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은 지난 9월5일 임시당대회에서 ‘반신자유주의 정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당 발전전략안을 통과시켰다. 이 안은 6월 지방선거 이후 진보신당이 나아갈 길을 두고 두 달 동안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원안엔 ‘새 진보 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기구 구성’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당원들은 새 정당 건설을 추진할 실무기구 구성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올해까지 새로운 당을 만들 종합실천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2011년 정기 당대회에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통합 진보 정당 추진기구 구성안 유보이날 당대회 결과는 지금 진보신당이 처한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민주노동당·사회당·시민사회 등을 포괄하는 ‘반신자유주의 정치 연합’에는 당내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두고는 “2012년 총선 전까지 통합 진보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통합파와 “통합정당은 두고 봐야 할 문제고, 당 자체 역량 강화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보는 독자파가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새 정당 건설을 추진할 실무기구 구성이 당 발전전략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기류가 반영된 결과다.
‘진보신당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혼란스러운 과제는 10월15일 새로 선출된 조승수 대표의 어깨에 고스란히 떨어졌다. 조 대표는 당 대표 출마선언문이나 선거 유세, 언론 인터뷰에서 ‘반신자유주의 정치 연합’을 강조하면서도 그 형태가 “선거 연합·정책 연합이 될지, 정당 통합이 될지는 이후 여러 진보 세력과의 논의 과정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2012년 총선·대선은 ‘진보-자유-보수’의 3자 구도로 치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형태가 통합 진보 정당이라고 못박지는 않았다.
이유가 뭘까? 핵심은 진보대연합의 가장 큰 파트너인 민주노동당이다. 조 대표는 2008년 2월1일 “현재의 틀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진보신당 창당을 주도한 당사자다. 그가 민주노동당의 혁신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였다. 그렇다면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상황 변화가 있었을까? 진보신당 독자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지붕을 이더라도 갈등과 분쟁의 싹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를 제거하지 않는 한 정당 통합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조 대표를 비롯해 새로 선출된 부대표 다수는 이런 독자파로 분류된다. 대표단 선거 과정에서 김은주 부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정치노선과 조직문화가 실질적으로 변화했다는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거나 “앞으로는 가짜 진보와 맞짱 떠야 할 시기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철학과 가치가 다른 정당”이라는 주장을 폈다. 김정진 부대표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모두 종북주의·패권주의 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지 않으면 통합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비해 통합파는 설혹 민주노동당이 변하지 않았더라도 진보정치 세력의 ‘생존’을 위해선 2012년 대선 전에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1~2%대 당 지지율에 그치는 진보신당의 홀로서기로는 대선에서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용진 부대표가 대표적인 통합파로 분류된다. 그는 “‘사회연대 복지국가’ 건설에 동참하려는 정치 세력과 개인에겐 과거를 묻는 대신 대한민국을 앞으로 어떤 나라로 만들려 하는지 물어야 한다”며 “진보대통합정당으로 2012년 총선에서 20석 이상을 확보하고, 대선에서 통합정당 후보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회찬 전 대표도 10월13일 퇴임 인사차 민주노동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정희 대표에게 “새로운 진보 정당으로 나아가는 데 양당의 새 지도부가 손을 잡아야 한다”며 “(통합정당 논의의) 불이 잘 붙도록 부채질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독자파도 정치연합 부정하진 않아”
민주노동당은 지난 9월 ‘진보정치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정희 대표는 노회찬 전 대표에게 “진보 정당 통합에 대해 이미 모든 국민들께서 ‘전제조건 없다. 통합해서 힘을 합쳐야 살아날 수 있다’고 보고 계신다”며 “내년 상반기에라도 (통합을)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이 문제삼는 ‘종북주의’를 놓고선 “없는 종북주의를 어떻게 청산하라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종북주의적 태도를 ‘반성’하라는 것은 진보신당의 터무니없는 요구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북한의 3대 세습을 둘러싼 두 당의 태도다. 이정희 대표는 10월8일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이 민주노동당과 나의 선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조승수 대표는 10월12일 CBS 라디오 에서 “중요한 현상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모든 정치 세력의 기본적 의무다. 발언하지 않는 것은 어떤 논리로 설명해도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독자파로 분류되는 한 당직자는 “세습 문제를 계기로 민주노동당에서도 ‘북한 논쟁’이 벌어지길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들과 같이 당을 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쉽게 말해 통합을 하려면 민주노동당이 먼저 변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 통합은 별개의 문제”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당장 조승수호 진보신당이 선택할 길은 독자파와 통합파 양쪽 모두의 동의를 얻은 ‘반신자유주의 정치 연합’, 즉 선거 연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 대표는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교수연합, 진보적 시민운동 진영 등에 ‘반신자유주의 정치 연합’을 제안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합정당 건설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독자파가)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더라도 정치 연합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정치 연합은 이견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새 지도부가 곧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갈수록 진보통합 거센 압력하지만 끝까지 진보신당이 통합정당의 길을 가지 않으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우선 보편적 복지를 매개로 진보 진영이 통합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압력이 거세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대표적이다. ‘반이명박 전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진보·개혁 진영의 요구도 있다. 6월 지방선거 때 실험한 ‘5+4 회의’의 경험을 살려 진보개혁 진영이 하나로 뭉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의 통합이 당론이며, 민주당 일부 지도부는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진보 정당과 합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최소한 진보신당에 가해지는 통합의 압력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강해질 수 있다. 게다가 진보신당 안에서도 “통합 진보 정당으로 가는 ‘과도정당’인 진보신당이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위기감은 존재한다.
진보신당의 핵심 당직자는 이렇게 전망했다. “통합은 당원·지지자가 보기에도 ‘시너지가 크겠다. 자주파(민주노동당)와 평등파(진보신당)가 같은 당 안에서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가능할 것이다. 2012년 총선 전에 그때가 온다면 가장 좋겠지만 누구도 시기를 못박을 순 없다. 결국 대표단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전망했다. 진보신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