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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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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포복으로 삼고초려를 기다리다

광주 5·18민주묘지서 만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4월 재보선 기여로 당내 입지 커져 10월 정치권 복귀 가능성
등록 2009-05-29 18:14 수정 2020-05-03 04:25

4·29 재선거의 또 다른 승리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강원 춘천 칩거 아홉 달 만에 집 밖을 나온 손 전 대표는 민주당에 ‘인천 부평을 탈환’이라는 선물을 안겼고, 내내 ‘한나라당 사람’이라고 의심하던 당은 이제 그를 믿기 시작했다. 몸값은 올랐지만, 손 전 대표는 다시 춘천으로 돌아가 ‘낮은 포복’을 계속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언론과 개별 접촉을 피하고 있는 손 전 대표를 5월17일 광주 망월동에서 만났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5월1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춘천으로 돌아가며 당원·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5월1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춘천으로 돌아가며 당원·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20년 넘게 매년 4·19 묘역과 5·18 묘역을 빠뜨리지 않고 참배하는데, 요즘은 민주주의가 쉽지 않다는 걸 느껴요.” 광주를 찾은 소감을 묻자, 손 전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존귀하다는 것, 민주주의는 이룩하기도 어렵고 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요즘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이 별 생각 없이 제껴지고, 경우에 따라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까지 목격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성장과 발전도 해야 하지만, 사람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에두른 표현이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으로 들렸다.

5·18 때 외국에 있었지만 해마다 묘역 참배

손 전 대표에게 ‘5월 광주’는 어떤 의미이기에 매년 이곳을 찾는 것일까?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는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 당신은 거기 없었다. ‘양지’만 찾아다녔다”는 비판이었다. 유학에서 돌아와 1993년 민자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후 경력은 그런 비판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2007년 5월 광주·전남 경영자총협회 초청 특별강연 때 했던 ‘광주 정신 극복’ 발언으로 이런 비판은 극에 이르렀다. 당시 손 전 대표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통합신당은 말로는 미래 세력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80년 광주에 머물러 우리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는 것 아니냐. 더는 5·18 광주 정신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광주를 털어버리고 더 넓은 곳을 향해 힘차게 나갈 때 광주 정신은 더 빛날 것이다. 광주의 정신은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것이며, 미래로 나아갈 때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당시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광주를 부정한다면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손 전 대표를 격렬히 비판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손 전 대표가 진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발언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광주 정신 극복’ 얘기가 나오자, 손 전 대표는 “그때 내 워딩(말)을 잘 찾아보라”고 했다. “녹음 테이프든 어디든 내가 했던 말을 찾을 수 있으면 한번 보세요. 그때(경쟁 주자들이 비판했을 때)도 난 아무런 해명을 안 했어요. 난 예전에 전혀 주목받지 않을 때부터 한 해도 빼먹지 않고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데,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그 정신을 갖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측근들 “손 전 대표는 DY 복당 바란다”

그는 ‘광주 정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년이면 5·18이 30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자부하지만, 아직까지도 민주적인 가치가 짓밟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무리 짓밟히더라도 반드시 일어납니다. 오늘도 광주 영령께 참배를 하면서, 힘없고 어려운 서민이 진정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우리가 일으켜세워 그분들의 뜻을 빛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정치인의 묘소 참배가 그냥 보여주기인 것 같지만, 올 때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가신 분들의 유업을 생각하게 돼요.”

지난해 7월 전당대회가 끝난 뒤 “제 자신을 벌거벗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며 춘천에서 칩거해온 손 전 대표는 4·29 재보선에서 정세균 대표의 요청으로 수도권 지원유세를 펼쳤다. 인천 부평을 탈환의 일등공신이 손 전 대표라는 평가에 의문을 드러내는 이는 별로 없다. 그는 이런 평가를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당이 어렵고, 정세균 대표가 도와달라고 하니까 가서 최소한의 역할을 한 겁니다. 다행히 (지원에 나선 수도권에서) 이겨서 잘됐지요. 국민이 야당을 걱정하는 만큼 격려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원유세를 하면서 ‘야당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야당이 살아야 정치가 균형을 잡고 안정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그걸 국민들이 받아줬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손 전 대표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당이 역할을 하라는 책임과 함께 부담을 진 거죠. 워낙 분열 위기니까, 합치고 화합해서 힘을 보여주라고 한 것 아닙니까? 분열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야당이 단합된 모습으로 국정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국민의 응답이죠.” 정동영 의원의 탈당과 무소속 당선, 이후 복당 논란을 뜻하는 것이냐고 되묻자 그는 “원론적인 얘기”라며 말을 삼갔다. 하지만 손 전 대표의 측근들은 “정동영 의원을 복당시켜야 한다는 게 손 전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야 당도 살고, 손 전 대표도 공간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선거 결과 ‘민주당 출신’인 정동영 의원은 ‘골목대장’으로 전락한 반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 탓에 당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던 손 전 대표는 당내 입지를 굳힐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굳이 다시 칩거를 택했다. 개 4마리와 닭 수십 마리를 키우고, 자신을 찾아오는 측근들과 가끔 술잔을 기울인 지난 열 달은 ‘새롭게 태어나기’엔 짧은 시간이었던 걸까? 그는 “내가 할 일이 있을지, 이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게 있을지, 나를 필요로 할 만큼 내가 속을 채운 게 있는지, 그런 것들을 돌아보고 있다. 근신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도 손 전 대표는 “내가 지금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그가 10월 재보선에 출마해 정계에 복귀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인 싱크탱크인 삼의정책연구원과 ‘정치적 결사체’를 표방했던 선진평화연대 등 손 전 대표의 참모진도 그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가장 좋은 그림은 ‘삼고초려’다. 한 측근은 “손 전 대표가 먼저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당이 요구한다면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당에서 손 전 대표를 필요로 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물난에 시달리는 민주당으로선 10월 재보선에서 손 전 대표에게 손을 내미는 게 당연한 선택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오랜 인연 황석영 발언엔 쓴웃음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아시아 순방을 함께 다녀온 소설가 황석영씨의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 정부’라는 발언을 어찌 보느냐고 물었다. 1973년 서울 구로공단에서 손 전 대표와 함께 노동운동을 한 바 있는 황씨는 손 전 대표에게 “정치 질서를 개편하는 불쏘시개가 되라”며 한나라당 탈당을 가장 강력히 권유했던 인물이다. 대답은 짧았다. “이제 (인터뷰는 그만) 됐어요, 허허.” 쓴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치며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다시 춘천으로 돌아가는 그를 서울·경기 등에서 온 당원·지지자 200여 명이 배웅했다. “10월엔 돌아오실 걸로 알겠습니다.”

광주=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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