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들어갔네.” 초긴장 상태의 남북 대치 국면이 잠잠해진 것을 두고, 12월23일치 신문을 넘기던 동료가 말했다. 북한이 지난 11월23일 연평도를 포격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연평도 공격→11월28일 서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12월20일 서해 사격훈련’으로 이어졌던 긴장도 가라앉았다. 국방부는 연평도 포격 이후 전방 지역에 발령한 최고 수준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진돗개 둘’로 낮췄다. 맞대응을 위협하던 북한은 12월24일 현재 ‘말대포’에 그쳤다. 이제 위기 국면은 어디로 흘러갈까?
한 손엔 대화, 다른 손엔 대결 카드
북한은 대화와 긴장의 ‘양수겸장’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은 공격 대신 ‘유인구’를 먼저 던졌다. 12월16일 방북한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 미사용 핵연료봉 해외 반출을 위한 협상을 원한다고 전했다.
북한이 재차 공격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미국외교협회(CFR) 한반도 전문가 피터 벡 연구원은 12월23일 〈AFP통신〉 인터뷰에서 “추가 도발이 있을 것이냐가 아니라 언제냐가 문제”라고 밝혔다.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도 12월22일 에 실은 기고에서 “북한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완화하는 대가로 양보를 끌어낸다”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와 장소에서 다시 공격할 게 확실하다고 예상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북한은 대결 국면이 끝난 뒤 대화 카드를 꺼내는 게 아니라 양손에 두 개의 카드를 모두 들고 동시에 흔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화 국면은 남북 대화보다는 북-미 대화일 가능성이 더 주목된다. 북한은 12월 초 방북한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미국과 대화할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리처드슨 주지사 초청 및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복귀 제안 등은 북-미 대화를 원하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총련 기관지 는 12월23일 “미국 오바마 정권이 ‘2차, 3차의 대응 타격’을 피하려면 대화 재개의 외교적 타협점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미국은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내놓은 보따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12월23일 “6자회담은 가치가 있고 그 틀 안에서 의미 있는 양자 대화를 할 수 있다”면서도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북한과 추가 대화를 검토하기 전에 북한이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개발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이 공개된 상황에서, 핵시설 가동이 중단되지 않은 채 미사용 연료봉의 해외 반출을 제안한 것은 큰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핵사찰단 복귀 허용도 영변 이외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 등에 대한 사찰까지 허용돼야 의미가 있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1월19일로 예정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국면 전환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뒤 중재자로 나서면서도 북한의 강력한 후견국 모습을 보여왔고,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대화 파트너다. 백악관은 12월22일 성명에서 “두 나라 공동의 이익을 전진시키고 공통 관심사를 다뤄 파트너십을 계속 쌓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1월9~12일 중국을 방문해 한반도 긴장 완화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는 “미-중 정상회담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두 나라 정상회담을 전후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 당사자가 대치 국면을 풀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적 정세에서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 남북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며 “그 계기를 놓치면 다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한반도에 긴장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연들의 공연” 평가도2008년 12월 회담 뒤 중단된 6자회담이 일단 재개되면, 북-미 관계의 최대 현안인 핵 문제를 놓고 북-미 직접 대화의 길이 트이고 남북관계의 긴장 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연평도 문제 등에서 불거진 정전협정 체제의 불안전성을 제기하면서, 이를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김영수 교수는 미-중 정상회담은 “주인공이 빠진 주연급 조연들의 공연”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만나면 두 나라 사이에 풀어야 할 다른 문제가 많아 북한 의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당사자 없이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없고 양쪽의 의견 차도 크다”며 “6자회담을 촉구하는 립서비스 차원의 합의는 가능할지 몰라도 더 이상의 합의는 힘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주연들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위기 뒤 대화’ 전통 깨는 MB 정부남북은 1983년 버마 랑군 폭탄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등의 위기 속에도 전쟁 없이 고비를 넘겨왔다. 1999년 6월 남북 함정이 충돌한 연평해전 1년 뒤 분단 이후 첫 6·15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북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위기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으로 해소했다. 1994년 미국이 대북 공격을 검토했던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특사로 방북해 김일성 전 주석과 협상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모두 대화의 의지가 있었기에 파국을 막았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화의 의지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먼저 도발을 감행한 북한도 벼랑 끝 전술을 포기할 기미가 없다. 이 대통령은 12월23일 동부전선 최전방 육군 제21사단을 방문해 “철통같이 국토를 지키면서 기습공격을 받을 때는 가차 없이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는 하지 못하도록 대반격을 가해야 한다”며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 북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4년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단하기로 남북이 합의한 지 7년 만에, 경기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에 성탄트리 점등을 허용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애기봉 바로 밑에 위치한 민통선 평화교회의 이적 담임목사는 12월23일치 기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심으러 오셨던 분이다. …애기봉 트리는 절대 평화의 트리가 될 수 없다. …평화를 얘기하면서 민통선의 평화를 깨뜨리는 저 불빛은 지금 당장 꺼져야 한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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