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와 관련한 기획 연재 ‘바꿔! 지방자치’를 통해 은 ‘참여’를 이야기했다. 투표장에 가는 것만 참여가 아니다. 후보자는 어떤 사람인지, 무슨 공약을 내걸었는지 꼼꼼히 따지고, 당선된 뒤엔 의정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도 투표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12월15일 서울 동작구의회를 찾아갔다. 올해로 4년째 의정감시단 활동을 벌이는 동작구 풀뿌리 단체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이하 희망동네)와 함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회의를 모니터링했다. 의정감시단은 상근 활동가가 아니라 희망동네 회원 등 동작구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다. _편집자
우리나라 지방의회 회의장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바꿔! 지방자치’ 기획 연재 때문에 올 초 일본 지바시의회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건 방청석에 앉아 있는 시민 40여 명이었다. 정당에서 당원 교육을 받기 위해 온 이들도 있었고, 자신이 사는 동네와 관련된 정책이 궁금해 이웃끼리 삼삼오오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주민들이 열성을 보이면, 지방자치의 수준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회 방청, 신분증만 있으면 OK
의회 방청을 신청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의회사무국에 가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청권을 받았다. 방청권엔 “회의장에서 다과, 음료 등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회의장 발언에 대해 가부를 표시하거나 박수를 치지 못한다. 소리를 내는 등 의사 진행을 방해해선 안 된다” 등 간단한 ‘준수사항’이 적혀 있었다. 의사 일정은 각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예결위 회의장 한쪽에 방청석이 마련돼 있었다. 예상대로, 의정감시단인 최경희(45)·김학규(44)·맹명숙(39)씨와 나 말고는 방청객이 없었다. 의자 몇 개에 ‘의정감시단’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의정감시단은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자체적으로 마련한 ‘의정활동 모니터링 평가지표’에 따라 의원들의 회의 참여도와 태도, 전문성, 질의 수준 등을 따져 점수를 매긴다. 점수가 좋은 의원들에겐 상도 주고, 누적된 평가 결과는 다음 지방선거 공천 때 각 정당에 전달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한 전직 구의원은 이 점수가 너무 나빠 공천을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이렇게 의정감시단 활동이 지속되면서 구의회 사무국에서도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라고 최경희씨가 귀띔해줬다. 하지만 자료 공개와 관련해선 전혀 달랐다. 의정감시단은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결위에 삭감 대상으로 올린 예산안 자료를 요청했다. 어차피 상임위 속기록에 남는 자료지만, 구의회 홈페이지에 올릴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예결위를 모니터링하기 전에 진짜 삭감해야 할 사업인지 아닌지 미리 알아둬야 구의원들 주장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으니 필요한 자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국은 자료를 주지 않았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태도였다.
동작구청장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의원 수는 민주당 9명, 한나라당 8명으로 여야가 팽팽하다. 예결위원은 여야 5명씩 10명이다. 김우중 전 구청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는데,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 소속 문충실 구청장이 당선된 탓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박탈감’이 큰 것 같았다. 이날 오전 회의에선 의원들 자리 배치를 놓고 “왜 정당별로 배치하지 않았느냐”고 한나라당 쪽에서 따질 정도였다.
오후 2시37분, 제6대 동작구의회 예결위의 첫 예산안 심사가 시작됐다. 감사담당관실 예산안이 대상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김명기 한나라당 구의원이 업무추진비 1200만원 전액 삭감을 요구했다. 업무추진비는 종종 과다 책정돼 예산 낭비 논란을 일으키는 단골 항목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올해보다 인상된 금액의 삭감이 아니라 책정된 예산 전체를 깎으라니? 민주당 소속 손화정·김영미 구의원이 이유를 물었다. 김명기 의원은 “감사담당관실에서 과거 집행부(한나라당 구청장 때 간부들)를 미운털 뽑기식으로 감사한다는 민원이 본 의원에게 많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같은 당 최정아 구의원이 “감사가 (6·2 지방선거 이후) 하반기에 집중돼 김명기 의원의 지적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거들었다.
김 의원 말대로 표적감사가 있었다면 감사담당관실이 구청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보복’을 벌인 심각한 문제다. 손화정 의원이 “팩트를 대라”고 요구했다. 김영미 의원은 “업무추진비를 전액 삭감하면 감사담당관실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거냐. 대안을 내라”고 말했다. 강한옥 민주당 구의원은 “감사담당관실이 감사를 안 하면 (구청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상임위에서 이미 충분히 검토한 건데,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업무추진비 갖고 이러는 건 김명기 의원의 감정 섞인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감사담당관실 과장은 “감사는 공정하게 하고 있으며, 내년엔 일이 더 많기 때문에 업무추진비를 깎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예결위 심사 중 DMB 보는 의원
그 사이 문제를 제기한 김명기 의원은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두 차례 받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 따위 회의가 어딨어? 의원이 의원한테 자료 내라고 하는 경우가 어딨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성이 한번 터지자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방청권에 적힌 ‘정숙·단정’ 문구가 민망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아무 근거 없이 전액 삭감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쟁점 사안은 나중에 (계수조정위원회에서) 처리하자”고 맞받았다. 민주당 소속인 유태철 예결위원장이 정회를 제안했다. 김명기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회는 무슨 정회야? 이런 회의 동참할 수 없어!”라며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유태철 예결위원장이 급히 “간담회에서 의견을 조율하자”며 정회를 선포했다. 회의를 시작한 지 40분 만인 오후 3시17분이었다.
30분 뒤 유태철 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장으로 돌아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어딘가로 사라져 간담회는 열리지 않았다. 유 위원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안 들어오면 자동 유회하겠다”고 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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