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이 심상치 않다. 10·28 재보선이 가까워질수록 민주당을 둘러싼 위기의 그림자도 짙어지는 분위기다. 10월28일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은 모두 5곳이다. 민주당은 이 가운데 최소 3곳, 최대 4곳의 승리를 목표로 삼았다. 수도권인 경기 안산 상록을과 수원 장안에서 승기를 잡아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까지 노린다는 것이 민주당의 계산이다. 중부권 3곳의 승리가 목표의 최소치라면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 양산의 선전은 ‘플러스알파’에 해당한다. 민주당에서는 분위기만 잘 탄다면 경남 양산에서도 당선에 버금가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밖에서 보는 판세는 이와 조금 다르다. 수도권만 해도 안산 상록을과 달리 수원 장안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손학규 전 대표가 민주당 이찬열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자기 선거처럼 밑바닥을 훑고 있지만, 이 지역은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보수적 표심을 보였다. 2004년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심재덕 전 의원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된 것이 오히려 이례적인 결과였다.
김영환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선 안산 상록을의 사정은 수원 장안보다는 조금 낫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김 전 의원은 무소속 임종인 전 의원이나 한나라당 송진섭 후보보다 좀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야 3당 “김영환 후보 부적격” 반발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승리를 주장하는 지역이다. 민주당이 충북 음성이 고향인 정범구 전 의원을 내려보낸 반면, 한나라당은 10월8일 경대수 전 제주지검장을 후보로 확정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세종시 원안 수정 움직임에 불만을 품고 있는 충북 민심이 민주당 쪽으로 쏠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경 후보의 우세로 판단하고 있다.
나머지 두 곳인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은 각각 권성동·박희태 후보를 내놓은 한나라당이 유리한 편이다. 경남 양산에서 ‘문재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가 유일한 변수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송인배 민주당 후보를 돕고 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5곳 가운데 민주당이 자신 있게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지역은 거의 없다. 지금 판세대로라면 재보선이 정권 심판론을 내세운 야당의 무대라는 ‘재보선의 공식’이 깨질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승산을 따진다면 경기 안산과 충북, 수원 장안의 순서”라며 “여느 재보선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높은 편이어서 수도권의 압승을 점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민주당이 재보선 퍼즐을 어렵게 풀고 있는 이유는 공천 단계부터 스텝이 꼬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애초 전략 지역인 경기 안산과 수원에 각각 김근태 상임고문과 손학규 전 대표의 전략공천을 검토했다. 거물급 인사를 내보내 10·28 재보선을 ‘이명박 정권 심판’ 선거로 치르겠다는 의도였다. 민주당의 계획은 손 전 대표가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며 민주당의 출마 요청을 거부하며 틀어지기 시작했다.
수원 장안에서 손 전 대표가 출마를 고사하자 김근태 상임고문의 경기 안산 출마도 자연스럽게 백지화됐다. 민주당이 대안으로 선택한 인물은 김영환 전 의원이었다. 문제는 김 전 의원의 경우 개혁성과 참신성 등 모든 면에서 진보 진영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 등 야 3당은 안산 상록을 후보로 일찌감치 무소속 임종인 후보를 지지해왔다.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에 큰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던 야 3당은 민주당이 김 전 의원을 후보로 확정하자 반발했다. 임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인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논평을 통해 “김 후보는 과거 한나라당과 공조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인물로, 지난해 민주당 복당이 거부됐던 ‘친MB, 무자격 후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지방선거 전 마지막 민주대연합 실험 기회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이 주장한 ‘민주대연합’이 허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김 후보 공천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 진보 진영의 불만이었다. 임종인 후보는 10월8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뜻과 관계없이 오직 민주당의 승리만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대연합을 생각하기에 앞서 민주당이 이길 방법만을 고민했기 때문에 정체성이나 과거 전력은 모두 무시하고 단순히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로 김 후보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산 상록을 재선거가 ‘한나라당 송진섭-민주당 김영환-무소속 임종인 후보’의 3자 대결 구도로 치러진다면, 앞으로 민주대연합 논의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민주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안산 상록을 예비후보로 뛰었던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적극 주장했던 민주대연합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독자 후보를 내더라도 진보 진영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워야 할 텐데, 김 후보로 야 3당 설득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산 상록을의 야권 연합은 그 결과가 10·28 재보선 전체는 물론 2010년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당장 민주당은 수원 장안에서 인지도가 앞서는 박찬숙 한나라당 후보와 상대하는 동시에 민주노동당 안동섭 후보와도 경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당선을 노리는 충북과 이변을 기대하는 경남 양산에도 후보를 냈다. 안산 상록을의 후보 단일화가 꼬이면 다른 지역의 단일화 논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지방선거 전에 야 4당이 민주대연합의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지방선거 전망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재보선 말고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선거를 통해 민주대연합을 실험할 기회가 없다.
급한 쪽은 민주당이지만 안산 상록을에서 먼저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임종인 후보다. 임 후보는 10월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야권 후보 단일화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임 후보는 이날 “야권 전체가 기득권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가 되어 한나라당을 심판해야 한다”며 후보 등록 이전에 단일화할 것을 제안했다.
임종인의 단일화 제안에 소극적 반응반면 민주당 김영환 후보는 임 후보의 제안이 나오기 하루 전인 10월7일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단일화를 하든 안 하든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힘을 갖춰야 한다는 게 제가 갖고 있는 자세”라며 단일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령 선거가 3자 대결 구도로 치러지더라도 인지도에서 앞서고 있는 만큼 충분히 승산이 충분하다는 것이 김 후보 쪽 계산이다.
민주대연합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민주당이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는 무소속 후보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민주개혁 진영의 대연합이 이뤄지려면 민주당이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당의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소통에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자리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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