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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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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실망



오바마의 개혁에 대한 불만과 보수파의 조직적 마타도어가 합작한 중간선거 패배…

미국 유권자의 선택은 ‘좋은 미국’을 만들까
등록 2010-11-12 16:38 수정 2020-05-03 04:26

약 2주 전,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미국의 선거와 의회정치 최고 전문가로 언론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토머스 만 선임연구원과 오찬을 했다. 그는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민주당이 우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하원에서 의석을 좀 내주겠지만, 민주당의 다수당 지위가 뒤바뀔 정도로 이변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공화당이 하원에서 39석을 새로 더 얻기는 어려우며, 설사 하원이 공화당에 넘어간다고 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재선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여론이 크게 동요했다. 지난 11월2일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에서 이미 윤곽이 잡혔다. 공화당의 대승, 민주당의 참패였다.
재선과 개혁은 물 건너가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월3일 중간선거 참패 뒤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REUTERS/ KEVIN LAMARQUE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월3일 중간선거 참패 뒤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REUTERS/ KEVIN LAMARQUE

11월3일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센터 소장인 리처드 부시 박사와 저녁 식사를 했다. 중간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그는 “실망이 크다”고 답했다. 더 물어보기 미안했다. 그래도 부시 박사는 몇 가지 간단한 언급은 망설이지 않았다. “중간선거가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 한-미 동맹과 대북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공화당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내년 초 하원을 통과하면 상원에서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다.” “국내 정치는 미국 영토에 국한되며, 대외정책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중간선거에서 외교·안보는 중요 이슈가 아니었다. ‘2012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 것으로 보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시 박사는 “그간 공화당의 행태로 봐서 하원을 장악해 모든 문제에서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에 ‘식물의회’ 상태에 빠지겠지만, 오바마 자신은 정치적 도전을 지혜롭게 극복해 재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참혹한 중간선거 결과를 볼 때 오바마의 재선은 누구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선거운동 막판까지 민주당의 상원 지배는 견고해 보였고,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새로 얻어야 할 39석은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민주당에 가까운 정치분석가들은 역대 최대 참패라는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의 중간선거에서 하원 54석을 잃은 정도의 패배는 없을 거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압도적 우위를 지키던 하원이 공화당에 넘어갔다. 65석을 잃은 것이다. 1946년 이후 가장 큰 의석 변동이다. 상원도 민주당 53석, 공화당 46석으로 겨우 과반수를 지켜냈으며, 주지사는 공화당이 29곳, 민주당은 16곳을 확보했다. 하원의 득표율만 비교한다면 공화당이 약52%, 민주당이 약 45%로 졌다. 격차는 6.7%포인트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상대로 기록했던 52.9% 대 45.7%의 격차에 거의 육박하는 수치다. 그만큼 오바마의 재선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마오주의자·무슬림 보호자라는 인신공격

민주당에 가까운 브루킹스연구소의 전문가들은 갑자기 바빠졌다. 이번 선거가 가져올 여파에 대해 다양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경제가 지극히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사사건건 대립할 때 오바마가 중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의회 내 합리적 역할은 기대할 수 없으며, 임기 내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고착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일 크다. 대다수 언론과 방송은 여야 협력을 강조하지만, 누구나 현실에서 이것이 이뤄질 수 없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구체적으로 오바마가 지난 1년 내내 심혈을 기울인 의료보험 개혁 관련법의 주요 내용이 수정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또한 월가 투자은행들의 모럴 해저드를 규제할 금융 관련 법안은 상정되기 어려울 거라고 전망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각종 개혁 입법도 공화당의 반대로 좌절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새로운 일을 거의 할 수 없다면 오바마는 재선을 위해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가? 브루킹스연구소의 윌리엄 갤스턴 박사는 “타협과 대결을 적절히 구사하는 운영의 묘를 보여주지 않고 사사건건 하원과 대립할 경우, 의회의 비생산성에 대한 비난은 오바마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토머스 만 선임연구원은 “오바마의 재선은 과연 얼마나 경제회복을 이룰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2010 미국 중간선거 결과

2010 미국 중간선거 결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뿌리는 오바마가 너무 깊이, 그리고 너무 일찍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위기에 발을 들여놓은 데 있다. 오바마는 부시 집권 말기 금융위기의 공포 속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바로 그때부터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살포하는 데 동의해야 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같은 거대 자동차회사의 문제를 달러를 찍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집권과 동시에 공화당 정권의 원죄를 그대로 떠안으면서도 부시 정권과 공화당의 과오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처지에 빠진 것이다. 금융과 우주항공을 제외하면 제대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경기 진작 정책은 역시 돈을 풀어 히스패닉계 저소득층을 공공사업 현장으로 불러들여 실업급여 수령자 수를 줄이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면서 민주당 내 반대 의견을 가진 하원 의원 서너 명을 설득하는 게 공화당 전체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 힘들 만큼 민주당의 결속력은 흐트러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저항과 공격은 도를 넘어 인신공격 수준에 달했다. 오바마는 ‘사회주의자’ ‘마오.주의자’ ‘무슬림 보호자’와 같은 이념·종교적 색깔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보수유권자운동인 티파티(Tea Party)와 로 대변되는 이런 인신공격성 비난은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대선 기간에 격찬을 받은 오바마의 명연설도 이제는 굵직한 메시지 중심의 소통보다는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하듯 한다고 할 정도로 비난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단결해 무당파층을 흡수하는데, 민주당 지지자들의 충성도와 동원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경기침체로 오바마에게 희망을 걸었던 젊은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반면, 2008년 11월 대선 때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찍기에 주저하던 백인 장년층 유권자가 기표소에 몰려들었다. 2008년 대선과 2010년 중간선거 모두 투표율은 비슷하게 높았지만 그 구성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대통령 지지도보다 중요한 정부 신뢰도
표1. 역대 정부 신뢰도 / 표2. 연방정부에 대한 분노와 위협 인식

표1. 역대 정부 신뢰도 / 표2. 연방정부에 대한 분노와 위협 인식

이런 현상을 오바마와 민주당이 막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앞서 설명한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도를 넘은 공격 못지않게, 오바마 개인의 지지율에 현혹돼 국민이 이미 오바마 정부에서 멀어졌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지 못한 민주당 지도부의 오판 탓이 크다. 이번 중간선거 직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지지도는 48%를 유지했다. 1994년 42~44%를 기록하던 클린턴보다 높다. 그래서 지더라도 1994년보다는 덜 질 것으로 믿었다. 이미 충분히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그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1월3일, 도저히 질 수 없다는 민주당의 텃밭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의 크리스 크리스티가 민주당 현역 존 코진을 이겼다. 1969년 이래 이 지역에서 처음 일궈낸 공화당의 승리였다. 지난 1월, 미국 민주당의 자존심이자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매사추세츠 보궐선거에서도 공화당의 신예 스콧 브라운이 민주당의 마사 코클리를 눌렀다. 1962년부터 에드워드 케네디가 평생 지켜온 민주당의 ‘텃밭 가운데 텃밭’에서 패배한 것이다.

미국 정치, 특히 유권자의 정치적 속내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주는 지표는 대통령 지지도보다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다. 은 지난 3월 퓨리서치센터가 과거 수십 년 동 안 각 행정부별 국민의 정부 신뢰도를 종합한 수치다. 대통령 지지도는 이미 유권자가 대선 기간 중 지지 입장을 표시한 관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변동폭에 제한이 있다. 그러나 해당 시기의 정부 신뢰도는 자신이 투표한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와 일정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훨씬 진폭이 크다.

을 보면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전임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신뢰도 평균보다 낮다. 여기 제시된 22%는 부시 행정부 임기 마지막에 가장 낮았을 때의 수준과 거의 동일하다. 그만큼 오바마는 부시의 부정적 유산을 그대로 떠안고 출발한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부시 정권의 실패에 짓눌려 주도적인 의제 설정을 하지 못한 채, 공화당 지지자에게는 지탄을, 민주당 지지자에게는 배척을 당한 것이다.

그 지표는 연방정부에 대한 분노와 위협 인식 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참조). 부시 행정부가 저지른 여러 오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2008년 여름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로 촉발된 금융위기다. 갑작스러운 실직과 경제적 고통으로 연방정부에 대한 분노가 누적됐고, 연방정부는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 사이가 시간적으로 워낙 짧기 때문에 정작 그 위기를 초래한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분노가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에 그대로 전이돼 강화됐다. 그리고 정부의 경제정책 관여와 의료보험 개혁 시도에 매우 적대적인 티파티의 끈질기고 조직적인 저항과 시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민주당과 오바마 행정부는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뻔히 눈 뜬 상태에서 거의 매일 보수층과 티파티 운동에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다 중간선거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버린 것이다.

정치와 국익은 별개인가

앞으로도 공화당과 보수 세력은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에 집요할 정도로 당파적이고 데마고기에 가까운 비난과 정치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연방정부에 대한 혐오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부시 정권의 과오를 뒤치다꺼리하다가 오히려 그 책임까지 뒤집어쓰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전도된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장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는 종종 국익이나 국가의 장래와 별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워싱턴(미국)=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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