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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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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신당의 깃발 펄럭일까

국민참여 기치로 발기인 대회…한명숙·이해찬·유시민 불참 속 성과 거둘지 미지수
등록 2009-09-25 15:45 수정 2020-05-03 04:25

친노신당이 창당 깃발을 들었다. 신당은 9월20일 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공식적인 창당 절차를 밟기로 했다. 창당 시점은 이르면 12월께가 될 전망이다. 또 하나의 정치 실험이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신당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열쇳말은 ‘참여’다. 신당이 내세우는 공식 명칭도 친노신당이 아니라 ‘국민참여정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좇은 ‘참여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어받겠다는 뜻이다. 국민참여정당은 인터넷 홈페이지 10문10답에서 여느 정당과 신당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친노신당으로 많이 알려진 국민참여정당이 9월20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신당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9월1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신당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친노신당으로 많이 알려진 국민참여정당이 9월20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신당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9월1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신당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이병완·천호선 투톱 체제로

“(신당은) 국민이 주인인 정당입니다. 기존 정당은 국민이 참여하기 어렵고 의견은 묻지 않고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게임이 중심인 정당입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정당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당에 발언할 수 있고 당원이 중요한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당입니다. 근본이 다른 정당입니다.”

신당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9월16일 과의 인터뷰에서 ‘당원 중심의 정당’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결정적 이유는 인물과 지역 중심의 퇴행적 정당 구조 때문”이라며 “명망가의 깃발 아래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래알 정당이 아니라 모든 당원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당원 중심의 국민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신당의 대표 브랜드가 ‘참여’가 된 것은 신당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면면과 무관하지 않다. 신당은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홍보위원장을 맡은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을 투톱으로 하고 있다. 신당 전국실행위원회 지명직 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권태홍 전 참여정치연구회 사무처장, 김충환 전 청와대 비서관, 임찬규 전 참평포럼 사무처장, 문태룡 전 참평포럼 기획위원장 등이다. 대부분 과거 개혁당 활동에 깊숙이 개입했거나 열린우리당 내 개혁당 그룹인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핵심 인사다.

국민참여정당 창당 제안자 명단을 봐도 개혁당 출신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강혜숙·김영대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모두 개혁당과 참정연을 거친 인사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한의사 고은광순씨 역시 개혁당 핵심이었다.

신당이 창당 명분으로 정책 노선이나 정치 노선이 아닌 정당민주주의라는 일종의 ‘조직 노선’을 맨 앞자리에 놓은 것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반응은 엇갈린다. 과거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당내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정당 개혁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앞뒤가 바뀌었다는 비판이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정당이란 정치적 견해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이라며 “기존 정당과 다른 점을 강조하려면 자신이 집권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정치적 견해를 내세워야 하는데, 신당은 당원이 주인이 되도록 하겠다는 주장 이외에 무엇을 하겠다고 모인 집단인지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물론 신당이 내세운 정책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당은 창당을 제안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녹색의 가치를 앞세우며 복지와 사회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이를 위해 “교육 혁명과 고용 혁명, 에너지·환경 혁명, 농업 혁명, 여성 혁명을 5대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별 과제의 구체성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신당은 앞으로 발기인 토론 등을 통해 5대 핵심 과제를 가다듬겠다고 밝혔다.

정당민주주의 ‘조직 노선’에 방점

신당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부족하다는 부분도 정치권이 신당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이병완·천호선 두 참여정부 인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도 ‘스타급’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다. 언론을 통해 합류가 거론됐던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 등 친노 핵심 인사는 신당과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한명숙 전 총리는 처음부터 신당과는 거리를 뒀고, 이해찬 전 총리는 신당 창당보다 민주개혁 세력의 통합에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두 전직 총리는 범친노 인사가 모인 ‘시민주권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김두관 전 장관 역시 시민주권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친노 인사 가운데 신당과 관련해 특히 관심이 가는 사람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애초 신당 창당 소식이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질 때 일각에서는 이를 ‘유시민 신당’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 전 장관의 핵심 측근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 말) 신당 창당을 주도하는 분들이 논의를 제안해온 것은 맞지만, 생각이 맞지 않아 함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당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신당의 인적 구성과 추진 방식을 볼 때, 유 전 장관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많다. 신당의 중추에 과거 유 전 장관과 개혁당 및 참정연 활동을 함께했던 인사가 대거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나, 정책 노선과 정치 노선 대신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이라는 조직 노선을 특히 강조하는 것이 그렇다. 유 전 장관은 2004년 참정연을 만들면서 “참정연은 정치 노선이나 정책 노선을 같이하는 모임이 아닌 조직 노선의 결사체”라며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으로 열린우리당이 변모할 때 ‘제2의 창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에서도 끝까지 당원의 역할을 강조하는 기간당원제를 강력히 지지했다.

신당도 유 전 장관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 않았다. 신당 핵심 관계자는 “지금 당장 유시민 전 장관이 합류하지는 않지만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신당과 유 전 장관은 언젠가 같은 길에서 만날 수 있다”며 유 전 장관의 합류 가능성을 언급했다.

12월 창당을 목표로 본격 출범한 신당에 2010년 지방선거는 첫 번째 시험 무대다. 신당은 지방선거에서 최대한 많은 후보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현실적 목표는 영남과 호남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지방선거서 영호남에 집중키로

영남이나 호남과 달리 수도권 선거에서는 경쟁과 연대를 병행한다는 것이 신당의 계획이다. 민주개혁 진영이 단일화를 통해 승리할 수 있는 지역에서 독자 후보를 내는 것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영남과 호남의 지방권력은 사실상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며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 선거에 최대한 많은 후보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이 지방선거의 ‘작은 전투’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당장 친노 그룹 안에서도 회의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친노 그룹 관계자는 “만약 신당의 성공 가능성이 10%만 됐더라도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라며 “참여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의욕만으로 현실 정치권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 지망생이 대거 몰릴 수 있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자칫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 신당을 둘러싼 우려다. 원칙 있는 패배라면 상처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 신당의 태도다. 물론 상처가 신당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신당 창당의 시점 등을 좀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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