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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으로 대연합?

10·28 재보선 ‘힘의 논리’로 야권 분열… 후보 단일화보다 정치연합 우선돼야
등록 2009-11-06 12:31 수정 2020-05-03 04:25

민주당이 오랜만에 웃었다. 10·28 재·보궐 선거에서 수도권 3곳을 모조리 석권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경남 양산에서도 선전하자 정세균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교두보를 마련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정말 그럴까? 적어도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이 공을 들이는 ‘민주대연합’ 차원에서 보면, 이번 선거 결과는 그리 흥분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간 ‘반이명박 연대’를 형성했던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과 단 1곳에서도 공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월 울산 북구 재보선에서 ‘반이명박 연대’를 명분으로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고, 민주당 후보가 사퇴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민주통합시민행동 주최로 10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대연합을 위한 지도자 연석회의’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노당 강기갑 대표, 이해찬 시민주권모임 대표 등 참석자들이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민주통합시민행동 주최로 10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대연합을 위한 지도자 연석회의’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노당 강기갑 대표, 이해찬 시민주권모임 대표 등 참석자들이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민주당 논리는 힘센 놈 따라오라는 것”

이번에도 선거 연합 논의가 없지는 않았다. 협상단까지 구성돼 잠정합의까지 이뤄낸 경기 안산 상록을을 보자. 열린우리당 출신인 임종인 전 의원은 지난 7월 홍장표 전 한나라당 의원의 당선무효형이 확정되자마자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은 임 전 의원 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까지 맡으며 그를 지지했다. 민주당 쪽엔 후보를 내지 말고 임 전 의원을 ‘야권 단일 후보’로 내자고 압박했다. 천정배 의원 등 민주당 일부에선 이에 동의했지만, 당 지도부는 그렇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단일화 협상에서 선거 일주일 전 잠정합의안이 도출됐지만, 민주당 지도부의 추인을 받기 전 임 전 의원이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협상은 없던 일이 됐다.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안산에서 단일화에 실패하자, 경남 양산과 경기 수원 장안의 단일화도 어그러졌다. 민주당은 10월22일 민주노동당에 이 2곳의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고,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민주당이 안산에서 임종인 후보에게 양보한다면 전국적 차원에서 후보 단일화의 결단을 내리겠다”고 역제안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물론 임 전 의원보다도 앞서는 김영환 후보를 민주당이 주저앉히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진보정당 쪽은 “민주당의 민주대연합 주장엔 진정성이 없다. 자기들 이길 생각만 한다”는 불만이 크다. 민주당이 양산과 수원에서도 ‘단일화 풍선’을 띄웠고 지지율이 20% 가까이 나오던 임 전 의원의 ‘파괴력’을 무시할 수 없어 안산 단일화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김영환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지지율 1위’가 아니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임 전 의원으로 단일화를 주장한 이유는 김영환 후보가 “한나라당과 공조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지난해 민주당 복당도 거부된 무자격 후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안산과 수원에서 2명을 당선시켰지만, 민주대연합은 위기를 맞았다. ‘민주개혁 세력의 맏형’을 자임하면서도, 민주대연합의 시험대였던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 가능성’에 집착해 스스로 기회를 버린 셈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민주대연합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훈이자, 우리 지지층의 요구”라며 “‘이기고 있는데 왜 단일화를 하려느냐’는 당 일부의 반발도 무릅쓰고 끝까지 협상을 성사시키려 했지만, (임종인 전 의원의 잠정합의 발표로) 신뢰가 깨지자 더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는 “단일화를 안 해도 민주당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오만하게 나온 거다. 결국 민주대연합은 ‘힘센 놈’ 따라오라는 얘기”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진보신당 사안별 연대로 선 그어

진보정당들은 온 당력을 집중하다시피 지원한 임종인 후보의 득표율이 15.6%에 그침으로써 힘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특히 예상을 깨고 양산에서 송인배 민주당 후보가 아깝게 지는 바람에, 민주노동당은 사그라지는가 싶던 ‘사표론’에 또다시 휘말렸다. 개표 이후 민주노동당 홈페이지는 “박승흡 민주노동당 후보가 송인배 후보와 단일화했다면 양산을 한나라당에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라거나 “한나라당 2중대”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지난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울산 북구 단일화에 반발해 대변인·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박승흡 후보가 남긴 “‘단일화’라는 프레임은 앞으로도 민주노동당의 발목을 잡고, 정치적 성장을 방해하는 덫이 될 것”이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각 당이 민주대연합에 대처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진보신당은 가장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재야·친노 인사들이 주축인 ‘민주통합시민행동’이 10월8일 연 ‘민주대연합을 위한 지도자 연석회의’부터 불참했다. 지금의 역학 구도에선 민주대연합이 ‘민주당으로’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진보정당들과의 연대·연합(진보대연합)은 지속하더라도 민주당과의 연대는 사안별로 따져볼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엔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에 쏟아질 후보 사퇴 압박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노회찬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5~10%의 지지율을 얻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민주대연합에 발을 담갔다간 지지층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 견제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보고 민주대연합에 적극적이다. 지방선거 때 광역단체장 후보를 민주당에 양보하더라도, 기초의원·단체장 등 풀뿌리 단위에선 민주노동당 몫을 넉넉히 챙길 수 있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민주대연합 때문에 당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상임위나 개별 정책에서 우선 연대가 탄탄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당은 지방선거와 다음 대선을 거치면서 소멸할 수도 있다”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대연합 논의의 주도권을 쥔 민주당 안에선 수도권에서의 독자적인 승리로 “굳이 다른 당과 공조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정세균 대표의 의지가 강하고, ‘뭉치라’는 시민사회의 압박도 거세다. 연대를 기정사실로 인식하는 만큼 고민은 좀더 기술적인 데 있다. 가령 각 당이 후보를 정하기 전에 미리 협상 테이블을 구성하고, 정당·후보 지지율 조사 등을 통해 서로에게 유리한 지역을 미리 조정하는 한편 어떤 명분과 원칙으로 서로를 신뢰하면서 ‘지방선거 공동승리’를 거둘지 논의해야 한다는 식이다.

“후보 못내면 존립 이유 없어”

최형익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선거에 자기 후보를 내지 못하고 다른 당 후보를 지원한다면 그 정당은 존립할 이유가 없다. 민주대연합은 후보 단일화식 통합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과 정책적 공통점에 기반한 정치연합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논의되는 민주대연합은 대안 세력으로서 가치와 비전을 모색하는 정치연합이 아니라, ‘반이명박’ 혹은 ‘반한나라당’ 구도의 후보 단일화를 꾀하는 선거 공학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각 당이 정책과 사안을 놓고 논쟁하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공동의 정책공약을 개발하는 등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토대를 먼저 다져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대연합’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제 8개월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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