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재구성? 꿈같다. 너무 좋지만 현실이 아니어서 꿈이다. 하염없이 열망하기에 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전후해 불붙은 진보대연합 논의가 각 정당과 시민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반한나라당·비민주당 진보대연합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연합인 ‘5+4 회의’를 추동했던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시민사회는 이 선거를 통해 현실 정치 안의 정당들이 진보대연합을 논의할 장을 마련하고 추진을 압박해 성공한 경험을 얻은 바 있다. 지난 8월23일엔 젊은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모인 ‘미래마당’과 진보개혁 진영 명망가들이 모인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진보대연합의 방식을 놓고 잇따라 토론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8월13일엔 ‘진보대통합을 위한 네티즌 모임’이 2008년 ‘촛불’을 어떻게 진보대연합이라는 성과로 계승할 것이냐를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진보정치 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도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는 단체다.
시민사회의 주장은 대체로 ‘반한나라당·비민주당 진보대연합’으로 수렴된다. 쉽게 말해 ‘원조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회당, 그리고 이들의 지향에 동의하는 시민사회 세력이 새로운 진보 정당으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민회의는 ‘반한나라·비민주’를 진보대연합의 지향점이라고 못박고, 오는 8월31일 공식 발기인 대회를 열어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 △고용 양극화 해소 및 실질적 완전고용 실현 △보육·교육·의료 공공성 강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통일 실현 등 ‘11대 정책 의제’를 새로운 진보 정당의 가치로 제시한다. 8월23일 시민회의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원열 한양사이버대 교수(교양학부)는 “아무런 준비 없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맞이한다면 민주당 중심의 단일 후보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 진보 정당이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또한) 진보를 추구하던 사람들 일부가 민주당 속으로 들어갔지만 당적인 차원에서 (민주당의) 보수적인 구조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민주당은 사안에 따라 연대·연합할 수 있지만 진보대통합의 대상은 아니다. 분열돼 있는 진보 세력의 대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도 같은 의견을 드러낸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8월10일 당 발전전략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사회 양극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와 확연하게 선을 긋고 뭉쳐야 한다.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에 함께할 당이라면 당의 기본 노선 자체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반신자유주의 정치 연합’을 제안했다. 노 대표의 제안은 9월5일 임시 당대회에서 당원 토론을 거쳐 확정된 뒤 이를 추진할 기구가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12일 ‘진보대안연합 추진위원회’ 설치를 결정한 사회당도 “흐트러진 진보 세력의 대오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진보대연합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민주노동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성희 최고위원은 ‘노동자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6·15 선언을 지지하는 모든 정치 세력이 노동을 중심으로 총단결하자”고 한다. 이에 따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하는 민주당은 당연히 연합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 ‘창업주’인 권영길 의원은 3월30일 국민대 특강에서 진보신당과의 합당을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도 포함하는 반이명박 연합
그런데 지난 7월 당 대표로 선출된 이정희 의원은 좀 다르다. 7월30일 당 대표 취임사다. “유연한 진보로 2012년 정권교체를 이루겠습니다. 야권 연대의 수준을 높이고 폭을 넓혀야 2012년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국민들을 애태울 수 없습니다. 헌신하고 희생해온 민주노동당이 이제 야권 연대를 선도해가겠습니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등이 민주당을 포함해 진보개혁 진영이 모두 모이자고 주장하는 ‘큰집론’(814호 표지이야기 ‘연합정당이란 큰 집을 짓자’ 참조)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정희 대표는 이를 ‘반이명박 연합’이라고 표현한다. 당 안에선 “그렇게 가다간 민주당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지만, 대체로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진보 정당 통합에서 가장 큰 지분을 쥔 민주노동당이 정작 진보대연합보다는, 선거 연합이나 연립정부 운영과 같은 민주당과의 연대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런 주장에 호응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전당대회에 나선 주자들은 너나없이 2012년 총선·대선 승리를 명분으로 내걸며 진보 정당과의 통합을 주장한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민주당이 민주진보 세력의 넓은 고민과 실천을 담아낼 수 있는 큰 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동영 의원은 “가치연합과 복지동맹에 기초한 통 큰 연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은 “낮은 수준의 연대로 2012년 대선에서 1대1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은 어렵다”며 “진보개혁 세력 전체를 아우르는 진보개혁 통합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인영 전 의원도 8월26일 광주 지역 기자간담회에서 “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해 광주·전남 지역이 민주진보 세력 대통합 정당 건설을 위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연대든 통합이든 민주당의 고민은 진보 정당이 아니다. 국민참여당, 더 정확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8월23일 ‘미래마당’ 토론회에서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유 전 장관에게) 개인적인 신뢰는 없고, 현실적 힘은 있고, 민주당 입장에서 보자면 연합을 하게 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경기지사 선거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참여당이 특정 개인 중심으로 정치적 상황을 전개한다는 점에 대해 강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다.” 국민참여당과의 연대·통합 논의는 피해갈 수 없는 노릇인데, 이 경우 민주당 대선후보군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유 전 장관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취지다.
국민참여당도 민주당과의 통합을 마뜩잖아한다. 같은 토론회에서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은 “민주당과 통합한다면 우리 당원의 90%가 탈당할 것”이라며 “‘선 진보 연합, 후 민주당 견인’ 방식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대선 전에 통합 목표
한편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 시민사회 일각에선 시민의 힘을 바탕으로 제3지대에서 새로운 야당을 만드는 ‘제3지대 단일야권정당론’을 편다. 시민 100만 명이 단일 정당에 참여하는 ‘민란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백가쟁명 속에서도 2012년 총선·대선에서 또다시 한나라당에 패배하지 않으려면, 그 전까지 통합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다. 잘될까? 꿈을 꾸다 보면 개꿈도 꾸지만 예지몽도 꾼다. 진보의 재구성, 예지몽이 될 수 있을까? 또 한 번 꿈을 꾼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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