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였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공중부양’이 2심에서는 유죄가 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박대준)는 9월17일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강행 처리에 맞서 농성을 하다 국회 경위들에 의해 강제 해산을 당한 뒤 이를 거칠게 항의한 강 의원에게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 1월 무죄를 선고했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충돌 부를 현수막 철거가 무조건 정당?우리 법 체계는 기소된 혐의를 엄격하게 심리하기 위해 3심 제도를 두고 있는 만큼 각 법원의 선고 내용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무죄를 선고했던 서울 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의 1심 선고와, 대부분의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형사2부 박대준·구태회·송주희 판사의 선고가 왜 정반대인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지난 1월 796호 표지이야기 ‘엄밀하지 않은 공중부양 기소’로 이 사안을 다루었던 은 두 재판부의 판결문을 구해 비교 검토했다. 핵심 혐의인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도 두루 살펴봤다. 사회 통념상 상급 법원이, 그리고 여러 명의 판사가 심리하고 내린 판결이 1심보다 더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대목을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8년 12월 말부터 민주노동당은 언론관련법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민주당과 함께 해를 넘겨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2009년 1월5일 0시30분 김형오 국회의장이 “언론관련법을 직권상정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민주당은 새벽 1시 농성을 풀었다. 민주노동당만 남았다. 새벽 3시께 경위들이 의원들은 남기고 보좌진을 강제 해산했다.
강기갑 의원 사건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일 아침 9시께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농성 자리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해산 경고를 하던 경위들이 펼침막(‘MB 악법 저지’)을 강제로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이던 강 의원은 경위와 방호원의 멱살을 잡았다. 이후 강 의원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과 김형오 국회의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빚어졌던 일련의 행위를 검찰은 기소 대상으로 삼았다.
검찰이 강 의원을 기소한 혐의 내용은 △공무집행 방해 △방실 침입 △공용물건 손상이다. 공무집행 방해를 당했다는 이들은, 질서유지 직무를 집행하던 경위·방호원과 신문을 읽고 있던 박계동 사무총장, 의사 일정을 논의하던 김형오 의장이다. 공용물건 손상 부분은 강 의원이 사무총장실에 항의하러 들어가 보조탁자(50만원짜리)를 부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관계에 대한 1·2심 판사들의 시각차는 없다.
강 의원에 대한 1·2심 선고 내용이 갈린 첫 번째 대목은 경위들의 현수막 철거 행위를 적법한 직무 집행으로 볼 것인지 여부였다. 공무집행방해죄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2009도 4166)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하여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고, 여기에서 적법한 공무집행이란 그 행위가 공무원의 추상적 권한에 속할 뿐 아니라 구체적 직무집행에 관한 법률상 요건과 방식을 갖춘 경우”라고 판시했다.
1심의 이동연 판사는 국회의장이 언론관련법 직권 상정 유보 입장을 표명하고 교섭단체 합의에 따라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에 기반한 펼침막 철거 행위는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질서유지권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 판사들은 “직무집행의 적법성이란 해당 직무집행의 주체·형식·절차에 관한 대내외적 성립 요건이 갖춰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실질적 내용의 정당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국회청사관리 규정’에 근거한 적법한 직무집행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1심 재판이 진행되던 중 국회청사관리 규정을 직무집행의 새로운 근거로 제시했다.
강한 항의인가, 폭행인가또 1심이 당시 현장에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 현수막 철거를 통한 청사 관리의 필요성과 보호받아야 할 정당 활동을 비교해볼 때 경위들의 공무수행이 “그 시기와 절차 및 방법에서 현저히 비례성의 원칙을 벗어났다”고 판단했으나, 2심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여부를 심사할 필요가 없으며, 심사를 하더라도 정당 활동 보호라는 법익과 불법 현수막 철거를 통한 국회 질서 유지라는 법익을 비교했을 때 전자가 반드시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딱딱한 법률 용어를 거두고 보면, 1심 재판부는 국회가 대화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농성 해제 등을 포함해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던 만큼 물리적 충돌을 부를 것이 자명한 현수막 철거 행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본 반면, 2심 재판부는 굳이 앞뒤 정황을 따질 필요 없이 경위들은 규정에 따라 현수막을 철거한 것이므로 적법한 공무집행이었다고 본 것이다.
2심은 이른바 ‘형식적 법치주의’에 근거한 판단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공무원의 직무수행 혹은 공권력 행사가 주체와 절차만 형식적으로 갖춰지면 문제없는가, 아니면 내용 면에서도 실질적인 정당성을 지녀야 하는가는 따져볼 대목이다. 현대 민주국가들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추세다. 또 “정당 활동 보호가 현수막 철거를 통한 국회 질서보다 반드시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2심의 판단은, 그 자리에 민주노동당이 아닌 한나라당을 집어넣어도 유지될지 의문이다.
박계동 사무총장이 공무집행 중이었음을 인정한 대목은 더 의아스럽다. 당시 박 총장이 방해받았다는 공무는 ‘신문 보기’였다. 2심은 여론 동향 파악을 위해 신문을 읽었던 만큼 직무집행 중이었다고 본 반면, 1심은 ‘국회의 입법·예산결산·심사 등의 활동을 지원하고 행정사무를 처리’(국회법 21조 등)하는 국회 사무총장의 본연의 직무에 더 주목해 이를 공무집행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부분은 다툼의 소지가 있다.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일반적인 업무방해죄와 달리 ‘폭행·협박’이 이뤄진 경우만 유죄를 인정할 뿐 ‘폭행·협박’으로 볼 수 없는 위력 행사 등은 죄가 안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강 의원이 사무총장실에서 40초 정도 머무는 동안 탁자를 내려치고 그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른 행위를 박 총장에 대한 ‘폭행·협박’으로 볼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다. 1심은 강 의원의 발언과 행위, 주변 상황 등을 볼 때 강한 항의일 뿐 박 총장에 대한 폭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반면, 2심은 이 부분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생략한 채 공무집행방해죄를 선고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집무실 바깥에서 강 의원이 고함을 치며 항의한 행위에 대해 “음향으로 상대방의 청각기관을 직접적으로 자극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도 간접적 유형력의 행사로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2003년)을 인용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한 것이다. 결국 사무총장실에서 벌어진 언행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이 부분만 가지고도 폭행에 해당한다고 본 듯하다.
강 의원 “날치기 막으면 다 범법자 되나”한편 2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가 국회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정책 관철을 위해서라면 집단적인 물리력 행사까지 불사하는 행태를 취해왔던 부끄러운 우리 의정 역사에 일부 기인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강 의원을 꾸짖기도 했다.
강기갑 의원은 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다수의 힘으로 날치기를 하더라도 이를 막으면 다 범법자가 된다”며 “이번 2심 판결은 한나라당과 국회 사무처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결과로 판단해 상고했다”고 말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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