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27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이날 저녁 보스턴 실내종합경기장인 플리트센터에 나타난 버락 오바마는 역사적인 명연설을 남겼다. 미국은 서로 다른 인종과 이념의 국민이 다양한 계층을 이룬 나라이지만, 서로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할 하나의 공화국이란 내용이었다.
오바마가 외친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는 당시 대통령이던 부시의 편가르기 정치에 신물이 난 미국인을 움직였다. 정권을 잡은 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킨 부시가 미국의 정치적·인종적·문화적 분열의 상징이었다면,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계기로 화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font color="#006699">민주당 암흑기에 나타난 ‘메시아’</font>오바마의 비상은 미국 민주당원에게도 복음이었다. 오바마 평전인 의 저자 데이비드 멘델 기자는 2004년 11월 대선 직전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상원과 하원 양쪽에서 소수당으로서 설움을 겪은 민주당은 11월 선거 때 부시를 침몰시킬 강력한 후보를 절실히 원했다. 후보들 가운데 매사추세츠주의 존 케리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공천을 따냈지만, 절망에 빠진 민주당을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에는 케리가 보여주는 것들 이상의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당의 역사상 최대의 암흑기로부터 그들을 건져낼 수 있는 정치적 구원자이자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바마에게 좀더 좌파적이고 더 진보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바랐다면, ‘통합의 메시아’로 나타난 그에게 여전히 갈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집권 이후 오바마에 대한 진보 진영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하다. 공공보험 제도의 좌초,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등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2008년 대선 전까지 오바마는 끊임없이 ‘담대한 희망’을 말했고, 미국인은 이를 믿었다. 중산층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의 가난한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시카고의 빈민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거친 그의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지지했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의 화려한 언변과 매력적 목소리가 아니라 그의 삶 자체였다.
2004년 전당대회 기조연설 이후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한 오바마가 4년 뒤 대선에서 부시를 꺾고 당선하자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준 뒤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민주당이 환호했다. 당시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무능한 보수의 시대가 일단락되고 진보로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도 “오바마의 당선은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당선을 ‘진보의 승리’로 해석한 민주당이 그 뒤 약 2년간 어떤 진보를 실천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당 일각에서 진보를 주장했지만 당 주류는 여전히 ‘대안’과 ‘실용’ 사이에서 헤맸다. 2007년 대선 이후의 민주당을 ‘선명야당’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치러진 7·28 광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겨냥해 색깔론 공세를 시도하는 구태도 저질렀다.
<font color="#006699">새로운 정치문법을 창조할 때 </font>민주당 10·3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기를 꾀하고 있는 '486'(이전에 386으로 불리던 세대로 현재 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이들을 지칭) 정치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들의 위치와 지금의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 2004년 오바마의 등장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9월9일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 컷오프(예비경선)에서는 이인영 전 의원을 비롯해 백원우·최재성 의원과 장성민·정봉주 전 의원 등이 뛰었다.
세대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한국의 486은 1990년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영국의 블레어 총리, 독일의 슈뢰더 총리 등 이른바 ‘68세대’와 종종 비교된다. 다만 개인의 이력을 살필 때, 오바마를 ‘미국의 486 정치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의 이른바 ‘1980년대 학번’과 같은 세대다. 좌파 이념에 심취한 청년 시절, 맬컴 엑스 등 급진적 인물을 동경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소외된 삶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을 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최대 흑인 밀집 지역이던 시카고에서 지역 사회단체를 조직한 오바마의 이력은 1980~90년대 한국 운동권의 민중운동에 가까운 활동이었다. 그곳에서 고 문익환 목사와 닮은 제러마이어 라이트 목사를 만나 영향을 받았다. 라이트 목사는 흑인 목사 가운데 가장 진보적 인사였다.
‘486 정신’을 기성 정치와 다른 새로운 가치에 대한 지향으로 풀이한다면 2004년부터 ‘담대한 희망’을 노래한 오바마의 정체성은 486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반대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과거 386에서 486으로 자동 업그레이드가 된 그들에게 2004년 ‘오바마’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대신 ‘담대한 진보’를 주창해도, 진보의 ‘단결’과 ‘통합’을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문익환의 길을 강조해도 아직까지는 메아리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감동이란 말은 화려하게 치장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삶이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바마가 보여줬다.
민주당 486 정치인 스스로도 2007년 대선 이후에는 ‘세대론’을 무기로 정치를 도모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486 혹은 386의 이름으로 나서기보다 ‘친노’나 ‘김근태계’, 혹은 ‘정세균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자신만의 새로운 정치문법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낡은 정치질서 속에서 그때그때 대세를 좇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6·2 지방선거 직후 자신의 블로그 ‘미디어토씨’에서 10·3 전당대회에 나서는 486 정치인을 평가한 대목이다. “자칫하다간 신40대가, 486이 액세서리가 된다. 당권을 장악하려는 노회한 인사 또는 세력이 당 개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486에게 한 자리 할양하는 판을 연출하면 그렇게 된다. 특정 486이 자신의 정치 입지를 만회 또는 강화하기 위해 그들과 손잡으면 그렇게 된다. 신40대가 당 개혁의 기수가 아니라 당권 장악의 나팔수가 되는 상황 말이다. 고공비행을 할 때가 아니다. 민주당도, 486도 고공전을 펼칠 때가 아니다. 오히려 ‘하방’할 때다. 당 개혁의 밑돌을 하나둘 까는 심정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font color="#006699">과연 ‘하청 정치’ 끝낼까</font>김씨처럼 아예 ‘하방’하라는 주문까지는 아니어도 그닥 새롭지 않은 486의 재등장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등장이 좀더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있다. 2004년 7월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면서 민주당 스스로 좀더 강력한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처럼 10·3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민주당 지지자도 정세균·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 등 이른바 ‘빅3’를 정치적 구원자로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좀더 진보적이고 더 좌파적인 대안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10·3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지며 당권파의 ‘하청 정치’를 끝내겠다고 선언한 486 정치인의 행보에 그래서 관심이 쏠린다. 9월9일 컷오프에서 이인영 전 의원이 전체 16명의 당권 주자 가운데 2위를 차지한 것은 변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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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