들고, 거기서 경선을 치러 단일후보를 뽑자는 것이다. 문제는 정당법상 이중 당적이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한 정당의 국민참여경선이라 하더라도 당원이 아닌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치러진 국민참여경선에서 비당원은 한시적으로 당에 가입했다가 경선이 끝난 뒤 탈당하는 ‘1일 당원’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노 전 대표는 경선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경선 홈페이지에 접속해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기존 정당 탈당) → 가설정당 입당 → 투표 → 가설정당 탈당 (→ 기존 정당 복당)’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후보는 기존 정당 당적을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선출된 후보들은 가설정당 후보로 모두 같은 선거 기호를 받아 선거를 치른다. 지금까지 ‘야권 단일후보’라고 해도 소속 정당에 따라 기호가 달라 유권자에게 혼란을 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야당의 선거 연합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만큼 선거운동의 시너지 효과도 커진다는 논리다. 민주당이 그간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소수당 후보는 인지도가 낮아 안 된다’고 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다만 노 전 대표의 구상대로라면 진보 정당 통합은 가설정당 설립에 앞서 완료돼야 한다. 설사 가설정당이 제안에만 그치더라도, 이와 별개로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는 통합 논의는 그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게 노 전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진보 정당 통합 논의는 그대로 가되, 선거에선 (민주당·국민참여당과) 확실히 연대해야 한다. 대연합은 ‘진보통합정당 대 민주당’ ‘진보통합정당 대 국민참여당’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정치의 시동을 걸겠다는 것”
이런 가설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은 노 전 대표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현재 ‘복지국가를 위한 야권 단일정당’을 주장하는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2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들려면 야권 가설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말 제안한 가설정당도 노 전 대표의 구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진보 정당끼리, 그리고 민주당·국민참여당이 먼저 ‘소통합’을 이룬 뒤 가설정당에서 경선을 치르자는 것이다. “먼저 노선상 가까운 정당끼리 혁신하고 소통합을 이루지 않으면 민주당의 기득권 구조나 기존 정당들끼리 가진 갈등 요인이 가설정당에서 그대로 재연될 수 있”기 때문에 “가설정당은 기술적인 문제이자 최후의 수단”이다. 다만 탈당·입당·복당 등 절차가 다소 복잡한 노 전 대표의 방안과 달리, ‘창당준비위원회’ 수준에서 경선을 치르자는 게 조 교수의 복안이다. 법적으로 창당준비위원회는 이중 당적 금지 규정을 피해가면서 경선이 가능하다. 진보신당에서도 이 안에 동의하는 이가 적지 않다.
노 전 대표에 앞서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는 지난 1월28일 진보개혁 정당이 ‘진보적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며 진보 정당과 민주당 등의 연정을 제안한 바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심 전 대표의 제안은 연립정부라는 공동의 목표가 전제돼야 야권 연대·연합 논의가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 전 대표의 가설정당 제안은 연정론에 살을 붙이고 정교하게 다듬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노 전 대표는 “가설정당에 참여한 당은 선거가 끝난 뒤 각자의 당으로 돌아가더라도, 19대 국회의원으로서 꼭 지켜야 할 공약 몇 가지를 통해 정책 연합을 이룰 수 있다. 단일후보로 선출돼 당선된 차기 대통령도 마찬가지 공약을 하고, 참여한 당들이 공동으로 연대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국 교수는 “진보 정당에서 가설정당을 얘기한 건 연합정치의 시동을 걸겠다는 것”이라며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지는 점은 찬성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구도로 2012년 총선·대선을 치르면 모든 야권 정당이 망한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통합·연대를 해야 하는데 어떤 게 옳은지, 내년 선거를 진보개혁 진영이 어떻게 맞이할지 논의가 세밀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유증 우려·단일정당론 등 반대 목소리도
물론 모두가 노 전 대표의 제안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지난 3월4일 SBS 라디오 에서 “선거를 치르기 위해 합당할 때까지는 이거라도 해보자고 해서 기분이 좋을지 모르는데, 그 후 또 분당 절차를 밟는다면 그땐 어떤 더 큰 악효과를 이끌어낼지 아직 검토가 안 됐다”며 “책임 있게 정당이 임하려면 선거에서 무리하게 가설정당을 세우는 것보다 서로가 합의할 수 있고 함께 갈 수 있는 장기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라고 부정적 의견을 드러냈다.
단일정당론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연합보다 통합의 길이 더 강력하고 창조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며 “연합적 형태의 민주진보대통합당이 가능하다는 것을 야권과 시민단체가 검토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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