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에서는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화제로 떠올랐다. 여론조사 기관 라스무센의 7월29일 발표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절반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미국인은 49%에 달한 반면,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사람은 50%로 집계됐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도가 라스무센 조사에서만 추락한 것은 아니었다. 갤럽이 7월25~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 지지는 54%에 그쳤다. 취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는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자(46%)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답한 사람(48%)보다 적었다. 건강보험 개혁과 재정적자 확대를 둘러싼 논란, 여기에 백인 경찰의 흑인 교수 체포 사건을 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경찰의 잘못을 지적한 데 대해 상당수 지지층이 반감을 나타낸 결과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미국 언론은 앞다퉈 그의 리더십에 적신호를 보냈다. 특히 많이 인용된 것이 라스무센 조사 결과였다. 이유는 50%라는 수치에 숨어 있었다. 미국에서 대통령 지지도 50%는 국정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 자본’(political capital)으로 통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치컨설턴트 김윤재 미국 변호사는 “미국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50%에 미치지 못한다면 대통령 본인의 연임도 어려운 것으로 간주하지만, 이에 앞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있는 연방의회 중간선거에서 대통령이 여당의 승리를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지지도 50%를 넘기지 못할 경우 당장 여당의 협조조차 얻어내기 힘들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어떨까? 여론조사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취임 석 달째인 2008년 5월 이후 50%는 고사하고 40%를 넘긴 적도 없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를 정기적으로 집계하고 있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를 보면, 이 대통령은 촛불집회가 절정이던 2008년 6월11일 15.2%의 지지도를 기록해 바닥을 쳤다. 그 이후에는 줄곧 20~30% 수준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한 비율은 고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영남 출신자가 많았고, 이념적으로는 대체로 자신을 보수라고 소개했다. 개신교 신자 가운데서도 이 대통령의 지지가 높았다.
리서치앤리서치(R&R) 조사 결과도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10월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30%대에서 움직였다. 다만 지난 8월4일 조사에서 촛불집회 이후 처음으로 40%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40.4%),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 가운데 ‘매우 잘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한 자릿수(7.4%)에 그쳤다. ‘대체로 잘하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33.1%였다. 이번 조사만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크게 확대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게 R&R 관계자의 설명이다.
R&R의 8월 조사 결과를 제외하면,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2008년 5월 이후 20~30% 수준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이를 가리켜 ‘박스권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스권이란 주식시장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주가가 일정 가격 폭 안에서만 움직일 때 그 범위를 말한다. 함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한반도 대운하나 저탄소 녹색성장처럼 이벤트성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했다”고 지적한 뒤 “주가가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을 쓴다고 올라가지 않듯, 이 대통령도 국정운영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 이상 박스권 대통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집권 초기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30%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정작 청와대와 여당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최근 청와대가 ‘중도강화론’과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영남과 서울 강남, 이념적으로는 보수층을 우선적으로 껴안겠다는 국정기조 자체에 손질을 가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 “미국에서는 부시 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40%대 아래로 지지도가 떨어지자 통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쏟아져나온 반면, 한국은 대통령의 지지도가 30% 아래로 떨어져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며 “민심의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핵심 지표가 여론조사 지지율인데, (현재의 여권은) 민심 이반을 심각한 위기의 징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다. 언론 관련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은 항상 ‘반대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를 주도한 한나라당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여론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는 한나라당은 직권상정 표결 처리를 강행했다. 청와대도 이를 환영했다. 민심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대 진영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하는 대신, 핵심 지지 기반에는 확실한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이는 ‘양극화 정치’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낮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조기 레임덕 현상에 시달리지 않는 이유는 핵심 지지 기반이 곧 한국 사회의 기득권 그룹이라는 사실에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붙들어놓은 대기업과 조·중·동 등 보수 언론, 여기에 개신교 진영이 더해져 일종의 ‘MB 카르텔’이 형성됐고, 이 MB 카르텔이 지지도 낮은 대통령을 지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철희 KSOI 수석 애널리스트는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 관련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보수 언론까지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어놓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20~30%에 불과한 지지도로 국정 주도권을 상실하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정책 수혜 그룹으로부터 확실한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수 정권 성격을 잘 파악할 기회”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낮은 지지도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내놓는 것이 가능할까? 여론조사 업계와 학계에서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함성득 교수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다. 함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주가가 박스권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 등 장기적인 모멘텀이 필요하듯, 이 대통령도 인기를 한번에 크게 끌어올리려 하기보다 재벌 개혁이나 노사관계 개선 등 표시가 잘 나지 않는 개혁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는 각각 진보와 보수의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과거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처럼 지지도가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보수 정권이 진보를 껴안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면, 이명박 정부 5년은 오히려 국민들이 보수 정권의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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