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일까, 아니면 이미 뇌관이 제거된 폭탄일까?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갑작스런 귀국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배경을 직접 밝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이명박 대통령 차명 소유 의혹이 일었던 서울 도곡동 땅의 진실을 아는 사람도 한 전 청장일 수 있다.
숱한 의혹 속에서 2009년 3월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했던 한 전 청장이 2월24일 돌아왔다. 그가 입을 제대로 열기만 하면 잊혀졌던 ‘한상률 게이트’가 다시 폭발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귀국 전 청와대 및 여권과 어느 정도 입을 맞췄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2월28일부터 그를 불러 지난 2년간 덮어두었던 사건 파일을 다시 연다. 일단 그의 신분은 피고발인이다. 민주당이 “특정 기업(태광실업)을 의도적으로 세무조사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며 그를 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서다. 실제로 그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직접 지시한 장본인이다.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정상적인 것이었다면, 국세청장 하명 사건을 취급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아니라 원래 관할인 부산지방국세청이 맡아야 했다.
그림 로비 의혹도 조사 대상이다. 한 전 청장이 2007년 초 인사 청탁을 위해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최욱경 화백의 그림 을 상납했다는 내용이다. 의 가격은 3천만~5천만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울러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그림을 건넨 대상이 1명이 아니라 5명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핵심 실세 가운데 몇 명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연임 로비 의혹도 있다. 한 전 청장은 참여정부 때 국세청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국세청은 국정원·검찰·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힌다. 그만큼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한 전 청장으로서는 자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연임 직전인 2008년 초 그가 찾은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었고, 이 과정에서 ‘형님 라인’ 실세에게 10억원을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 의혹의 내용이다.
실제로 구속 중인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의 최측근은 2009년 11월26일 인터뷰에서 한 전 청장이 안 전 국장에게 3억원을 요구한 당시 상황을 소상히 전했다. “2008년 초 안 국장으로부터 ‘한상률이 3개(3억원)를 요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울러 한 전 청장이 ‘(정권) 실세를 알고 있는데 거기에 주려고 한다. 당신이 3개만 하면, 내가 7개(7억원)를 하겠다. 될 수 있으면 현금으로 하라’고 안 전 국장에게 말했다.”(788호 표지이야기 ‘한상률 3억 요구·태광 조사 지시 직접 전해들어’ 참조)
도곡동 땅의 진실 알지도안 전 국장과 민주당의 주장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도곡동 땅의 진실도 알고 있을 수 있다. 2007년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과정에서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문서를 발견했다는 것이 안 전 국장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 문서가 전표 형태인지, 아니면 간단한 메모 형식인지는 불투명하다. 한 전 청장과 관련한 각종 의혹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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